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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현 - 감회(感懷) 본문

한시놀이터/삼국&고려

이제현 - 감회(感懷)

건방진방랑자 2021. 4. 3.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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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나라로 가는 길의 서글픈 감정

감회(感懷)

 

이제현(李齊賢)

 

 

旅枕雞號夢易廻 征鞍欲拂思悠哉

霜風浙瀝貂裘弊 星月闌干畫角哀

淸渭却思浮葉去 玄都非爲看花來

孟嘗賓客皆珠履 豈必三千摠俊才

 

枕肱茅店夜三更 矯首金臺路幾程

苦節頗同彈鋏客 芳年已過棄繻生

窮通有命悲親老 緩急非才愧主明

畢竟行藏誰與問 滿窓霜月獨鍾情

 

半世雕蟲恥壯夫 中年跨馬倦征途

杯盤草草燈花落 關塞迢迢曉月孤

華表未歸千載鶴 上林誰借一枝烏

有錢徑買澆腸酒 莫使詩班入鬢鬚

 

長卿去蜀曾題柱 鄒子遊梁得曳裾

奔走無功合投劾 交遊似夢惜離居

未拚蓑笠盟鷗鳥 已分圖書養蠹魚

一望鄕關時自笑 百年天地亦蘧廬 益齋亂稿卷第二

 

 

 

 

해석

旅枕雞號夢易廻
려침계호몽이회
나그네 꿈꾸다가 닭이 울자 꿈이 쉬이 깨어
征鞍欲拂思悠哉
정안욕불사유재
나아가는 안장은 떨치려 하지만 생각만은 그윽하네.
霜風浙瀝貂裘弊
상풍절력초구폐
서늘 낀 바람이 불어[浙瀝] 담비 갖옷이 해졌고
星月闌干畫角哀
성월란간화각애
별과 달이 뜬 난간에선 화각소리 구슬프네.
淸渭却思浮葉去
청위각사부엽거
맑은 위수에 도리어 조각배 띄워 가겠단 생각이고
玄都非爲看花來
현도비위간화래
현도관에 꽃 보러 온 건() 나라 때 유우석(劉禹錫)이 맨 처음 둔전원외랑(屯田員外郞)으로 있다가 낭주 사마(朗州司馬)로 좌천되어 있은 지 10년 만에 풀려나서 다시 서울에 돌아와, 현도관(玄都觀 장안(長安) 안에 있는 관() 이름)에서 꽃구경하는 제군(諸君)에게 희증(戲贈)한 시에 현도관 안에 1천 그루 복숭아나무, 모두 내가 떠난 뒤에 심은 거라네.[玄都觀裏桃千樹 盡是劉郞去後栽]”라고 한 데서 온 말이다. 唐書』 「劉禹錫傳」】 아니라네.
孟嘗賓客皆珠履
맹상빈객개주리
맹상군의 빈객은 모두 구슬 신발 신었지만
豈必三千摠俊才
기필삼천총준재
어찌 반드시 3000명이 모두 준수한 재주 있었으랴?

 

枕肱茅店夜三更
침굉모점야삼경
팔 베개 벤 초가 주막의 밤은 삼경인데
矯首金臺路幾程
교수금대로기정
머리를 금대금대(金臺): 전국 시대 연나라 소왕(昭王)이 천하의 현사(賢士)들을 맞이하기 위하여 역수(易水) 동남쪽에 건립했던 황금대(黃金臺)의 준말로, 흔히 연경(燕京)의 대명사로 쓰인다.로 드니 길이 어느 정도인가?
苦節頗同彈鋏客
고절파동탄협객
괴로운 절개는 매우 검을 두드렸던 풍환과 같지만
芳年已過棄繻生
방년이과기수생
꽃다운 나이는 이미 비단을 버린 종군()나라 종군(終軍)이 약관(弱冠)에 장안(長安)으로 내려가고 제남(濟南)에서 걸어서 관()에 드니, 관리(關吏)비단과 유()를 맡겨두라.” 했다. 군이, “왜 그러느냐.” 물으니, “뒷날에 관()을 나올 때에 유()와 맞추어 보아야 한다.” 했다. 군이 말하되, “대장부 서(西)로 가는데 마침내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 하고 유()를 버리고 갔다. 그 뒤에 과연 사자(使者)가 되어 절()을 가지고 관()을 나왔다.의 나이 넘어섰네.
窮通有命悲親老
궁통유명비친로
곤궁함과 형통함은 천명에 있으니 어버이는 슬퍼하고
緩急非才愧主明
완급비재괴주명
느림과 빠름에 재주 없으니 군주의 명석함에 부끄럽네.
畢竟行藏誰與問
필경행장수여문
필경 행함과 감춤을 누구에게 물어야 할까?
滿窓霜月獨鍾情
만창상월독종정
창에 가득한 서늘한 달에 홀로 정을 모아주네.

