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단이란 낙인이 찍힌 재림교회와의 첫 인연
이 교회는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란다. 예전에 기독교인이었을 때(나도 한 땐 열렬한 신자였다. 그때 열렬히 믿은 탓에 지금은 열렬히 돌아섰긴 하지만~) 목사님으로부터 이단이라는 수식어로 많이 듣곤 했던 곳이다. 그땐 목사님 말씀이 무조건 옳다고 생각했을 뿐, 왜 이단인지, 무엇이 다른지 알아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맹신(盲信)으로 목사님 말이라면 쉽게 순종하고 의심하지 않던 때였으니 그럴 만도 하다.
그런데 지금에서야 의도하지 않았지만 이런 식으로 인연이 되어 토요일에 예배드리는 이유도 듣고 사람들도 만나보게 되었으니, 인생 한번 재미지다. 여행하면서 ‘신천지’도 ‘여호와 증인’도 여타 기독교의 다른 종교기관도 모두 접해보고 싶었는데 지금에서야 그 소원이 이루어진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궁금했던 것들을 하나하나 물어보기 시작했다.
철저히 성경말씀 대로 살기
토요일에 예배드리는 이유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기 위해서란다. 일요일 예배는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Constantine)에 의해 국가종교로 공인되면서 미트라 신앙인(태양신 숭배자)들을 흡수하기 위해서였다고 설명하셨다. 우리나라 천주교가 가족제사를 인정하는 것처럼 기독교도 여러 종교의 요구를 수용하며 점차 비성경적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서는 성경의 말씀을 제대로 지키려 하며 그런 노력 때문에 토요일에 예배드리게 됐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누누이 말씀하셨다.
이런 부분에선 ‘성경으로 돌아가자(Back to the Bible)’고 외친 루터의 모습이 떠올랐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교조화된, 그래서 하느님의 가르침으로부터 멀어진 신앙에 대한 신랄한 비판의식에서 비롯되었다. 율법이나 교황의 말씀을 벗어나 오로지 성경을 기준으로 신앙을 지키자는 선언이었기에 파격적이었다. 그와 같이 토요일 예배를 주장하는 재림교회의 모습도 일대혁신처럼 느껴졌다. 일요일은 쉬는 날이기 때문에 예배드리는 데 어려움이 없지만, 토요일은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건 어찌 보면 초기기독교 신자들이 핍박을 무릅쓰고 신앙을 지켜나갔던 것처럼, 끊임없이 사회 시스템과 싸워야 하니 말이다. 그들의 주장에 100% 동의할 수 없다 할지라도 그와 같은 파격과 희생을 감수한 믿음은 인정하고 싶었다.
재림교회는 기독교의 분파일 뿐
재림교회는 소규모 집단이 믿는 이단적인 종교라고만 생각했는데, 그런 편견과는 달리 대규모 집단이었다. 삼육재단이 있고 교육ㆍ음식ㆍ의료 등 다방면으로 자신들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기독교가 구한말에 들어올 때, 종교로서만 들어왔다면 천주교처럼 배척당하고 여러 순교자를 냈을 것이다. 그런데 종교란 명분은 뒤로 감추고 의료ㆍ교육을 앞세워 들어옴으로 거부감 없이 정착할 수 있었다. 서울의 이름 있는 대학들, 지방에 있는 100년 이상 된 중ㆍ고등학교들(나의 모교인 전주 신흥고등학교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 외에 기독교 병원(전주엔 예수병원이 있다) 등이 그 실상을 보여주는 예라 할만하다.
바로 그와 같은 예를 삼육재단의 사업 분야에서도 여실히 볼 수 있다. 주류 기독교 교단에 의해 낙인 찍혔지만, 내가 봤을 땐 그런 낙인이야말로 자신의 얼굴에 침 뱉는 꼴처럼 보였던 이유가 거기에 있다. 주류 기독교와 재림교회는 이란성 쌍둥이일 뿐이다. 기본적인 것은 거의 같지만, 세부적인 부분에서 몇 가지 차이만 있을 뿐이다. 재림교회도 예수님을 믿고, 성경을 읽으며, 그걸 지키기 위해 노력한다.
그러나 운영 면에 있어서 주류 기독교보다 재림교회가 더 좋아 보였다. 주류 기독교는 교파로 나눠져 있고 각 교회가 개인 소유로 파편화되어 있지만 이곳은 하나로 뭉쳐 있기 때문이다. 천주교처럼 재림교회는 교구란 개념의 ‘합회’가 있어 공동자산으로 운영된다. 목사님은 합회에서 각 교회로 파송하는 식이니, 경쟁적으로 사람을 불리기 위해 비신앙적인 방법으로 숫자를 채우기 위한 편법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 영향인지 이분들과의 대화를 하면서 편안하게 할 수 있었고, 작은 교회지만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일반 교회였으면 교회당을 짓는다며, 배가운동을 한다며 시끄러웠을 텐데 말이다. 비신앙적인 질문을 막 던지는데도 성심성의껏 대답해주셔서 이야기하는 시간이 즐거웠다. 어쨌든 이런 식으로라도 다른 종교를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서 다행이다. 많은 편견들이 짧은 만남을 통해 깨졌다.
점심으로는 ‘삼육라면’을 끓여서 먹었고 간식도 챙겨주셔서 즐거운 마음으로 길을 나설 수 있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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