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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2011년 사람여행 - 65. 형님이라 부르고 싶은 목사님을 만나다 본문

연재/여행 속에 답이 있다

2011년 사람여행 - 65. 형님이라 부르고 싶은 목사님을 만나다

건방진방랑자 2021. 2. 16.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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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이라 부르고 싶은 목사님을 만나다

 

 

4시쯤 되어서야 남한강변에 도착하게 되었다. 국토종단 때 양수리까지 걸어가며 남한강의 경치를 만끽했는데 2년 만에 다시 보니 반갑더라. 이 강줄기가 흐르고 흘러 서해로 간다고 생각하니 참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서서히 저무는 햇빛이 남한강에 비치니, 남한강을 둘러싼 산들이 한 폭의 수묵화처럼 고즈넉하게 보이더라. 이런 광경을 눈으로 보며 걸을 수 있다니, 참 행복하다.

 

 

▲ 저물녘 햇빛에 비친 산들이 수묵화만 같다.

 

 

 

가곡면에 둥지를 틀다

 

시간이 꽤 지났는데도 마음은 여유로웠다. 그 이유는 수요예배가 있는 날이기 때문이다. 보통 7시나 730분에 시작되니, 그 시간까지만 교회에 도착하면 된다. 물론 빨리 도착하면 좋겠지만 시골은 몇 시간을 걸어야 겨우 마을이 나오며, 교회가 없는 경우도 많으니 안심할 수 없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얼마 안 가면 면소재지가 나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걷다 보니 이미 시간은 630분이 넘어가고 있었다. 앞쪽에 면소재지가 있을 것 같긴 한데, 얼마만큼 떨어져 있는지 모르니 불안하다. 그때 지나가는 분이 있어 물어봤다. 그랬더니 30분 정도만 걸으면 나온다더라. 그때부턴 전속력으로 걸었다.

곧 가곡면에 도착했고 언덕에 들어선 건물들을 훑으며 교회를 찾았는데 안 보인다. 면 소재지에 교회가 없다니 이건 나의 상식을 벗어나는 일이었다. 어느새 마을 끝에 다다랐지만 보이지 않았다. ‘설마 진짜 교회가 없는 건 아니겠지. 경찰서에 가서 물어봐야겠다고 생각하고 방향을 꺾었다. 되돌아가면서도 교회를 찾으며 갔다. 그제야 보이지 않던 십자가가 건물 사이로 어렴풋이 보인다. 숨바꼭질도 아닌데 꼭꼭 숨어라 십자가 보일라하는 듯했다. 시간이 늦었기에 부리나케 교회로 달려갔다.

650분이 넘었다. 교회는 예배 준비로 분주하더라. 잘 수 있도록 허락된다는 보장은 없었으나 막무가내로 예배를 드렸다. 마을은 작은데 꽤 많은 사람들이 예배를 드렸다.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에게 사정을 이야기하니, 오히려 나보고 자는 문제는 걱정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말씀해주신다. 형식적인 대꾸가 아니라 진심이 느껴지는 말씀이었기에 마음이 놓였다.

 

 

▲ 사진으로 보는 것만으로 운치 가득하다. 걸을 맛 나던 길이다.

 

 

 

사람여행: 형님이라 부르고 싶은 목사님

 

예배가 끝나고 목사님을 따라 아버님 댁으로 올라갔다. 사모님이 사택에서 아이들을 가르치시기에 자리를 피한 것이다. 목사님이 손수 저녁을 챙겨주셔서 밥을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때 생각도 못했던 일이 일어났다. 담근 술이 있는데 마실 거냐고 물으신 것이다. 교회 목사님들은 술을 죄악시하기 때문에 그런 일이 있을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당연히 어떻게 해야 하는 줄 몰라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랬더니 오히려 목사님이 아무렇지 않다는 듯 다시 권하는 것이다. 담근 술을 시원하게 마시며 저녁을 먹고 있으니, 꼭 내 집에 온 것 같은 기분 들더라. 색다른 경험이었다.

