덤으로 하는 여행
지금부터 하는 여행은 덤이라 생각한다. 누군가 병에 걸리거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난 후 ‘이제부터 나의 삶은 덤으로 주어진 삶’이라 생각하며 전혀 다른 가치관으로 삶을 살기도 한다. 그래서 어떤 이는 종교에 귀의하여 종교적 신념에 따라 살기도 하며, 또 어떤 이는 자신이 지금껏 받아온 것을 환원하기 위해 봉사하며 살기도 한다. ‘덤’이란 생각 자체가 삶의 방향성을 바꾸는 요인이 되는 까닭이다. 그렇다고 한다면, 덤으로 하는 여행도 기존에 해왔던 여행의 방식과 차별화되는 부분이 있어야 할 것이다. 과연 무엇을 어떻게 다르게 하겠다는 것일까?
자린고비가 아닌 진정 즐기는 여행으로
지금까지는 돈을 아끼기 위해 배고픔과 추위, 거절의 부담도 끌어안은 채 여행을 했다. 최대한 돈을 쓰지 않으려 먹는 즐거움, 편히 쉬는 기쁨마저 포기한 것이다. 분명히 그런 자린고비식 여행의 장점도 많다. 여기에 대해선 이미 수산면에서 냉대를 받으며 한참 썰을 풀었으니 여기선 되풀이하지 않겠다. 하지만 자린고비식 여행이 계속 될수록 피골이 상접하고 여행이 힘들어지는 게 단점이라면 단점일 터. 이 기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여행에 대한 안 좋은 생각만 더 커질 수도 있다. 그러니 적정선을 유지해야만 한다.
더욱이 이젠 여행이 끝나가는 마당이니 지금까지 못 먹었던 것, 조금이라도 편할 수 있었던 것을 하나하나를 찾아서 하며 기억에 남는 여행을 하고 싶다. 또한 하루의 걸을 양을 정하지 말고 좋은 곳에선 몇 시간도 머물며 감상하고 싶다. 지금까지는 걷느라 좋은 환경도, 관광지도 둘러보지 못했다. 그래서 남는 건 유적지 근처를 지나왔다는 자위일 뿐이었다. 직접 보고 느꼈다면 나에게 어떤 의미로든 다가왔을 것이며 내 가치관에 영향을 줬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수박 겉핥기[外舐水匏]ㆍ후추 통째로 삼키기[全呑胡椒]라는 게 바로 이런 게 아닐까.
내가 지금껏 해왔던 여행의 한계가 이것이라면, 덤으로 하는 여행에선 이런 한계를 넘어서야 한다. 맘껏 즐기는 여행이란 가기에 급급한 여행도 아니며, 고통을 자초해야 되는 여행도 아니다. 단지 걷는 것 자체가 즐거워야 하며 스치는 풍경들에 푹 잠길 수 있어야 하는 여행이리라. 이렇게 덤으로 주어진 시간에 감사하며 맘껏 여행해 보련다. 5주차 여행이자, 마지막 주의 여행은 나에게 또 다른 도전이다.
구름 낀 날 걷는다는 것
어젠 황사비가 내렸고 오늘도 지역에 따라 비가 온단다. 하늘엔 구름이 잔뜩 껴있고 바람도 심상치 않게 분다. 이런 날 걸어 다녀야 한다면 누구나 걱정이 앞설 것이다. 하지만 도보여행을 해본 사람은 안다. 오히려 이런 날이 걷기에 더 좋다는 것을 말이다. 시원해서 좋고 바람이 몸을 밀어주니 좋다. 단지 아쉬운 건, 시계가 안 좋아 선명하게 자연을 볼 수 없다는 것뿐이다. 그러니 이런 날엔 한 눈 팔지 말고 맘껏 걸어가면 된다. 이틀 동안 쉰 탓인지 몸이 엄청 가볍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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