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유청(崔惟淸, 1095 헌종1~1175 명종4, 자 直哉)은 예종(睿宗)ㆍ인종(仁宗)ㆍ의종(毅宗)ㆍ명종(明宗) 등 사조(四朝)를 역사(歷事)하고 벼슬은 평장사(平章事)에 이르렀다. 석(奭)의 아들이며 정서(鄭敍)는 그의 처남이다. 인종(仁宗) 때 이자겸(李資謙)이 모역할 때 그를 미워하였으므로 실직(失職)되었다가 자겸(資謙)이 패한 뒤에 상주졸(尙州倅)이 되어 덕정(德政)을 베풀었다. 사신으로 금(金)에 갔을 때에도 언동(言動)이 예법(禮法)에 합하여 금인(金人)들을 탄복케 했다고 하며 정중부(鄭仲夫)의 난(亂)에도 제장(諸將)이 유청(惟淸)의 청덕(淸德)을 존앙(尊仰)하였기 때문에 군인들을 그 집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여 친척까지도 화를 면했다고 한다.
그는 평생에 서책(書冊)을 손에서 놓지 않아 경사(經史)와 자집(子集)을 널리 통하고 또 불설(佛說)을 매우 좋아하여 유석(儒釋)들 중에서 질문하러 오는 자가 분집(坌集, 먼지처럼 모여들다)하였으며 문생(門生)의 문하(門下)에서 다시 문생(門生)을 보게 되는 종백(宗伯)의 높은 영예를 누리기도 했다【이인로(李仁老)의 『파한집(破閑集)』 참조】. 그의 입신행도(立身行道)는 「훈자시(訓子詩)」 일편(一篇)에 잘 나타나 있으며 자손이 모두 귀현(貴顯)하여 ‘세세적선 경류자손(世世積善, 慶流子孫)’의 번영을 누렸다. 왕명으로 『이한림집주(李翰林集註)』를 찬정(撰定)하였으며 그의 저술도 문장 수백편과 『남도집(南都集)』이 있었다 하나 전하지 않는다. 시작(詩作)은 7편이 전하고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특히 「잡흥(雜興)」 구수(九首, 五古)가 널리 알려져 있다. 기일(其一)을 보면 다음과 같다.
春草忽已綠 滿園胡蝶飛 | 봄풀이 어느새 푸르러져서 동산에 온통 나비떼 날아 든다. |
東風欺人睡 吹起床上衣 | 자는 사이 동푸(東風)이 슬쩍 불어서 평상 위의 옷자락 펄럭이게 하네. |
覺來寂無事 林外射落暉 | 깨어 보니 쥐 죽은 듯 일도 없는데 멀리 숲 밖에는 저녁 햇빛 쏟아진다. |
依檻欲歎息 靜然已忘機 | 난간에 기대어 긴 한숨 쉴까 했더니 너무도 고요하여 세상만사 이미 잊었네. |
「잡흥(雜興)」 기팔(其八)을 참고하면 만년에 은거한 양주(楊州) 생활에서 얻어진 작품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지난날의 장지(壯志)는 사라지고 없지만 풍정(風情)은 때에 따라 언제나 새로운 것이므로 전원의 한가로움과 그 곳에서 소요하던 심경을 읊은 것이다. 남의 신하된 몸으로 최고의 지위에까지 오른[位極人臣] 노재신(老宰臣)의 인생회고가 숨김 없이 토로되고 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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