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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 45. 산림욕과 기우(杞憂)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45. 산림욕과 기우(杞憂)

건방진방랑자 2021. 2. 1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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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림욕과 기우(杞憂)

 

 

독경산을 따라 걷는다. 2차선 도로로 차 통행도 많지 않다. 산세를 관찰하며 걷는 데 열중하기만 하면 된다. 하늘엔 구름이 가득 껴있고 기온은 서늘한 듯했다.

 

 

 

삼림욕, 산행의 즐거움

 

이런 날이 걷기 좋은 날이다. 아직 이파리가 무성하게 자라지 않아 산록의 푸르름을 느낄 순 없지만 새싹들이 피어오르는 걸 보고 있노라니, 참 행복하더라. 천지가 생동하는 기운이 나에게도 전달된다. 내 몸도 천지자연의 일부이니, 자연의 약동(躍動)은 나에게 힘을 그대로 전해준다. 산바람은 시원하고 상쾌했다. 누군 삼림욕을 즐기러 비싼 돈을 내고 찾아간다는데 나는 일상 속에서 이렇게 즐기고 있다.

점심때쯤 영양읍에 도착할 수 있었다. 마음도 가볍고 발걸음도 가볍다. 어제 일정을 정할 땐 영양읍까지만 가려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미 목적지에 도착했으니, 남은 시간만큼 부담 없이 즐기며 가면 된다. 이제부터 걷는 건 덤이기에 서두를 것도 늦었다고 긴장할 필요도 없으며, 계획이 흐트러졌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다. 달라진 삶의 이정표만큼 다른 인연들이 엮이고 다른 사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 영양은 고추가 유명하다는 것을 버스정류장 구조물을 통해 알 수 있다.

 

 

 

기우, 생을 즐기지 못하는 자의 비명!

 

그럼에도 걱정이 됐던 건 봉화읍까지 가는 길에 면소재지가 한 군데 밖에 없다는 것이었고 오늘과 내일 걸을 경로엔 면소재지가 아예 없다는 것이었다. 몇 채의 집이 모여 있으면 교회가 있기도 하니 앞서서 걱정할 필욘 없지만, 불확실하다는 게 두려웠던 것이다. 이런 걱정을 기우(杞憂)’라고 할 수 있다.

 

 

기나라에, 어떤 사람이 하늘이 무너져 몸 둘 곳이 없을까 근심하여 먹고 자지도 못하였다. 또 그 사람의 근심을 걱정해주는 사람이 있어, (그 사람의 근심함을) 그로 인하여 가서 깨우치며 하늘이라는 것은 기가 모인 것뿐이어서 어느 곳인들 기가 없는 곳이 없습니다. 만약 (몸을) 굽혔다 폈다하며 호흡하여 종일토록 하늘과 땅 사이를 다닐지라도 어찌하여 무너지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하늘이 과연 기가 모인 것이라면, 해와 달과 별은 당연히 떨어지지 않을까요?”라고 말했다. 깨우치려는 사람이 해와 달과 별 또한 기를 모은 것 중에 빛이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떨어진다 해도 (그대를) 다치게 하진 못합니다.”라고 말했다.

그 사람이 그렇다면 땅이 꺼지면 어쩝니까?”라고 물으니, 깨우치려는 사람이 땅은 흙덩이가 모인 것뿐입니다. 그래서 사방의 빈 공간에 채워진 것은 어디인들 흙덩이가 아님이 없습니다. 만약 걷고 뛰며 종일토록 땅 위에 움직일지라도 어찌하여 무너지겠습니까.”라고 말했다.

그 사람은 (걱정이) 풀린 듯 크게 기뻐했고 그를 깨우치려던 사람도 또한 (걱정이) 풀린 듯 크게 기뻐했다. 열자(列子)』 「천서(天瑞)

杞國有人, 憂天地崩墜, 身亡所寄, 廢寢食者.

又有憂彼之所憂者, 因往曉之曰: “天積氣耳, 亡處亡氣. 若屈伸呼吸, 終日在天中行止, 奈何憂崩墜乎?”

其人曰: “天果積氣, 日月星宿不當墜邪?” 曉之者曰: “日月星宿, 亦積氣中之有光耀者, 只使墜亦不能有中傷.”

其人曰: “奈地壞何?” 曉者曰: “地積塊耳, 充塞四虛, 亡處亡塊. 若躇步跐蹈, 終日在地上行止, 奈何憂其壞?”

其人舍然大喜, 曉之者亦舍然大喜.

 

 

▲ 기우는 신중하다는 의미보다 삶을 즐기지 못하고 걱정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보통 쓸데없는 걱정을, ‘기우(杞憂)’라고 한다. 기우는 열자라는 책에 나오는 고사다. 하늘이 무너질까, 땅이 꺼질까 걱정하여 삶을 고통스럽게 사는 모습이 꼭 남의 일 같지 않다. 어떤 책에 보니 현대인들의 걱정 중 90%일어나지도 않은 일에 대한 걱정이라고 한다. 그만큼 현대인들의 스트레스는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낸 스트레스라는 얘기다. 걱정의 늪에 빠져 현재를 즐기지 못하며 사는 현대의 사람들의 모습. 보험 상품이나 끝없는 재테크 욕구, 자기 개발 부추김은 현대인의 그와 같은 불안심리를 이용한 것이다. 닥치지도 않은 불안 때문에 현재를 희생하게 만드는 메커니즘, 그게 현대인들의 삶을 팍팍하게 만들고 있다. ‘기우’, 그건 현대인들에게 만연한 병이다.

나 또한 이런 모습과 다르지 않다. 낯섦을 경험하려고 여행하는 건데도, 미리 앞서서 닥치지도 않은 일을 걱정하고 있으니 말이다. 궁지에 몰리면,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면 되는데도 온갖 극단적인 상황들을 떠올리며 주저하고 있다. 나야말로 기우(杞憂)’에 버금가는 한우(韓憂, 한국인의 근심)’이자 건우(乾憂, 건빵의 근심)’라고 할만하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라도 조금씩 걱정에서 자유로워지는 연습을 해야겠다. 행복은 그저 오지 않는다. 연습과 노력을 통해서만, 걱정을 하지 않는 노력을 통해서만 온다. 잘 곳을 구하든, 못 구하든 상관없이 앞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해 하는 마음으로 달려가 보련다.

 

 

▲ 얼굴에 근심이 한가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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