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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 51. 아이들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창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51. 아이들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창

건방진방랑자 2021. 2. 16.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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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창

 

 

청량산 입구에 들어서니 공사중이란 팻말이 보이더라. 그 옆엔 입산금지라는 안내판도 보인다. 산불 나기 쉬운 계절이기에 입산을 통제한단다. 그 순간 많이 망설였다. ‘입산금지기간에 무단으로 입산했다가는 벌금도 물고 다시 하산해야 할지도 모르니 말이다.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가기도 싫었다. 이렇게 된 이상 무작정 가보는 거다. 까짓것 걸리면 몰라서 그랬어요라고 발뺌하면 어떻게든 되겠지.

 

 

▲ 산에 들어서자마자 경고판이 보인다. 잔뜩 쫄았다.

 

 

청량산 코스를 놓쳤으면 어쩔?

 

초입길은 경사도 급한 데다 길까지 파헤쳐 있으니 걷기가 참 불편했다. 조금 오르니 포크레인이 보였다. 공사 중이라고 통행이 안 된다고 막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다들 식사하러 가셨는지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10분 정도 급경사의 오르막길을 올랐다. 끔찍하게 훼손된 자연환경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아프더라. 차들이 다니기 좋은 길을 낸다는 명목 하에 이렇게 자연을 훼손해도 되는지 잘 모르겠다.

 

 

▲ 뒤에 끔찍하게 훼손된 자연 현장이 보인다. 차길을 만들기 위해 산을 훼손하고 있다.

 

 

급경사가 끝나는 지점에 오르고 나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혹시나 입산금지때문에 감시하는 사람들이 있나 둘러보니 아무도 없다. 앞에 보이는 터널을 통과하니, 내리막길이 나왔다. 그런데 앞쪽에서 당당히 조깅하며 올라오는 분이 보이는 게 아닌가. 뭐야 이거? ‘입산금지라더니, 이거 순 뻥 아냐. 허탈한 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 봉화 청량산에 설치된 구름다리. 경관도 좋고 구름다리도 매력적으로 보인다.

 

 

내리막길을 따라 한참을 내려가니, 관광버스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산금지된 산을 사람들은 버스까지 타고 와서 입산하고 있었던 것이다. 버스들이 그렇게 많은 걸 보니, 청량산은 등산객들에겐 매력적인 산인 것 같았다.

 

 

▲ 자연은 위대하다.

 

 

그때 걸었던 길은 산을 오르는 길은 아니고 청량산 중앙을 가로질러 가는 길이었다. 길 양 옆으로 뻗어 있는 청량산 능선은 가히 일품이었다. 역시 두 분의 이야기를 듣길 잘했다. 정말 이곳을 그냥 스쳐 지나갔다면 엄청 후회할 뻔했다. 이 산엔 국내 최장 길이인 구름다리가 있다고 한다. 맘 같아선 그 다리를 건너고 싶었지만, 한참 올라가야 할 것 같아 포기했다. 산 밑엔 낙동강이 흐르고 산등성이에서 흐르는 폭포는 아직도 얼어 있었다. 한 폭의 수채화 같은 그 풍경에 넋을 잃고 한참이나 쳐다봤다.

 

 

▲ 아직 얼어 있다. 이런 곳을 지나쳤으면 정말 아쉬웠을 뻔했다.
▲ 왼쪽: 원래 가려던 코스(13.64Km) / 오른쪽: 청량산 코스(13.45Km)

 

 

 

아이들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창

 

청량산에서 내려와 한참을 걸으니, 마을이 나오더라. 지도엔 아무 표시도 없던 곳이기에, 뭐 하는 곳인지 궁금해 들어가 봤다. 그랬더니 글쎄 면사무소가 있는 것이 아닌가. 시간도 얼추 잠자리를 구해야 할 시간이었기에, 이쯤에서 멈추기로 했다.

교회에 갔는데, 목사님은 출타중이신가 보다. 목사님이 오실 때까지 무작정 기다리기로 했다. 교회 계단에 앉아 여행기를 쓰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을 꼬마들은 교회 앞 공터에 나와 자전거를 타며 놀고 있다. 참 평온한 광경이다.

놀던 아이 중 한 명이 나에게 와서 뭐 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래서 지도책을 보여주며 같이 놀고 있으니, 한 둘씩 내가 있는 쪽으로 온다. “아저씨, 여기서 뭐해요?”라며 궁금해하되, 피하려 하진 않는다.

도시에선 낯선 사람이 가까이 오면 피해라거나, ‘누군가가 호의를 베풀면 경계해라고 가르치는데, 얼마나 사람에 대한 본질을 거스르는 가르침인 줄을 알겠다. 그건 어디까지나 도시의 익명성과 개인주의가 만들어 놓은 것이지만, 그렇게 가르쳐야만 하는 사회적인 분위기가 씁쓸하다. 하지만 이곳의 아이들은 그러지 않았고, 아이다운 열린 마음과 세상에 대한 고정관념이 없다는 것이 보였다. 세상은 궁금한 것투성이다. 그럴 때 아이는 그걸 알려 하고 알기 위해 만지고 질문하고 가까이 다가선다. 하지만 도시에선 이런 게 모두 금지되어 있다. 사람은 피해야 하고, 궁금한 건 몸으로 익히기보다 지식으로 익혀야 하며, 가공된 공간(놀이터, 키즈카페)과 같은 곳에서만 만지는 게 허용된다. 과연 어른들은 아이들을 위한 공간으로 왜 도시만이 최적의 장소라 생각하는 것인지 알지 못하겠다.

아이들하고는 금세 친해져서 같이 놀았다. 아이들은 신발 멀리 던지기도 하고, 패트병에 모래를 담아와 모래성을 짓기도 하며 놀았고 난 그걸 지켜보며 누가 더 멀리 던졌네, 모래성이 너무 작네 하는 따위의 참견을 하며 2시간 정도 함께 놀았다.

도시 아이들은 어려서부터 궁금한 것을 거세하는 방법을 배웠다면 여기 아이들은 궁금한 게 있으면 당연한 듯 참지 않는다. 그 자리에서 물어보고 왜 그런지 납득이 되어야 물러난다.

모든 걸 받아들일 것 같은 놀라운 흡입력과 앎에 대한 욕구를 보고 있노라니, 니체가 말한 낙타-사자-아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의 변화가 어떤 의미인지 알겠더라. 그건 운명을 즐길 줄 아는, 그래서 자신의 가능성을 고양할 줄 아는 능력이었다. 어쩌면 어른이 되어 간다는 건, 그와 반대되는 게 아닐까. 운명을 거스르고, 자신의 가능성을 점차 닫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아이들과 터울 없이 맘껏 놀고 있으니,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어른이 된 지금, 언듯언듯 어린 시절의 잔상이 이렇게 삶에 끼어든다. 나에게 어린 시절의 감흥을 선물해준 꼬마 친구들에게 감사했다.

 

 

▲ 낙타는 묵묵히 순응하는 존재, 사자는 맞서는 존재, 하지만 어린아이는 인생을 즐기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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