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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 31. 길은 사람을 만나 특별해진다[경주 산내면⇒경주 시내](11.04.03.일)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31. 길은 사람을 만나 특별해진다[경주 산내면⇒경주 시내](11.04.03.일)

건방진방랑자 2021. 2. 15. 1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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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사람을 만나 특별해진다

 

 

도보여행을 하다 보면 감흥이 없어질 때가 있다. 모든 일이 그럴 테지만 여행이 일상이 되어 마지못해 참고 걸어야 할 때가 그렇다.

 

 

▲ 경주 산내면⇒경주시내

 

 

 

힘겨울 땐 시체마냥 푹 쉬어야 한다

 

걸어서 목적지까지 가려는 이유는 걸어가는 도중에 나를 성찰하고 사건을 만들고 싶어서다. 성찰하거나 사건을 만들고자 하지 않았다면, 굳이 힘들 게 걸어야 할 이유가 없고 아예 버스나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여행을 했을 것이다. 더욱이 이걸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돈이 없어서, 처음에 세운 계획이기에 무조건 따르기 위해서 걷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좋아서 한 일임에도 그게 발목을 잡는다. 그만큼 내 마음에 여유가 없어졌다는 이야기이리라. 이럴 땐 어찌해야 되는 것일까?

어떤 이는 삶이 팍팍하다고 느껴질 때 모든 것을 내려놓고 죽은 시체마냥 푹 쉬어야 한다고 했었다. 그 당시에 그 얘기를 들을 땐 그건 무책임한 도피야라고 생각되었는데, 지금 상황에서 보면 맞는 말이더라. 사람은 일하고 있을 땐 쉬고 싶고, 쉬고 있을 땐 일하고 싶기 때문이다. 바로 그 두 가지 감정을 조화시키려는 사이두기죽은 시체마냥 푹 쉬어야 한다는 말로 표현된 것일 테니, 내 생각이 짧았다고 밖에는 할 말이 없다.

결론적으로 잘 쉴 때, 잘 살 수 있다. 나도 잘 걷기 위해 잘 쉴 것이다. 내일은 여관에 자리 잡고 시체처럼 아무 생각, 아무 걱정 없이 푹 쉬어야지.

 

 

▲ 잘 걷기 위해선 잘 쉬어야 한다.

 

 

소비되는 여행은 여행이 아니다

 

우리나라 시골은 다 똑같다. 도시도 똑같다. 그래서 표지판으로 구분되는 경계선을 지우고 본다면 어디가 어딘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어제 본 풍경이 오늘 본 풍경 같고, 어제 걸은 거리가 오늘 걷는 거리 같다.

이런 상황이니 나무 종류나 지형의 변화에 민감한 사람이 아니고선 그냥 걷는 것만으로는 도무지 기억에 남을 만한 게 없다. 우리가 학생 때 했던 수학여행이 그러지 않았던가. 경주에 갔건, 제주도에 갔건 장소에 대한 기억은 말끔히 사라지고 친구들과 밤새도록 수다를 떨던 추억, 그림공부하며 본전에 대한 미련을 떨치지 못한 추억만 남았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식의 여행을 진정한 여행이라 하긴 힘들다. 일반 여행사가 기획한 패키지식 여행이나 가족끼리 떠나는 리조트식 여행이 여행이라 할 수 없는 이유와 같다. 내가 사는 곳을 떠나 딴 곳을 가지만 그곳을 일회적으로 소비할 뿐, 새로운 사건이 끼어들진 않기 때문이다. 그건 나의 이상 속에 들어있는 어떤 관념적인 세계의 투영일 뿐 진짜 현실일 순 없다.

 

 

 

길 위에 사람이 있고, 길은 그 사람으로 인해 특별해 진다

 

그렇다면 진정한 여행이란 무엇일까? 그건 아마도 사람을 만나는 여행이지 않을까. 그 지역 사람들을 만나고 우연한 만남을 통해 사건이 끼어들 때, 비로소 여행지의 특징도 드러난다. 모두 같아 보였던 풍경이 그 순간 확연히 다르게 인지되는 것이다.

국토종단 때, 여관이나 찜질방에서 잤던 곳에 대한 특별한 기억은 없다. 그래서 걷기에 힘들었다느니, 날씨가 흐렸다느니 하는 뻔한 이야기만 썼던 것이다. 그에 반해 사람과 어울리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진 연기군 양화면, 공주 경천리, 진천군 초평면, 고성 대진면 등의 기억은 또렷하다. 당연히 여행기의 내용도 더욱 알차고 할 얘기도 많았다. 그러니 그곳에 대한 이미지도 좋고, 언제든 그분들을 뵈러 다시 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던 것이다. 그 사람에 대한 이미지가 좋게 남으면,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이 좋게 느껴지듯이, 그 사람들로 인해 그 마을도 좋게 느껴졌다.

이렇듯 진정한 여행이란 사람과 마주치고 예기치 못한 사건이 벌어질 때 완성되는 게 아닐까. 내가 도보여행을 떠난 이유도 이것이다. 편하게 즐기고만 오려고, 나의 생각만 일방적으로 투영하려고 떠난 게 아니다. 사람을 만나러 떠났고 그로 인해 지금껏 경험해보지 못한 걸 느껴보려 떠났다. 모든 게 열려 있는 여행, 그렇기에 내가 적극적으로 현장에 파고들어야 하며 사람들의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여행, 그러면서 멸시도 환대도 감내해야 하는 여행을 하고 싶어 떠났다. 길 위엔 사람이 살고 그 사람과의 만남으로 그 길은 특별해진다.

 

 

▲ 사람을 만남으로 같은 느낌의 길일지라도 다른 느낌으로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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