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월한 전도법을 선보인 목사님
목사님은 특이하게도 여성분이셨다. 얼핏 본 소감으론 도도한 느낌에 별로 고생을 해보지 않은 느낌이었다. 딱 정형화된 도시적 이미지를 지녔다고나 할까.
사람여행⑲: 사모에서 목사로
국밥을 먹으며 처음으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원랜 목사님 사모님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돌아가시게 되자 목사님 안수를 받고 이렇게 목회 활동을 하게 되었단다. 여자 목회자로서 힘든 일들이 많았을 텐데 위축된 모습은 별로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 있는 교회 외에도 다른 곳에 또 하나의 교회가 있더라. 주보에 보니 두 군데 교회가 표시되어 있어 어떤 상황인지 물어봤다. 그랬더니 그 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하셨는데 신자 수가 자꾸 줄어서 병천에 새 교회를 하나 더 개척한 것이란다. 어찌 보면 사업 확장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사업 확장’이라기보다 ‘교세(敎勢) 이전’이라 표현해야 맞을 것 같았다.
목사님은 순대국밥을 먹으면서 나와 이야기하셨지만 옆에서 홀로 국밥을 드시는 할머니도 챙겨주셨다. 목사님은 국밥을 다 먹자마자 그쪽으로 자리를 옮기시더니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셨다. 무슨 이야기를 하셨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전도를 하기 위한 이야기는 아니었고 단순히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듯했다. 할머니도 자신에게 신경 써주는 목사님이 고마웠을 것이다. 목사님은 주위의 사람들을 허투루 보지 않았으며 친근하게 다가가기 위해 애쓰셨던 분이었다. 마치 사람여행을 떠난 내가 그토록 하고 싶었던 사람들과 어우러지는 모습을 목사님이 친히 보여주신 거다.
사람여행⑲: 목사님의 전도 방법
목사님이 할머니를 대하는 모습을 보니 ‘전도란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전도도 어떻게 보면 소통의 영역에 포함될 것이다. 나의 생각을 어떻게 남에게 전해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소통에 대한 고민 없이 무작정 열정 하나만 앞세워 전도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은 타인에게 불쾌감만 느끼게 하기 십상이다.
예전에 이와 유사한 경험이 있었다. 열심히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가고 있는데, 앞쪽에서 운동하시는 아주머니가 걸어오시는 거다. 신호에 대기하기 위해 섰는데 그분이 오시더니, 갑자기 “예수 믿고 천당 가세요”라고 ‘씨부리고’ 유유히 가신다. 나 들으라고 한 소리였지만 자신은 자기의 할 일을 했다는 듯 휑하니 스쳐 지나가셨다. 근데 그런 말을 하는 아주머니의 얼굴엔 미소보단 아무 표정이 없었으니, 내가 어떤 생각을 했겠는가. ‘아~ 예수 믿으면 저렇게 얼굴이 어두워지고 다른 사람은 생각도 하지 않고 자신이 옳다는 말만 하는구나~’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그건 기독교인을 가장한 ‘안티 기독교인’의 행위에 다름 아니다. ‘예수 믿으라’는 말이 꼭 ‘믿으면 안 되요’라는 말처럼 들렸기 때문이다.
전도란 무엇인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전혀 고민해본 적이 없으니 전도를 맹렬히 하면 할수록 일반인들은 기독교에 대한 반감만 커진다. 전도는 소통이다. 그렇기에 진심이 담겨 있지 않으면 헛것이고, 상대방에 대한 관심이 담겨 있지 않으면 미친 짓일 뿐이다. 그러면 전도의 방법은 어찌해야 할까? 먼저 『노자(老子)』 36장을 보자.
장차 움츠리게 하려거든 반드시 펴지게 하며
장차 약하게 하려거든 반드시 강하게 하며
장차 없애려거든 반드시 흥하게 하며
장차 빼앗으려거든 반드시 가지게 한다.
이것을 ‘미명’이라 하니 유약한 것이 굳세고 강한 것을 이긴다.
물고기가 연못을 떠나 살 수 없듯이, 나라를 다스리는 이기도 사람에게 보여줘서는 안 된다.
將欲歙之, 必固張之,
將欲弱之, 必固强之,
將欲廢之, 必固興之,
將欲奪之, 必固與之,
是謂微明. 柔弱勝剛强.
魚不可脫於淵, 國之利器, 不可以示人.
전도도 미명(微明)이다. ‘미세한 밝음’으로 상대방에게 다가가야 한다. 즉, 전도하려는 사람이 전도한다는 의식으로 다가가선 안 된다. 그러니 전도한다는 생각은 지우고 그 사람과 친해지고 행동으로 본을 보여야 한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마음이 전해지며 종교에 대한 호기심이 생긴다.
이와 같은 측면에서 봤을 때, 목사님이 할머니에게 다가가 말동무가 됐던 것은 최고의 전도방법이 아니었나 싶다. 비록 입으로 종교를 말하진 않았지만 진심 어린 마음은 전해졌을 테니 말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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