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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고독한 군중(Lonely Crowd)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고독한 군중(Lonely Crowd)

건방진방랑자 2021. 12. 17.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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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군중

Lonely Crowd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다.”

어느 청바지 회사의 텔레비전 광고 문구다. 개성을 생명처럼 여기는 젊은 세대에게는 상당한 호소력이 있을 법하다. 그러나 그 회사에서 만드는 청바지가 실은 윤전기(輪轉機)로 신문을 찍듯이 대량생산되는 것이라면 어떨까? 그 회사의 목적, 그 광고의 목적은 개성을 빌미삼아 똑같은(따라서 개성 없는) 제품을 될수록 많이 판매하려는 데 있다. ‘개성 있는청바지를 대량으로판매하려는 회사 측의 모순, 남들과 똑같이 사는 게 죽기보다 싫어 대량 복제품을 사서 입는 소비자의 모순 - 개성의 상품화란 이렇듯 자체 모순에 불과하다.

 

 

1950년대의 저작인 고독한 군중(The Lonely Crowd)에서 미국의 사회학자인 리스먼(David Riesman, 19092002)은 그런 현상이 현대 사회의 타인 지향적 성격 때문이라고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것은 자신의 주체성이 아니라 자신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라는 이야기다. 개성을 강조하는 게 어떻게 타인 지향적이냐고? 오히려 자존심을 지키는 게 아니냐고? 물론 남보다 똑같이 사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하는 태도까지는 그렇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대량 소비주의에 굴복하는 모순적 태도는 타인 지향적 태도에 다름 아니다.

 

리스먼이 고독한 군중을 분석하는 도구이자 대상은 성격이다. 그는 정신분석학과 문화인류학의 접근 방식을 수용하여 성격을 분석한다. 하지만 사회학자로서 리스먼이 말하는 성격은 개인적 또는 심리적 성격이 아니라 사회적 성격이다. 리스먼은 사회적 성격을 사회적ㆍ역사적 환경에 의해 항구적으로 결정된 개인의 욕망과 만족의 구성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사회적 성격이란 한 개인이 외부 세계, 즉 타인들과 교섭하는 자세와 태도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사회적 성격에 따라 사회는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첫째는 잠재적 인구 성장기의 사회인데, 여기서는 무엇보다 전통적 가치관이 중요하다. 둘째는 과도적 인구 성장기의 사회로서, 이 사회의 구성원들은 내부 지향적인 태도로 자신의 삶을 영위한다. 셋째는 초기적 인구 감퇴기의 사회로서, 여기서는 타인 지향적 태도가 개인의 사회적 성격을 구성한다.

 

사회학자란 원래 사회를 이리저리 구분하고 칼질하는 데 취미가 있는 사람들이니까 리스먼의 그런 구분 자체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더욱이 1950년대에 중요한 요소였던 인구를 가지고 사회를 분석한 것은 지금 보면 낡은 감이 있다. 그러므로 리스먼의 세 가지 구분을 전통 사회, 과도기 사회, 현대 사회로 대체하는 편이 더 알기 쉽다. 더 중요한 것은 그가 일찌감치 타인 지향성이라는 현대 사회의 큰 특징에 주목했다는 점이다.

 

 

어의상으로는 고독과 거리가 멀어야 할 군중이 고독하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군중이란 바로 리스먼이 구분한 셋째 부류, 즉 타인 지향적 사회 속에서 살아가는 개인들이다. 사회화를 기준으로 말하면 전통 사회에서는 전통이 사회화의 역할을 하며, 과도기 사회에서는 각 개인이 유아기에 사회화의 과정을 내재화하게 된다. 이를테면 성인식이나 학교를 통해 사회화의 문제가 해결되는 방식이다.

 

여기까지는 사회화가 어렵지 않지만 타인 지향적 사회, 즉 현대 사회의 경우는 다르다. 여기서는 각 개인이 다른 사람들의 기대와 선택에 대해 각자 나름대로의 반응과 자세를 정립함으로써 사회화가 이루어진다. 결국 이 사회에서는 사회화의 책임과 과제가 전적으로 개인에게 달려 있는 셈이다. ‘더불어 사는 사회구호는 그럴듯하지만 이제 개인들은 서로 함께 살아가면서도 고독한 존재일 수밖에 없다.

 

모든 문제를 스스로의 책임으로 해결해야 하는데, 정작 그 해결을 위한 참고자료는 자신을 바라보는 타인들의 시선 밖에 없다. 어떻게든 개성과 정체성을 확보해야 하지만 내게 개성과 정체성을 부여하는 것은 타인들이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앞에 말한 청바지의 소비자처럼 맹목적인 방식으로 개성을 추구하는 모순적인 태도가 비롯된다.

 

 

가장 발달한 현대 사회에서 오히려 그 모순이 증폭된다는 것은 묘한 현상이다. 구조주의 정신분석학자인 자크 라캉(Jacques Lacan, 1901~1981)은 일찍이 아이의 인식이 성장하는 과정을 거울에 비유한 바 있다. 아기는 비슷한 또래의 다른 아기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거울 앞에서와 같은 제스처를 취한다. 거울을 밀치듯이 그 아기를 밀어 아기가 넘어지면 오히려 자기가 운다. 자기가 넘어진 것처럼 생각하기 때문이다. 라캉은 그런 아기의 정체성을 이자(二者) 관계라고 불렀는데, ‘삼자(三者) 관계를 기본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서, 그것도 아기가 아닌 어른들이 그런 나르시시즘을 통해 개성과 주체성을 확보해야 한다는 것은 묘한 아이러니다.

 

리스먼의 고독한 군중은 발간 즉시 수만 부가 매진되는 열렬한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개인의 본질적 고독을 이야기한 그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것 역시 몰개성의 개성을 말해주는 증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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