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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1. 시론가의 시업(남용익)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1. 시론가의 시업(남용익)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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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시론가(詩論家)의 시업(詩業)

 

 

조선후기에 들어오면서 양난(兩亂) 이후의 황량한 시단에 전대(前代)의 시작(詩作)들을 정리하는 사업이 활발하게 진행된다. 시선집을 다시 내고, 시화를 창작하거나 기존의 시화를 모아 새로이 총집으로 발간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그 대표적 인물이 남용익(南龍翼)김득신(金得臣)홍만종(洪萬宗) 등이다. 이들은 스스로 전인(前人)들의 시작(詩作)을 수집ㆍ정리ㆍ비평하고 있지만, 그들이 생산한 시작(詩作)이 반드시 비평가의 명성에 걸맞는 것은 아니다.

 

남용익(南龍翼, 1628 인조6~1692 숙종18, 雲卿, 壺谷)은 숙종년간(肅宗年間) 오랫동안 예조판서ㆍ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그는 시선집 기아(箕雅)를 편찬하는 한편, 시화비평서(詩話批評書) 호곡시화(壺谷詩話)를 저술하였다. 기아(箕雅)는 조선후기 진신간(搢紳間)에 가장 널리 읽힌 시선집으로, 신라말의 최치원(崔致遠)에서 조선조 현종(顯宗) 때의 김석주(金錫冑) 등에 이르기까지 497()의 각체시(各體詩)를 선집(選輯)한 것이다. 선시(選詩)에 있어서는 근체(近體) 율시(律詩)를 위주로 하고 있어 고시(古詩)와 배율(排律)이 상대적으로 적게 선발되고 있으며, 잡시(雜詩)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선관(選觀)에 있어서도 찬자(撰者)의 주관을 억제하고 시대의 풍상(風尙)과 시가(詩家)의 소장(所長)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다.

 

그는 급작(急作)에 뛰어난 솜씨를 보였으며, 또한 강운(强韻)으로도 시를 제작하는 솜씨를 보여 이경석(李景奭)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했다[壺谷南判書龍翼, 詩才敏速, 且善押强韻, 一日往見白軒相公, 相公指硯滴呼韻, 使賦詩, 壺谷隨字應口卽對曰云云, 相公大加稱賞 수촌만록(水村漫錄)].

 

그의 시가 김수항(金壽恒)보다 낫다는 평가를 세인들로부터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南與金久之壽恒, 才華齊名, 而應卒敏速, 人以南爲優. 종남총지(終南叢志)].

 

그래서 그는 그의 급작(急作)의 저력으로 고시(古詩)와 배율(排律)에서 수십운(數十韻) 수백운(數百韻)을 일필(一筆)에 구사하는 장편(長篇)의 능력을 과시했다. 여기서는 그의 교유 중에서도 특히 김득신(金得臣)에게 준 여김백곡득신(與金柏谷得臣)을 보기로 한다.

 

김득신(金得臣)여김백곡득신(與金柏谷得臣)은 다음과 같다.

 

客散西原路 雲屯上黨城 나그네는 서원길에서 흩어지는데, 구름은 상당성에 모여 있네.
西風吹落葉 歸馬踏秋聲 가을바람이 낙엽을 날려, 돌아가는 말이 가을 소리 밟으며 간다.

 

청주(淸州)에서 김득신(金得臣)과 헤어지며 그에게 준 증별시이다. 기구(起句)와 승구(承句)에서 청주(淸州)의 옛 이름인 서원과 상당성을 거듭 사용하여 일견 말이 중복된 듯한 느낌을 주지만, 이별과 계절의 정취를 소리로 그려낸 솜씨는 당시(唐詩)의 맑은 격조를 느끼게 해 준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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