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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철학 삶을 만나다,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 2장 철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경험, 반시대적이어야만 하는 철학 본문

책/철학(哲學)

철학 삶을 만나다, 제1부 철학적 사유의 비밀 - 2장 철학적 사유와 인문학적 경험, 반시대적이어야만 하는 철학

건방진방랑자 2021. 6. 29. 05: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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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시대적이어야만 하는 철학

 

 

특정 공동체에 속한 어떤 사람과 논쟁할 때 우리는 반드시 그 공동체에서 통용되는 규칙에 따라 주장을 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우리는 상대방을 전혀 설득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힘든 주장이나 근거를 제시한다면, 일체의 대화나 논쟁이란 것이 모두 무의미해질 겁니다. 따라서 모든 논쟁에서 우리가 이성적으로 추론하는 과정은 우리라는 맥락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레셔의 주장을 음미해볼 가치가 있었던 것이지요.

 

그러나 홀로 사유하는 과정에서도 우리라는 것, 즉 특정한 공동체를 매번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일까요? 진정 그렇다면, 공동체가 수용하기 힘든 새로운 주장, 즉 자신만의 고유한 사유란 전혀 불가능한 것이 되고 말 겁니다. 만약 자신이 속한 공동체가 새로운 생각을 전혀 수용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그 새로운 발상은 잘못된 것이라고 보아야 할까요? 결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의 새로운 사유는 특정한 공동체의 통념을 넘어서는 것이지만, 더 보편적인 판단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이 점에서 레셔의 생각, 나아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생각은 편협할 뿐만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비록 그들이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생각에는 새로운 사유의 출현을 근본적으로 억압할 수 있는 정당화의 논리가 숨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철학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같은 공동체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논쟁할 때 그들을 이기고, 설득하는 기술이라고 봅니까? 아니면 주어진 현실을 매번 긍정하도록 만드는 정당화의 기술이라고 봅니까? 아마 여러분은 이런 주장에 고개를 갸우뚱거릴 것입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철학이 중요한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특정한 공동체가 공유한 통념을 넘어설 수 있도록 해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철학은 니체(F. W. Nietzsche, 1844~1900)니체는 20세기 사상에 커다란 자극을 주었던 중요한 철학자이다. 그는 초기 그리스철학, 쇼펜하우어, 바그너 등의 영향 속에서 칸트 이후 가장 강력한 비판철학자로 탄생한다. 칸트의 비판철학이 철저하지 못했다고 지적하면서, 니체는 이성과 도덕이라는 서양 학문의 양대 축을 계보학적 방법론으로 해체하려고 하였다. 주요 저시로 반시대적 고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선악의 지편, 도덕의 계보학에 대해등이 있다가 말했던 것처럼 반시대적인 고찰(unzeitgemässe Betrachtungen)’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도록 합시다.

 

 

참된 철학자는 시대에 내재하는 불만을 뛰어넘을 수 있도록 우리를 도울 수 있고, 사유와 생활에서 단순하고 정직하며, 따라서 이 말의 가장 깊은 의미로서 이해된 반시대적이라는 것을 우리에게 다시금 가르쳐줄 수 있는 자이다.

반시대적 고찰(unzeitgemässe Betrachtungen)

 

 

철학은 보편성(universality)’을 추구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때 철학의 보편성이란, 자신이 속한 특정 공동체에서 현재 통용된다는 의미의 일반성(generality)’이라는 개념과는 구별됩니다.

 

