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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4. 위항인의 선명(장혼)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4. 위항인의 선명(장혼)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11: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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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혼(張混, 1759 영조35~1828 순조28, 元一, 而已广空空子)은 규장각서리(奎章閣書吏)를 지낸 인물로, 시에 능하여 명성이 자자하였으며 그를 좇는 위항의 무리도 많았다 한다. 고대(古代)로부터 명말(明末)까지의 중국 역대 시를 넓게 선발하여 시종(詩宗)을 편찬하기도 하고, 많은 저술을 남기기도 하였다. 장혼(張混) 문하의 위항시인들이 다음 시기의 위항문학을 선도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의 시사적 위치는 더욱 중요하다 하겠다.

 

장혼(張混)은 모든 것을 체관한 인생관, 생활관을 말해주는 이이엄(而已广)이라는 그의 자호(自號)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세인의 이목을 의식하지 않고 자기의 방식대로 자오하였으며 오직 문학지교(文學之交)’ 만이 영세(永世)할 수 있다고 하였다. 장혼(張混)의 이러한 태도는 그의 시문 도처에서 발견된다. 그러한 장혼(張混)의 삶을 여실히 보여주는 답빈(答賓)둘째 수를 들어본다.

 

籬角妻舂粟 樹根兒讀書 담모퉁이에서 아내는 절구질하고 나무 아래서 아이는 책을 읽는다.
不愁迷處所 卽此是吾廬 사는 곳 잃어버릴 근심 없으니 바로 이곳이 내 집이라네.

 

 

한편 장혼(張混)은 사대부시인들의 시작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이체시(異體詩)를 즐기기도 하였다. 육언시(六言詩)나 모시집구(毛詩集句) 등이 그러한 것이며, 특히 그는 사언시(四言詩)에 힘을 쏟았던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그의 고체(古體)한위(漢魏)의 여향(餘響)이 있다[古體深得漢魏餘響. (李書九)]”거나 금세(今世)의 시가 아니다[足下之文, 最長於詩, 詩尤長于古體 …… 亦知足下之詩, 非今世詩也. 淵泉集17]”라는 평을 받게 된 것으로 보이며, 또 이 때문에 당대인의 눈에 그의 루백천언(累百千言)이 글자마다 새롭게 보였을 것이다[百千字字新. 存齋集14].

 

이러한 장혼(張混)의 이체시(異體詩)에 대한 관심은 다음의 군선우지효도체(君善偶至效陶體)에도 잘 드러나 있다.

 

羗有人兮 不娶不宦 ! 어떤 한 사람, 장가들지 않고 벼슬하지 않네.
雖則苦貧 其心則晏 고생하고 가난해도 마음은 편안하네.
樂之嘐嘐 彈詠以間 거리낌 없이 즐기며 음악과 시로 시간을 보내네.
物各自適 鵬無笑鷃 사물은 제각기 즐기며 살아가는 법, 붕새는 메추라기 비웃지 않는다.

 

이 시는 제목 그대로 우연히 찾아 온 천수경(千壽慶, 君善은 천수경의 )을 맞아 도연명(陶淵明)의 사언시(四言詩)를 본받아서, 주어진 운명에 안분하는 자신을 옮고 있다. 이처럼 장혼(張混)의 사언시(四言詩)는 자신들의 생활 감정을 이미 익숙된 오칠(五七)형식을 배제하고 비교적 생소한 사언(四言)으로 표출하여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고 있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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