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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4. 위항인의 선명(박윤묵) 본문

책/한시(漢詩)

한시사, 조선후기의 황량과 조선시의 자각 - 4. 위항인의 선명(박윤묵)

건방진방랑자 2021. 12. 21.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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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윤묵(朴允默, 1771 영조47~1849 철종1, 士執, 存齋)은 정이조(鄭彛祚)의 문인으로 규장각서리(奎章閣書吏)와 평신첨사(平薪僉使)를 지냈다. 그의 시는 간결하고 정밀하여 당인(唐人)의 풍격(風格)이 있다고 말한다. 그의 우중배대학사석재윤공묘(雨中拜大學士碩齋尹公墓)를 보기로 한다.

 

三十年間九度過

삼십년 사이에 아홉 번을 지나는데

法華山色尙嵯峨

법화산(法華山) 모습은 아직도 우뚝하다.

松深古道靈風起

소나무 우거진 옛 길엔 시원한 바람 불고

花落荒原暮雨多

꽃 떨어진 거친 들엔 저녁비 내린다.

楸舍簡編猶剩馥

개암나무 집 책에는 남은 향기 가득하고

梣灘樵牧亦悲歌

침탄에 초동은 슬픈 노래 부른다.

忽聞蜀魄啼無盡

갑자기 저렇게 울어대는 두견새 소리 들리니

可柰枝頭怨血何

나무가지 위에 뿌린 피는 어찌 하겠는가.

 

 

박윤묵(朴允默)은 그의 존재집(存齋集)에 많은 시작(詩作)을 남기고 있어 조수삼(趙秀三)과 함께 위항인(委巷人)으로서는 보기 드물게 많은 시편(詩篇)을 남긴 시인이 되기도 하였거니와, 이 작품과 같이 쉽게 그리고 당인(唐人)의 여유를 누닐 수 있는 것도 그의 다작(多作)과 무관하지 않다. 시사(詩社)에서 위항인들은 시를 짓고 술을 마는 것으로 즐길거리를 삼았지만 이들의 시업(詩業)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였다. 그러한 시인으로서의 자부심을 과시한 작품으로 다음과 같은 시후유작(詩後有作)을 들 수 있다.

 

豪唫雖未售今世

호탕한 읊조림 금세에 팔지 못해도

苦癖何曾讓古人

()만은 어찌 고인에 사양하겠는가?

簸弄江山空自好

강산(江山)을 음롱(吟弄)하니 공연히 그냥 좋고

招呼風月爲誰新

풍월을 부르는 것 누구를 위해 새롭게 했던가?

搜膓鏤肺應添瘦

애태우며 짜내는 시 파리해지기 마련이지만

累牘聯篇不捄貧

겹겹이 쌓인 시편이 가난 구제 못하네.

六十年來詩萬首

육십년 동안 지은 시 만수나 되니

放翁去後又吾身

육방옹(陸放翁) 이후에 또 이 몸이 있다네. 存齋集22

 

육유(陸游)의 시작(詩作)이 평담(平淡)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거니와 물경(物景)이 많기로도 이름이 높다. 박윤묵(朴允默) 역시 이 작품에서 자신의 시세계를 방옹(放翁)에게 비기어 스스로 그의 다작(多作)을 자부하고 있다.

 

 

 

 

인용

목차 / 略史

우리 한시 / 서사한시

한시미학 / 고려ㆍ조선

眞詩 / 16~17세기 / 존당파ㆍ존송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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