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밭에서 일을 하며 만난 인연
오후 2시의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천천히 걷는다. 느낌으론 봉화읍내가 멀지 않은 것 같다. 짧은 거리를 걷는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절로 여유로워지며 모든 것에 말 걸고 싶어진다. 그러니 금방처럼 재림교회에도 들어가 한참이나 썰을 풀고 올 수 있었으며 물씬 내린 봄기운을 만끽하며 걸을 수 있는 것이다.
도움의 손길을 다시 내밀다
남은 시간을 주체할 길이 없어 둘러보며 가는데 노부부가 밭일을 하는 게 보인다. 무작정 그루터기에 배낭을 벗어놓고 그분들에게 다가가 도와줄 거 없냐고 물었다. 감자를 심는 모습이 보였기에, 이번에는 실패하지 않으리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그런데도 환하게 웃으시면서 그럴 필요 없다고 하신다. 뭐 거부 또한 예의상 그런 것일 수도 있으니, 그냥 내가 할 일을 찾아서 하면 됐다. 하는 일이 빤했으므로 나는 할머님이 하던 일을 이어받았다. 할아버지가 밭고랑에 구멍을 내주시면 난 그곳에 감자를 쑤셔 넣기만 하면 된다. 고추 심는 일과 다르지 않은 반복적인 일이라 어렵지 않게 할 수 있었다. 단지 같은 일을 반복하려니 몸이 쑤시고 허리가 어찌나 아프던지. 역시 밭일, 아니 농사야말로 정직한 땀방울이 필요하다. 어떤 잔머리도 여기엔 통하지 않는다. 묵묵히 해나갈 수 있는 ‘단순한 정직함’ 그게 비결이다.
사람여행⑪: 정직한 땀방울을 흘리시던 노부부 이야기
할아버지는 80살이 넘으셨단다. 그런데도 쉬지 못하고 일을 해야 한다고 한탄하신다. 얼마 전에 경운기에 다리가 눌려 12주 진단을 받고 수술도 하셨다며 바지를 걷어 상처 부위를 보여주신다. 뼈가 앙상할 정도로 깡말라있는 다리, 그 위에 수많은 바늘 자국이 선명하고 상처 부위는 깊이 파여 있기까지 했다. 얼마나 큰 사고가 났는지 그걸 보고 느낄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할머님이 건강하신가 하면 그렇지도 못했다. 할머니도 허리 수술을 하셨단다. 나에게 일을 넘겨주면서 고맙다고 연거푸 말씀하신 이유가 거기에 있었다. 허리가 아픈데도 감자를 심느라 굽혔다 폈다를 반복해야 했으니, 말을 못해서 그렇지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
막상 그런 현실을 알고 두 분을 보니 가슴 한구석이 쓰려왔다. 이분들처럼 정직하게 사신 분들도 없을 텐데, 오히려 이런 분들은 나이가 들어서까지 쉬지 못하고 고통 속에 일해야 하며, 죽는 날까지 몸만 놀리다 가야 하니 얼마나 이 세상에 한이 많으실까. 나야말로 이런 분들의 희생을 좀먹고 살았던 식충이에 불과하다. 그러면서도 늘 무언가 부족하다고 불평이나 하고 있었으니, 참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힌다 그죠? 그곳에서 현실을 조금이나마 볼 수 있었다.
그럼에도 그분들을 도와주고 나니 기분이 상쾌했다. 역시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된다는 말이 사실이다. 이렇게 행복한 여행도 있는데 그동안 도대체 무엇에 쫓기며 여행을 한 거지? 그동안 무엇을 좇으며 여행을 한 거지? 여행의 반절 정도가 끝난 지금 다시 한 번 되돌아봐야 할 때가 된 것 같다. 앞으로도 오늘 같은 여행을 하련다. 예상하지도 말고, 피하지도 말고. 걷는 것에 치중하지도 말고 현실을 무시하지도 말고.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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