 

半世雕蟲恥壯夫
반세조충치장부
반 평생 문자 수식한 것이 장부로서 부끄럽고
中年跨馬倦征途
중년과마권정도
중년에 말을 타 나그네 길 떠나 지쳤네.
杯盤草草燈花落
배반초초등화락
잔과 소반이 촛농 떨어지는 데에 가득하고
關塞迢迢曉月孤
관새초초효월고
변방의 관문은 새벽달 외로운 데에 아득하네.
華表未歸千載鶴
화표미귀천재학
화표에 천년의 학은 돌아오지 않고화표(華表)는 성문(城門)에 세운 기둥. () 나라 정령위(丁令威)가 죽어서 학으로 화하여 고향에 돌아와 성문의 화표에 날아 앉았다는 고사이다.搜神後記정령위는 본디 요동(遼東) 사람인데, 영허산(靈虛山)에서 도를 닦다가 뒤에 학으로 화하여 고향에 돌아와 성문의 화표에 날아앉자 어떤 소년이 활로 쏘려 하니, 학이 공중을 배회하면서 말하기를, ‘정령위가 새가 되어 집 떠난 천 년 만에 처음으로 돌아오니, 성곽(城郭)은 여전하건만 사람은 간 데 없네. 어이해 신선은 배우지 않고 묘()만 저리 많단 말인가.’ 하고 날아갔다.” 하였다.
上林誰借一枝烏
상림수차일지오
상림원의 누가 한 가지의 까마귀를 빌려주랴상림(上林)은 상림원(上林苑)의 준말. 당 태종(唐太宗)이 이의보(李義父)를 처음으로 불러들여 영오시(詠烏詩)를 짓게 하자, 이의보가 읊기를 태양은 아침에 나부끼고 거문고에선 야제곡을 듣네. 상림원의 하많은 나무, 한 가지도 빌려주지 않네[日影颺朝彩 琴中聞夜啼 上林多少樹 不借一枝棲]” 하니, 태종이 어찌 가지 하나뿐이겠는가, 내가 너에게 나무 전체를 다 빌려주리라.” 했다는 고사이다.?
有錢徑買澆腸酒
유전경매요장주
있는 돈으로 곧 사서 창자에 술을 마실 뿐
莫使詩班入鬢鬚
막사시반입빈수
시 얼룩이 머리털에 들어가게 하진 마시라.

 

長卿去蜀曾題柱
장경거촉증제주
장경이 촉을 떠날 때 일찍이 기둥에 썼고추자는 한나라 추양(鄒陽). 그는 오()나라 양효왕(梁孝王)의 상객(上客)이 되어 말하되, “어느 왕의 문에서 긴 옷자락을 끌지 못하랴.” 했다. 왕후(王侯)의 문객(門客)을 말한 것이다.
鄒子遊梁得曳裾
추자유량득예거
추자가 양에서 유람할 때 옷깃을 끌었네추자는 한나라 추양(鄒陽). 그는 오()나라 양효왕(梁孝王)의 상객(上客)이 되어 말하되, “어느 왕의 문에서 긴 옷자락을 끌지 못하랴.” 했다. 왕후(王侯)의 문객(門客)을 말한 것이다..
奔走無功合投劾
분주무공합투핵
분주했지만 공 없으니 벼슬 버려야 하리.
交遊似夢惜離居
교유사몽석리거
교유하던 게 꿈 같으니 살던 곳 떠난 게 서글프네.
未拚蓑笠盟鷗鳥
미변사립맹구조
도롱이 쓰고 날지 못하나 갈매기와 맹약하고
已分圖書養蠹魚
이분도서양두어
이미 책을 나누어 좀벌레 기르네.
一望鄕關時自笑
일망향관시자소
한 번 고향 바라보며 이따금 절로 웃음 나니
百年天地亦蘧廬
백년천지역거려
100년의 천지가 또한 여관 같구나. 益齋亂稿卷第二

 

 

해설

이 시는 원()나라 서울로 들어가면서 느꼈던 심정을 노래고 있다.

 

서울을 향해 가다 초가집 주막에서 잠을 자는데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들지 않아 금대, 즉 서울로 가야 할 노정이 얼마인가를 생각하고 있다. 맹상군의 객이었던 풍환(馮驩)이 칼자루를 치며 현달하지 못한 심사를 노래했던 그 심정이 자신과 같지만, 증명서를 버리고 떠났다가 사자(使者)가 되어 돌아왔던 종군보다 나이가 많다. 빈궁하게 사는 것과 출세하는 것은 천명이라 어쩔 수 없지만 잘 봉양해야 할 어버이께서 늙어 가고 계시니 슬프고, 또한 벼슬을 하고 있지만 정사(政事)를 잘 처리하지 못하여 밝은 임금께 발탁되지 못함이 부끄럽다. 이러한 내 삶을 누구에게 물어보아야 하나? 오직 창안 가득 서리달만이 다정히 비추어 주고 있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 250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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