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와 격정적인 기도
오창-병천 도로는 확장공사 중이더라. 4차선 도로를 혼자서 점령하고 걷는 기분은 남달랐다. 차를 신경 쓰지 않고 여기저기 맘껏 구경하며 걸을 수 있다는 건 확실히 매력 만점이었다.
병천은 가게 상호로 자주 봤던 곳이다. ‘병천순대’라는 상호명이었는데, 오늘 가는 곳이 진짜 그 상호명의 병천인지 궁금했다. 그런데 병천 진입로에 들어서니 순대국밥집이 정말 많더라. 그제야 그 병천이 그 병천인 줄을 알게 됐다.
여긴 유관순 누나의 기념관이 있다. 유관순 누나는 아우내 장터에서 만세운동을 주도하다가 체포되었다고 배웠는데, ‘아우내’라는 말이 ‘두 물이 아울러지는 곳’이란 뜻을 지닌 병천(竝川)의 우리말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실을 알고 보니 낯선 이 장소가 왠지 친숙한 장소마냥 보이더라. 역시 무언가를 알고 보는 것과 모르고 보는 것엔 엄청난 차이가 있다. 그런데 이곳은 순대가 왜 유명해진 걸까? 이곳에서 돼지를 집단 사육하기라도 한단 말인가?
첫 교회에서 자게 되다
오늘은 재림교회에서 저녁 예배가 있는 날이라 예배도 드릴 겸, 잠자리도 구할 겸 교회로 찾아갔다. 6시 반 정도면 사람들이 한 둘씩 올 줄 알았는데 아무도 오지 않더라. 괴산에서 얼핏 듣기로 면 단위에 있는 교회엔 목사님이 상주하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설마 삼일밤 예배까지 하지 않을 줄은 몰랐다. 그래도 미련 때문에 계속 기다리다가, 7시 반에 포기하고 떠났다.
이미 어둠에 짙게 깔려 있다. 당연히 마음도 더욱 조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보이는 교회에 들어가 무작정 부탁했더니, 규모가 꽤 큰 교회임에도 불구하고 잘 곳이 없다고 하신다. 어쩔 수 없이 돌아서서 뛰다시피 걸었다. 그런데 잠시 후에 뒤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뒤돌아보니, 아까 거부하셨던 분이 오라며 손짓을 하시는 거다. 그래서 가봤더니, 기도실이 있는데 춥다며 거기라도 괜찮냐고 물어보신다. 왜 갑자기 맘이 바뀌었는지는 나도 모른다. 추측하기론, 사순절 기간이라 뭔가 마음에 꺼림칙한 게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어쨌든 운 좋게도 한 번에 허락을 받아 교회에 자리 잡을 수 있었다. 감사하다.
경건하고 깊이 있는 종교를 바라며
이 교회는 지금까지 본 교회와는 달리 광신적인 분위기가 났다. 수요일이 아님에도 예배를 드리더니, 지금 이 시간(21:5)까지 통성기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온갖 방언과 ‘아버지’라고 외치는 소리 등 기괴한 소리가 유아실에 누워있는 나의 귀청을 사정없이 때린다. 몸은 피곤한데 정신은 더 말짱해지는 고통이라니.
나도 한땐 열정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저런 광신적인 행동엔 적응되지 않는다. 목청껏 기도하는 게 간절한 신앙심의 표현방법일지는 모르지만, 꼭 ‘예수’ 삼창을 하고 소리 질러 기도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다. 만약 소리가 큰 사람의 기도만을 신이 먼저 들어주신다면, 마이크를 대고 기도하는 목사님의 기도가 먼저 성취될 것이다. 실제로 이에 관련된 말씀이 도마복음 3장에 실려 있다.
1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이 말하기를, ‘보라, 나라가 하늘에 있다’하면, 하늘의 새가 너희를 앞 설 것이다.
2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나라가 바다에 있다’하면 물고기가 너희를 앞설 것이다.
3 오히려 나라는 너희 안에 있고 너희 밖에 있다.
4 너희가 자신을 알 때 너희를 알게 될 것이며, 너희가 바로 살아계신 아버지의 아들들임을 깨달을 것이다.
5 그러나 너희가 자신을 모른다면 가난 중에 살게 되고 그 가난이 바로 너희이다.”
목청 높여 기도하는 이유가 하느님이 하늘에 계신다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위의 내용에 비추어 본다면, 하늘에 계시다고 할 경우 사람이 아무리 소리 지르며 기도할지라도 새의 조용한 기도가 먼저 하느님께 들릴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보니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결국 기독교인들이 늘 주장하는 대로, 하느님이 어디에나 계신다고 한다면 소리치며 기도하지 않아도 된다는 이야기가 된다. 오히려 예수의 이미지를 떠올리더라도 골방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모습이 떠오르지 않은가.
그렇다, 골방에서 조용히 기도하는 성자의 모습에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신령한 기운이 어리는데 반해 박수치고 온 몸을 흔들며 격정적으로 기도하는 모습에선 왠지 모를 경박한 느낌이 든다. 분명 일반 기독교 신자라면 후자의 모습에서 진심 어린 신앙심을 발견할지도 모르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볼 때 그렇다는 것이다. 묵상과 사색이 있는 종교의 모습을 기독교에 바라는 게 부질없는 일인 줄은 알지만, 그럼에도 아쉬운 맘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어쨌든 나는 통성기도회가 끝날 때까지 못 잔다. 에휴~ 그래도 여긴 온돌판넬이 있는 방이어서 다행이다.
지출내역
내용 |
금액 |
맥주+라면 |
2.000원 |
일일 총합 |
2.000원 |
총 지출 |
131.400원 |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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