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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 46. 잠자리를 구하기 위한 고군분투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46. 잠자리를 구하기 위한 고군분투

건방진방랑자 2021. 2. 16. 1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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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자리를 구하기 위한 고군분투

 

 

점심은 과자와 음료수로 간단히 때웠다. 가는 길에 조지훈 생가가 있는 주실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도로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갈 수 있는데도 그냥 지나쳤다. 여행기를 쓰고 있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왜 그랬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바쁜 것도 아니었고, 힘든 것도 아니었는데 말이다. 막상 걸어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그 당시엔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나 보다.

 

 

▲ 918 지방도로를 따라 가니 지훈문학관까진 겨우 15분 정도 걸으면 갈 수 있는데도, 지나치고 말았다.

 

 

 

스산한 바람에 실린, 온갖 망상들

 

4시쯤 교회가 보여 가봤으나 목사님은 안 계셨다. 시간이 너무 이른 것 같아 조금 더 걷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부턴 더 첩첩산중이더라. 산으로 앞이 가로막혀 있고 계속 가봐야 언제 마을이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정확히 어제 정자에 올랐을 때의 기분과 같았다. 그때 버스정류장에 서 계신 할머니에게 다가가 얼마만큼 가야 마을이 나오나요?”라고 물어봤다. 50분 정도 걸어서 산을 넘어가면 마을도 있고 교회도 있다고 말씀해 주신다.

거기서 할머니와 한참이나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정도 친해지자 염치 불구하고 이 마을에 신세질 수 있는 분은 없을까요? 홀로 사시는 할아버지면 좋은데...”라고 운을 뗐다. 할머니는 몇 군데 집을 지목해 주시긴 했지만 그러지 말고 산을 넘어 교회로 가는 게 나을 거라고 말씀해주시더라. 교회 말고 민가에서도 자고 싶은데 그게 쉽지 않았다. 하는 수없이 전속력으로 걸어야만 했다. 이미 시간은 5시가 넘었다.

힘차게 걸어 교회에 왔는데 여기에도 목사님은 안 계시더라. 이젠 하는 수 없다. 무작정 기다리는 수밖에.

사람여행을 하면서 무작정 기다려 보기는 처음이다. 불안과 기대가 교차하는 순간이다. 어둠이 짙어질수록 내 자신이 더욱 초라해진다. 살을 파고드는 스산한 바람에 옷깃을 여미며 집으로 바쁘게 발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부럽게 쳐다본다.

한참 기다리고 있으니, 교회에 기도하러 할머니 한 분이 오시는 거였다. 내가 먼저 인사했다. 낯선 사람이 뚱하니 교회 정문에 있는데, 인사도 하지 않고 멀뚱멀뚱 있으면 얼마나 무서우실까. 그래서 인사를 건넨 것이고, 할머님이 알아보시자 사정을 말하고 목사님을 기다리고 있노라고 했다. 할머니는 추우니 안에 들어가 기다리라고 하시더라. 할머니는 잠시 기도를 하시더니, 가셨다.

할머님이 가시고 몇 분이 흘렀을까. 다시 그 할머님이 오시는 거였다. 그때 나는 웬일인가 하는 심정으로 기대를 했던 것 같다. 혹 할머니가 자기 집에라도 가자고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런데 그런 희망적인 이야기는커녕 목사님이 고향에 가셨다는 비보를 전해주시는 거였다. 그러더니 장로님 댁이 어딘지를 가리켜 주신다. 목사님이 출타 중이니, 장로님에게 가서 허락을 맡으라는 의미였다.

 

 

▲ 생각 없이 걸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하지만 시간이 저녁으로 가까이 갈 수록 불안은 엄습해 온다.

 

 

 

낯선 이를 내 공간에 받아들일 수 있나?

 

상황이 이렇게 된 이상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무작정 장로님 댁으로 갔다. 문 앞에 도착했지만, 들어갈 수가 없었다. 풀어 놓은 개 세 마리가 마당에서 나를 보고 맹렬하게 짖는 바람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서 있어야 했다. 집 안에서는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이 창문을 통해 보인다. 문밖에서 힘껏 소리쳐 보았지만 개 짓는 소리에 묻히는지 아무 반응조차 없다. 한참을 그렇게 불렀나 보다. 그제야 아드님이 나왔고 사정을 얘기하니 들어오라고 했다.

온 가족이 모여 밥을 먹고 있었는데 낯선 사람이 끼어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전혀 불쾌해하거나 어색해하지 않더라. 장로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장로님은 별 이야기 없이 밥 먹었냐며, 자리에 앉으라고 하셨다. 국토종단 때 초평면에서의 경험과 같다고나 할까. 이렇게 해서 영광스럽게도 대가족 저녁식사에 끼게 되었다.

밥을 먹고 잠시 이야기 나눈 후 장로님과 함께 교회로 올라가려던 그때 목사님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오늘은 교회에 못 간다는 얘길 장로님에게 하시는 것 같더라. 목사님도 안 계신 교회에서 자라고 할 순 없었는지, 그냥 배낭을 내려놓은 방에서 자라고 말씀해주셨다.

자신의 집에 전혀 알지도 못하는 사람을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교회에서 자게 할 수 있음에도 목사님의 한 마디 말씀에 선뜻 잘 수 있도록 하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가? 물론 목사님은 교회에서는 못 잔다고 하고, 나는 어떻게든 발을 디딘 상황에서 잠깐 고민하셨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짧은 순간에 그렇게 쫓아내지 않고 받아들여줘서 정말로 감사했다. ‘과연 그런 상황에서 내가 장로님 입장이었다면, 나는 장로님처럼 과단성 있게 행동할 수 있었을까?’라고 생각해본다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 스스로도 못하는 일들을 남에겐 당연한 듯 요구하고 있는 셈이니, 반성이 많이 되던 순간이었다. 좀 더 마음을 열고 세상을 살아야 하고, 내 것이 생겼을 때 지키려 하기보다 좀 더 여유롭게 함께 나누며 살 수 있도록 해야 할 텐데 말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짐을 풀고 있었다. 어찌 되었든 자는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행복했고, 사람여행 중 가족이 많은 민가에서 최초로 자는 것이기에 여러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것 같아 행복했다.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를 듣고자 했던 이 여행의 목적에 제대로 부합하는 순간이라 할 수 있다.

 

 

▲ 어떻게 될진 모르지만 무작정 기다려 본다. 바람이 옷깃을 파고들어 두꺼운 옷까지 꺼내 잆었다.

 

 

인용

목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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