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정산에 올라 백안 승상을 떠올리며
고정산(高亭山)
백안【백안(伯顔): 원대(元代) 초기에 세조(世祖) 홀필렬(忽必烈)의 신하로 송 나라를 공벌하는 공을 세웠고 그 후 태부(太傅)까지 지냈다.】 승상이 군대를 주둔시켰던 곳에서[伯顏丞相駐軍之地]
이제현(李齊賢)
江上山如淡掃眉 人家處處槿花籬
停舟欲問松間寺 策杖先窺竹下池
帆影暮連芳草遠 鍾聲曉出白雲遲
憑欄一望三吳小 像想將軍立馬時 『益齋亂稿』 卷第一
해석
江上山如淡掃眉 강상산여담소미 |
강 위의 산은 담담히 쓴 눈썹 같고 |
人家處處槿花籬 인가처처근화리 |
인가 곳곳엔 무궁화꽃 울타리네. |
停舟欲問松間寺 정주욕문송간사 |
배를 멈추고 소나무 속 사찰을 물으려다가 |
策杖先窺竹下池 책장선규죽하지 |
지팡이 짚고 먼저 대나무 연못 바라보네. |
帆影暮連芳草遠 범영모연방초원 |
돛대 그림자는 저물녁 방초의 먼 곳에 이어지고 |
鍾聲曉出白雲遲 종성효출백운지 |
종 소리는 새벽녘 흰 구름에서 더디게 나오네. |
憑欄一望三吳小 빙란일망삼오소 |
난간에 기대 한 번 삼오(三吳)【삼오(三吳): 오흥(吳興), 오군(吳郡), 회계(會稽) 지방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의 작음을 바라보니 |
像想將軍立馬時 상상장군립마시 |
백안 장군이 말을 세워뒀던 때 상상하게 되네. 『益齋亂稿』 卷第一 |
해설
이 시는 고정산에서 그 지역의 풍경(風景)과 함께 역사적 사연을 회고(懷古)하고 있다.
배를 타고 구경하자니, 강 위의 산들은 곱게 그린 여인의 눈썹 같고, 그 산들 아래 마을에는 집집마다 꽃을 피운 무궁화가 울타리이다. 배를 멈추고 마을사람에게 이 마을 송림 속에 묻힌 절을 찾아가고자 길을 물으려다, 대숲 아래 맑은 연못의 풍경이 너무 좋아 지팡이를 짚고 서서 엿보고 있다. 해가 지자 하루 숙박하는데, 타고 온 배의 돛 그림자가 길어져 풀밭 멀리까지 이어졌고 다음 날 새벽 절의 종소리가 흰 구름 속에서 느릿느릿 울려오고 있다. 높은 다락에 올라 기댄 채 저 멀리 바라보니, 옛날 삼오지방의 남송(南宋)을 가소롭게 여겼을 원(元)나라 장수 백안의 당시 모습이 상상이 된다.
김종직(金宗直)은 『청구풍아(靑丘風雅)』에서 미련(尾聯)에 대해 “천년 뒤에라도 이 구를 읽어 보면, 백안이 가리키고 돌아보며 꾸짖으면서 눈에는 이미 남송이 없었을 그 위엄의 신령함과 기상의 불꽃을 상상해 볼 수 있다[千載之下, 讀此句, 伯顔指顧叱咤, 目中已無南宋, 其威靈氣燄, 猶可想見].”라고 평했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247~248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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