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XI. 의미와 자유 - 3. 조건적 자유의 이념, 대붕과 메추라기의 자유 본문

고전/장자

타자와의 소통과 주체의 변형, XI. 의미와 자유 - 3. 조건적 자유의 이념, 대붕과 메추라기의 자유

건방진방랑자 2021. 7. 4. 15:38
728x90
반응형

2. 대붕과 메추라기의 자유

 

장자는 대붕 이야기를 통해서 의미의 생산, 주체의 변형, 따라서 자유라는 것이 얼마나 지난한 작업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날기 위해서 대붕이 구만 리라는 공간을 필요로 했던 것처럼, 자신을 다른 주체로 변형시키기 위해서는 우리는 새로운 의미 창조의 고통을 감당해야만 한다. 작은 홈에 차 있는 물에는 한 장의 잎도 충분히 배라는 의미를 부여받을 수 있지만, 이런 작은 물에서 그릇은 배라는 의미를 부여받을 수 없는 법이다. 기존의 의미체계 속에서 주체는 극 의미 체계에 맞게 구성되어 있을 뿐이다. 여기서 주체의 자유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단지 자신의 조건을 묵묵하게 복종하는 것을 긍정하는 자유, 관념적인 자유, 즉 자기만족에 불과할 것이다. 대붕이 대붕일 수 있기 위해서 이 새는 자신의 주체 형식과 맞는 공간을 찾아야만 한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해서 자신을 대붕이라는 주체 형식으로 변형시키기 위해서 대붕은 이미 드넓고 훤하게 트인 하늘에 있어야만 한다. 따라서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곤이라는 물고기가 대붕이라는 커다란 새로 변형되고, 그와 동시에 곤이 관계하던 바다가 대붕이 관계하는 하늘로 변했다는 점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바로 장자가 말하려던 자유가 새로운 의미의 생산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는 점을 가장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 학자들이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대붕 이야기는 정신적 자유와 자족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오히려 정신적 자유와 만족을 상징하는 것은 대붕이라기보다는 메추라기와 같은 보잘것없는 새들이 아닐까? 대붕의 부자유스러움, 너무나 커서 날기 위해서 구만 리를 비상해야만 하는 대붕의 부자유스러움에 대해서 메추라기는 조롱하고 있지 않는가? 놀랍게도 기존의 이해와는 달리 어떤 힘든 조건에도 마음의 안정을 유지하고 자족할 수 있는 존재는 대붕이 아니라 타고난 대로 혹은 주어진 조건에 따라서 이리저리 나뭇가지들 사이를 날아다니는 작은 메추라기와 같은 잡새들이라고 해야 한다. 이들은 고착된 자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따라서 자신이 메추라기라는 사실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자유롭지 못한 주체를 상징하고 있다. 이들의 이런 부자유는 새로운 의미를 생산하지 못하는 무능력에 있다. 다시 말해 이들은 주어진 고정된 의미 체계 속에서 구성된 자신의 주체 형식을 맹목적으로 맹신하고, 나아가 이것을 자신들의 숭고한 본질인 양 긍정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들의 자유로움을 이야기한다. “이 나무 저 나무를 자유롭게 날아다니고, 앉고 싶으면 자유롭게 앉는다고 자족하면서 이들은 대붕이 대붕으로서 자신의 주체를 변형시키는 노력을 조롱하고 있다. 삼종지도(三從之道)를 따르면서 또는 삼종지도에 의해 길러져서 구성된 복종하는 여성이라는 자신의 주체 형식을 긍정하면서, 어떤 여성이 새로 들어온 며느리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고 하자. ‘나는 어려서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랐고, 시집가서는 남편의 말을 따랐으며, 남편이 죽은 뒤 큰 아이의 말을 따르며 살았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은 나의 자유로운 선택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그런 자유로운 선택을 무척 자랑스럽게 생각한단다.’ 이 여성은 자신이 기존의 의미 체계가 선택한 대로 자신의 삶을 선택했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착각 속에서 정신적 자유와 만족은 의미를 가지게 된다. ‘복종의 자유, 복종에 대한 자발적인 선택!’

 

 

 

 

인용

목차

장자

원문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