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식(曺植, 1501 연산군7~1572 선조5, 자 楗中, 호 南冥)은 이황(李滉)과 동시대를 살았지만 퇴계(退溪)와는 달리 지리산 백운동(白雲洞)에서 은거하며 학문만을 닦은 학자이다. 그는 ‘이정과 주희 이후론 저서가 불필요하다[程朱後不必著書]’라 하여 자신의 독특한 학설을 주장하기보다 성명(性命)을 닦은 후의 실행(實行)을 주창하는 실천적 학문경향을 보이었다. 그는 1558년 4월 지리산을 등반하여 기상을 키우고 「유두류록(遊頭流錄)」을 남기기도 하였거니와 그의 대표작 「천왕봉(天王峰)」 또한 그의 자부를 잘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請看千石鐘 非大扣無聲 | 천석 무게 저 종을 쳐다보시오, 큰 것이 아니면 두드려도 소리나지 않네. |
萬古天王峯 天鳴猶不鳴 | 만고(萬古)의 천왕봉(天王峰), 하늘이 울어도 울지를 않네. |
이 작품은 거경(居敬)의 자세를 읊은 것이다. 그는 평거(平居)에도 칼을 차고 보료에 앉아 그의 의연함을 보였다고 한다. 크게 두드리지 않으면 소리나지 않을 거대한 천왕봉(天王峰), 자신의 은거지에서 쳐다보이는 천왕봉의 의연함을 노래하였다. 하늘이 울어도 미동(微動)하지 않는 천왕봉(天王峰)의 위용(偉容)이다.
이 작품에 대해 신흠(申欽)은 『청창연담(晴窓軟談)』 권하 20에서 ‘조식이 절의를 숭상하여 벽처럼 우뚝 천길 높이 서 있는 기상이 있다’고 하고 또 ‘시운이 호방할 뿐만 아니라 자부심이 적지 않다.’고 하였다[曹南冥名植 字楗中 尙節義 有壁立千仞之氣 隱遯不仕 爲文章 亦奇偉不凡 如請看千石鍾 非大叩無聲 萬古天王峯 天鳴猶不鳴 不徒其詩韻豪壯 亦自負不淺也]. 지리산처럼 거대한 산을 바라보면서 굳건한 자세를 배우고자 하는 자세를 읽을 수 있다.
물론 이러한 작품은 ‘벽립천인지기상(壁立千仞之氣像)’으로 추앙받는 인격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시운과 의경이 높아질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의 문집 『남명집(南冥集)』에는 제명(題名)이 「제덕산계정주(題德山溪亭柱)」로 되어 있으며, 전구(轉句)의 ‘만고천왕봉(萬古天王峰)’도 ‘쟁사두류산(爭似頭流山)’으로 되어 있어 천왕봉(天王鋒)을 직접 말하지 않고 있다. 천왕봉(天王峰)을 만드는 데에는 뒷 사람의 손길도 함께 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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