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 어디선가 본 듯한 익숙함이 담긴 시
당풍 | 송풍 |
가슴으로 쓰는 시 | 머리로 쓰는 시 |
익숙한 것을 지향 | 새로운 것을 지향 |
三月廣陵花滿山 | 3월의 광릉엔 꽃이 산에 한 가득. |
晴江歸路白雲間 | 갠 강에 돌아오는 길은 흰 구름 사이에 있네. |
舟中背指奉恩寺 | 배속에서 등지고 봉은사를 가리키네 |
蜀魄數聲僧掩關 | 소쩍새 자주 소리 내니 스님은 문을 닫는구나. |
1) 꽃이 만발한 3월에, 봉은사에서 스님과 헤어지면서 준 작품.
2) 이 시는 저광희(儲光羲))의 「기손산인(寄孫山人)」나 위응물(韋應物)의 「수유낭중춘일귀양주남국견별지작(酬柳郎中春日歸楊州南國見別之作)」와 흡사하다.
新林二月孤舟還 | 신림의 2월 외로운 배로 돌아오니, |
水滿淸江花滿山 | 맑은 강엔 온통 물이고, 산엔 온통 꽃이네. |
廣陵三月花正開 | 광릉의 3월 꽃이 정히 피니, |
花裏逢君醉一廻 | 꽃 속에 그대 만나 취하도록 한 잔하세. |
3) 이 시에서의 광릉은 광주를 이른 말이다.
4) 가슴으로 쓴 시는 전고(典故)를 확인하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없음. 당시를 추구한 작품은 당시의 구절을 점화(點化)하기에 위응물의 시나 저광희의 시라해도 어색하지 않음.
2. 창작 방법으로 인해 당시를 배운 사람들의 시는 청신(淸新)함을 얻었지만 표절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무개성적이란 비판을 받음.
1) 권필(權韠)은 이달의 「반죽원(斑竹怨)」을 두고 이백의 시집에 넣으면 안목을 갖춘 사람도 구분할 수 없다고 칭찬했지만, 달리 생각하면 개성이 없다는 측면에서 욕이기도 함. 『지봉유설(芝峰類說)』 「문장부(文章部)」
2) 김창협(金昌協)은 「잡지(雜識)」에서 “송시를 배우던 선조 이전에는 비록 격조가 부드럽지 못하고 음률이 거칠지만 질박하고 꾸미지 않아 일가를 이루었는데, 선조 이후에는 당시를 배우는 자들이 많아지고, 또 왕세정(王世貞), 이반룡(李攀龍) 등의 복고파(復古派) 시가 들어오면서 모방을 일삼아 시가 한결같아졌으며, 이 때문에 선조 이전의 시에서는 개성을 볼 수 있지만, 그 이후의 시에서는 개성을 볼 수 없다.”고 함.
3) 허균(許筠)은 『국조시산(國朝詩刪)』에서 삼당시인의 시를 매우 많이 선발하고서도 한두 편 읽을 때는 좋지만 몇 편 이상 읽어 나가면 지겹다고 밝힘.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