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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 48.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들의 집단[영양 당리⇒봉화 명호면](11.04.09.토)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48.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들의 집단[영양 당리⇒봉화 명호면](11.04.09.토)

건방진방랑자 2021. 2. 16. 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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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들의 집단

 

 

420분쯤 눈이 떠졌다. 어둠이 짙게 깔려 있다. 새벽기도에 나갈 채비를 하고 조심조심 문을 열고 나갔다. 집 밖으로 나오니, 어제만 해도 무섭게 느껴졌던 개 세 마리가 오늘은 매우 반갑게 느껴진다. 대문 쪽을 바라보니, 장로님과 사모님, 그리고 큰 며느님이 나오신다. 가족 전체가 기도회에 참여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아 깜짝 놀랐다. 장로님은 거동이 불편한 사모님을 부축하며 걷고 난 큰 며느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걸었다.

 

 

▲ 영양 당리⇒봉화 명호면

 

 

 

사람여행: 장로님이 이끄는 새벽기도

 

교회에 도착하니, 사람이 별로 없다. 목사님에게 부탁을 받으셨는지, 장로님이 나가서 기도회를 이끈다. 전형적인 농사꾼으로 정식교육을 받은 것 같지 않은데도, 강단에 반듯하게 서서 정연하게 말씀을 전해주신다. 바로 이런 점이 종교의 좋은 점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못 배웠어도 종교인이 되는 순간, 평등해지고 막중한 임무도 맡을 수 있으니 말이다. 장로님이 종교를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남 앞에 서서 말씀할 기회가 있었겠는가.

나도 기독교를 믿을 당시엔 이런 혜택을 많이 누릴 수 있었다. 그 덕에 교회에선 청년회장을 하며 아이들과 함께 교회를 어떻게 이끌지에 대한 여러 논의를 해보기도 했고 강단 앞에 서서 준비찬송을 이끌기도 했으며 성가대에 들어 합창이란 걸 해보기도 했고 대학교에선 크로스 선교합창단을 이끄는 단장이나 성경공부를 지도하는 신앙부장을 맡기도 했으며 군대에선 군종(軍宗)을 맡아 중대(中隊) 군인들의 신앙생활을 전담하기도 했다. 이 모든 게 기독교를 믿었기 때문에 할 수 있었던 역할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성격도 내성적이고 말재주도 없는 내가 남 앞에 서는 일은 없었을뿐더러, 어떤 모임의 장()을 맡는 일도 없었을 것이다.

바로 기독교가 처음에 한국에 들어올 때 이런 긍정적인 영향이 있었기에 민중에 깊이 자리할 수 있었다. ‘하나님을 믿으면 모두가 형제자매라는 캐치프레이즈는 계급이 뿌리 박혀 다수가 멸시받던 사회에 평등(平等)’이란 관념을 안겨줬고 이와 같이 특출난 능력이 없는 사람들도 신앙심에 따라 전면에 서서 예배할 수 있도록 했다. 바로 이런 긍정적인 풍조가 아직도 남아 있어 장로님이 예배를 이끌 수 있었던 것이다. 이 모습을 보니 정말 기분이 좋더라.

 

 

▲ 기독교를 어려서 믿었기에 여러 직책을 맡으며 여러 경험을 할 수 있었다. 합창단도 그 중 하나다.

 

 

 

사람여행: 사회의 부조리가 반영된 현재 교회의 문제

 

하지만 이게 모든 교회의 모습은 아니다. 시골교회이기 때문에 가능하지 도시에 있는 일반교회에선 불가능하다. 더욱이 수백 명이 모이는 대형교회라면 굳이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예전에 다녔던 교회는 작은 교회였지만 그곳 신자들의 직업은 천차만별이었다. 당연히 앞에 서서 이끌 수 있는 사람은 학식과 지위가 있어야 했다. 못 배우고, 열정만 있는 사람은 식사 봉사ㆍ청소 봉사 등 뒤에서 묵묵히 하는 일만 해야 했다. 물론 식사봉사나 청소봉사를 폄하하려는 건 아니지만, 교회에선 봉사에도 위계가 있다는 게 마음 아플 뿐이다.

그 당시엔 그런 모습이 당연한 것처럼 보였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건 사회적인 편견이 고스란히 교회에서도 받아들여진 모습에 불과했다. 사회에서뿐만 아니라, 교회에서까지 차별을 당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런 차별주의는 성경 말씀을 어긴 것이다.

 

 

여러분이 화려한 옷을 걸친 사람을 쳐다보고서는 선생님은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십시오.”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당신은 저기 서 있으시오.”하거나 내 발판 밑에 앉으시오.” 한다면, 여러분은 서로 차별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가 된 것이 아니겠습니까? 야고보2:3~4

 

 

위 성경말씀은 교회 내에서의 차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이런 차별은 한국사회에서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여느 사회에나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이 돌아가시고 난 후, 기독교는 유대인의 민족 종교가 아닌 모든 사람에게 열린 종교가 되었다. 신약시대 이후로는 선민사상(選民思想)보다 예수 믿으면 구원받고 천국에 간다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받아들여지며 차별보단 평등으로, 사회적인 억압보단 평화로 나아갈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다. 한국에 천주교가 처음 들어왔을 때, 조선왕조가 극도로 싫어했던 이유는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계급적인 불평등을 부조리하다고 비판할 수 있는 평등사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남녀칠세부동석(男女七歲不同席)’인 세상에서 남녀가 같이 예배를 드리고, 여성의 발언권이 제한된 사회에서 여성도 동등하게 이야기를 할 수 있었으니, 조선의 권력층이 얼마나 위기감을 느꼈을지는 불 보듯 뻔한 것이다. 이게 바로 신약시대 이후 전세계에 기독교가 퍼질 수 있었던 저력이다.

하지만 종교가 사회의 한 부분으로 들어온 이상, 사회구조와 완벽하게 분리될 수는 없었나 보다. 위의 내용처럼 교회 내에서도 사회적인 지위에 따라 대우가 달랐으니 말이다. 그리고 이런 모습은 어느 사회든 변하지 않는 하나의 문제였던 것이다. 지금도 한국 교회에서 대우를 받는 사람은, 장로가 될 수 있는 사람은 지위나 학식 등으로 제한되어 있다. 이게 사실인지 정 궁금하면 한국의 대형교회, 중형교회의 장로님들이 어떤 사람인지 찾아볼 일이다. 성경에 위와 같은 내용이 있음에도 대부분의 교회들은 외적 조건에 따라 차별대우를 하고 있으니, 이건 하느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위배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야고보가 지금의 교회를 본다면, 분명히 악한 생각을 가진 심판자들의 집단이라 비판할 것이다.

 

 

▲ 기독교, 특히 예수는 물질적인 세상에 참 진리를 외쳤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기독교는 물질적인 세상에 더욱 편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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