예를 하나 들어볼까요? 예전 조선 시대 여성들은 삼종지도(三從之道)라는 규칙을 반드시 지켜야만 했습니다. 삼종지도는 글자 그대로 세 가지를 따르는 법도를 의미합니다. 이 세 가지는 어떤 것이었을까요? 우선 여성은 결혼하기 전에는 아버지의 말씀을 따라야만 하고, 결혼해서는 남편의 말을 따라야만 하며, 마지막으로 남편이 죽은 뒤에는 자신이 낳은 아들의 말을 따라야만 했습니다[婦人有三從之義, 無專用之道. 故未嫁從父, 旣嫁從夫, 夫死從子. 의례(儀禮)』 「상복전(喪服傳)]. 한마디로 여성은 남성에게 절대적으로 복종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그렇다면 여러분은 조선 시대의 삼종지도를 과연 보편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특수한 시대의 공동체가 믿었던 통념, 즉 그 시대의 구성원들에게 익숙했던 일반적인 통념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까? 아직도 일부 극소수 사람들이 여성의 삼종지도를 마치 보편적인 진리인 양 믿고 있지만, 여러분 대부분은 삼종지도가 조선 시대라는 특정한 공간에서만 통용될 수 있었던 일반적규칙이라고 판단할 겁니다. 이미 우리는 조선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가령 여러분이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에 갔다고 해봅시다. 이때 여러분은 지금처럼 삼종지도는 전혀 보편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겠습니까? 물론 주장을 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려면 목숨을 내놓는 결단이 필요할 겁니다. 만약 그런데도 여러분이 삼종지도를 거부하는 이런 위험한 주장을 내놓는다면, 그게 어떻게 가능한 걸까요? 그것은 여러분이 이미 조선 시대라는 일반성을 벗어난 경험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상황을 생각해보도록 합시다. 타임머신을 타고 조선 시대로 건너간 여러분이 삼종지도를 비판했을 때, 그 주장에 동조하는 어떤 조선 시대 사람을 만났다고 해봅시다. 여러분이야 이미 조선 시대가 아닌 다른 시대에서 왔기 때문에 그런 비판을 할 수 있었지만, 도대체 이 사람은 어떻게 삼종지도를 비판할 수 있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그 사람이 철학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시대에 내재하는 불만을 간파하고 그것을 극복하려는 사람인 것입니다. 물론 그는 생각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서도 삼종지도를 거부하면서 살 수 있는 용기 있는 사람일 겁니다. 니체의 표현대로 그는 사유와 생활에서 단순하고 정직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사유와 생활은 얼마나 힘들고 고달픈 것이겠습니까? 그의 모든 것이 이미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체의 규칙과는 전혀 부합될 수 없는 것일 테니까요.

 

흥미로운 것은 철학이라고 해서 다 같은 철학이 아니고, 철학자라고 해서 다 같은 철학자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일반성만을 추구하는 철학도 있고 보편성을 추구하는 철학도 있습니다. 앞서 들었던 예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거짓된 철학자는 공동체의 일반성을 받아들여서 삼종지도를 정당화하려고 할 것입니다. 반면 참된 철학자는 삼종지도가 여성의 삶을 왜곡시킨다는 점, 그리고 그것이 시대에 내재하는 불만이라는 점을 간파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사유를 제공하겠지요. 그런데 사실 현 시점에서 어떤 철학이 일반성을 추구하는지 아니면 보편성을 추구하는지 명확히 구별하기가 그렇게 쉽지만은 않습니다. 일반성을 추구하는 철학도 자신이 주장하는 것이 보편적인 것이라고 우기기 때문이지요. 앞으로 여러분이 철학 책을 살펴볼 때 항상 경계하고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면서 여러분은 다음과 같이 질문해보아야 합니다. “이 책을 지은 철학자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를 넘어서서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시대에 안주하면서 사람들이 추종하는 일반성만을 지향하는가?”

 

철학은 우리라는 특정한 공동체에서는 수용되지 않더라도 앞으로 도래할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수용될 수 있는 새로운 주장을 제안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직 그럴 때에만 철학은 진정한 철학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니체는 참된 철학자반시대적이라고 표현했던 것입니다. 반시대적인 철학은 새롭습니다. 반시대적인 철학이 새로운 이유는, 그것이 기존 공동체의 일반성을 넘어서 보편성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나올 법한 오해 한 가지를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새로운 사유라고 말하면 보통 기발한 사유 혹은 엉뚱한 사유를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새로운 사유는 보통 성숙하지 못한 사유, 즉 젊은이들이 한때의 열정으로 생각해낸 것에 불과한 사유라고 폄하되기 쉽습니다. 그러나 철학이 지향하는 새로움은 한때의 일회적인 것으로 치부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대에 내재하는 불만을 예민하게 포착하여. 이 불만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보편성을 지향하는 것이 바로 철학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반시대적인 철학은 현실과 무관한 공상과 같은 무엇이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무엇보다도 현실에 더 밀접하게 뿌리를 내린 것이 바로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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