목사님과 이야기하고 있으니, 인량교회한종식 목사님이 떠올랐다. 한종식 목사님과 이야기할 때도 어떤 권위의식이나 편협한 종교관 같은 건 느낄 수 없었는데 이 목사님도 같았기 때문이다. 난 이걸 자유로운 영혼삘(feel)’이라 표현한다. 목사님도 몇 년 전에 한비야씨가 국토종단 했던 루트(바람의 딸, 우리 땅에 서다라는 책에 소개된 여행경로)를 따라 종단을 하셨단다. 어쩐지 나에게 호의적으로 대해 주시더라니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그건 어찌 보면 같은 일을 한다는 동지의식 비슷한 거였으니 말이다.

목회 활동을 잠시 맡겨놓고 떠난 터라 전속력으로 걸었다고 하신다. 그래서 땡볕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임에도 무려 20일 만에 여행을 끝마치셨단다. 처음에 국토종단 이야기를 꺼냈을 땐 나도 경험이 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들었다. 그러나 내막을 듣고 나니 거만 떤 것이 부끄러워지며 경외감이 들더라. 나와는 넘사벽이란 말씀되시겠다.

바짝 엎드려 형님이라 하고 싶었지만 가까스로 참았다. 난 뭔가 한계라는 것을 넘은 사람을 보면 경의를 표하고 싶다. 현실이 그렇다고 주저하기보다 맞서는 사람들 덕에 세상은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도보여행 이야기로 공감대가 형성되니, 이야기 하기가 한결 더 편해졌다.

 

 

▲ 형님이라 찐하게 부르고 싶은 목사님이 계신 곳. 이야기가 잘 통해 편하게 얘기할 수 있었다.

 

 

 

사람여행: 민중신학자이신 목사님

 

사모님의 수업이 끝나자 목사님과 나는 사택으로 내려갔다. 난 교회에서 자는 줄 알고 짐을 챙기려 했는데, 목사님이 사택에서 자라고 말씀하신다. 사택의 옷장을 옮기고 샤워를 했다. 따뜻한 물로 씻고 나니 그렇게 개운할 수가 없더라.

다 씻고 나와서 목사님과의 대화는 다시 시작되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두서없이 했는데, 글쎄 1240분까지 하게 된 것이다. 말이 이렇게 잘 통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이야기하는 시간이 참 신났다.

 

 

목사님과 이야기가 잘 통한 이유는 종교적인 관점, 사회를 보는 시각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나도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궁금한 것들을 물어볼 수 있었고, 목사님도 목사라는 자의식을 앞세우지 않고 허심탄회하게 대답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기독교에 대한 비판도 많이 했지만 목사님도 기독교의 부패상은 인정하시며 많은 부분이 바뀌어야 한다고 하셨다. 목사님은 신학교에 다닐 때, 무신론에 빠지기도 했다는 과거담도 솔직하게 이야기 해주셨다. 그때 목사님에게 영향을 끼치신 분은 민중신학의 아버지인 다석 류영모 선생님이란다. 류영모 선생님의 사상은 예수를 절대시하지 않는다. 누구든 한울님의 얼을 따라 살면 그리스도가 된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타종교를 배척할 필요도, 자신의 종교만이 옳다고 고집할 필요도 없단다.

 

 

기독교 믿는 자는 예수만이 그리스도라 하지만 그리스도는 예수만이 아니다.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인 한아님으로부터 오는 성신(聖神)이다. -다석어록, 344

 

 

류영모 선생님에게 영향을 받으신 목사님답게 생각이 열려 있어서 기독교에 비판적인 나와도 이야기가 잘 통했던 것이다. 목사님도 다석 류영모 선생님처럼 근실한 신앙인으로서 우뚝 서셔서 이 시대를 어루만지는 목회자가 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했다. 어찌나 시간이 빨리 가고 이야기가 감칠맛이 나던지, 시간이 더 허락된다면 밤새도록 이야기하고 싶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새벽기도에 나가야 하기에 잠을 자야 했다.

목사님 오늘 정말 감사합니다. 모처럼 정말 좋은 시간을 보내서 기분이 좋네요. 역시 단양으로 경로를 바꾸길 정말 잘 했다니깐요.

 

 

▲ 시대의 큰 어르신들. 류영모 선생님, 함석헌 선생님, 문익환 선생님.

 

 

 

지출내역

 

내용

금액

육개장

6.000

일일 총합

6.000

총 지출

119.400

 

 

▲ 나의 안락한 잠자리.

 

 

인용

목차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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