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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념어 사전 - 계몽주의(Enlightenment) 본문

어휘놀이터/개념어사전

개념어 사전 - 계몽주의(Enlightenment)

건방진방랑자 2021. 12. 17. 0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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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주의

Enlightenment

 

 

‘enlighten’이란 말은 뭔가를 밝힌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계몽주의라는 개념에는 광원(光源)과 밝혀야 할 대상, 즉 어둠이 있어야 할 것이다. 무엇이 무엇을 밝힌다는 걸까? 계몽주의가 태동한 시기가 17세기라면 그 답을 알기 어렵지 않다. 계몽주의는 근대 이성의 빛으로 중세의 어둠을 밝히려는 지적 운동이다.

 

 

서양의 중세는 신이 모든 것의 원인이자 목적이었고 신학이 철학을 비롯한 모든 학문의 왕으로 군림하던 시대였다. 이런 중세를 어둠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곧 종교의 통제력이 그만큼 약화되었다는 의미다. 1517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가 비텐베르크(Wittenburger) 교회의 대문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이면서 시작된 종교개혁은 신을 중심으로 하는 모든 사고방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인간 중심의 새 시대를 열었다. 같은 시기 북이탈리아에서 성행한 인문주의는 불붙은 종교개혁의 엔진에 기름을 끼얹는 효과를 가져왔다.

 

인간적인 것, 그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것은 바로 이성이었다. 신의 입을 닫았으니 이제는 인간의 입을 열어야 한다. 새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는 인간 이성으로 세계를 이해하고 새 시대에 생겨난 많은 의문에 답하고자 하는 운동이 계몽주의다. 이 운동은 현실의 모든 방면에 두루 영향을 주었으나 그 구체적인 양태는 철학적 측면과 정치적 측면으로 나누어볼 수 있다.

 

 

프랑스의 수학자이자 철학자인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는 철학사상의 유명한 명제를 통해 생각하는 인간, 즉 이성을 가진 주체를 철학의 출발점으로 삼았다. 이것을 계기로 근대 철학은 신을 논증하는 데 초점을 맞춘 중세의 신학-철학으로부터 완전히 결별하고, 이성의 힘으로써 세계와 인간 자신을 해명하는 것을 과제로 설정했다. 이후 이성 중심의 근대 철학은 대륙의 합리론과 영국의 경험론으로 나뉘어 전개되다가 칸트(Immanuel Kant,1724~1804)와 헤겔(Hegel, 1770~1831)에게서 종합과 완성을 이루게 된다.

 

정치적으로 계몽주의는 인간 사회가 탄생하고 발전하는 메커니즘에서 신의 역할을 배제하고 인간 서로 간의 약속을 중시하는 사회계약의 이념을 낳았다. 사회가 형성되기 이전의 자연 상태에 관해 홉스와 로크(John Locke, 1632~1704)의 견해는 정반대다. 홉스(Thomas Hobbes, 1588~1679)리바이어던(Leviathan)에서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고 보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했고, 로크는 타인의 허가를 얻거나 타인의 의사에 의존하지 않고 자연 법칙의 테두리에서 자신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대로 자신의 활동을 결정하고, 자신의 재산과 신체를 사용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유를 누리는 상태 -정부론라고 긍정적으로 보았다. 홉스는 전제군주제를 최선으로 여겼고 로크는 의회민주주의를 결론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개인의 상충하는 이해관계를 조정하기 위해 사회가 성립되었다는 기본 전제는 두 사람이 마찬가지다.

 

이렇듯 사회는 신의 명령이 아니라 인간의 이성에 의해 탄생했기 때문에 신이 지배자를 내려주었다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따위는 쉽게 부정된다. 1688년 명예혁명으로 영국에서 역사상 최초의 의회민주주의 체제가 성립된 것과 1789년 프랑스혁명으로 자유ㆍ평등·박애와 인권의 개념이 싹튼 것은 계몽주의의 가장 대표적인 정치적 표현이다. 이를 계기로 정치적 절대주의는 의회민주주의로, 경제적 중상주의(重商主義)자본주의로 대체되기 시작했다. 의회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는 것을 보면 계몽주의의 기획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빛과 어둠이 있고 산이 높으면 골짜기도 깊은 법이다. 화려하고 밝기만 한 줄 알았던 계몽주의에도 실은 짙은 그늘과 골짜기가 있었다. 신의 손아귀에서 풀려난 근대 이성은 한동안 탄탄대로(坦坦大路)를 마음껏 내달렸다. 정치적으로 신분제를 없애고 민주주의를 도입했으니 누구도 불만이 없을 것이요, 경제적으로 산업혁명과 과학기술을 발전시켜 대량생산을 이루고 수많은 문명의 이기를 만들어냈으니 모두가 박수갈채를 보낼 만한 업적이다. 하지만 그런 눈부신 성과를 올린 이성은 심각한 부작용도 낳았다.

 

자본주의 초창기에 자본주의의 핵심인 영국에서 여섯 살짜리 아이가 하루 열여섯 시간의 중노동에 시달린 심각한 현상이 그 부작용의 시작이었다면, 서유럽 국가들의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수많은 토착 문명사회들이 와해되고 붕괴된 것은 합리적 이성의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 소산이다. 그 결정판은 인류 역사상 최대 비극인 20세기의 두 차례 세계대전이었다.

 

사태가 이쯤 되자 비로소 이성의 맹목적인 질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현대 철학에서 이성을 바라보는 관점은 두 갈래로 나뉜다. 비판철학 운동의 선두주자인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 1903~1969)는 이성 자체가 문제라기보다는 이성이 도구화된 점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비판적 이성을 부활시키는 것을 해법으로 제안한다. 그와 달리 포스트모더니즘 계열의 철학자들은 이성이 주도하는 계몽주의적 기획이 사실상 효력을 상실했다고 판단하고 이성을 배제한 새로운 사고방식만이 이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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