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지【민지(澠池) :
현재의 하남성(河南省) 의양현(宜陽縣) 서쪽에 있는 못. 전국 시대 진 소왕(秦昭王)은 조(趙) 나라 혜문왕(惠文王)에게 사신을 보내어 민지(澠池)에 모여 우호를 다지자고 하였다. 이때 조왕은 음흉한 진 나라를 두려워하여 가지 않으려고 하자 인상여(藺相如)는 “가지 않으면 조 나라의 약점을 보이는 것입니다.” 하니, 조왕은 부득이 상여를 대동하고 가서 모였었다.】에서
민지(澠池)
이제현(李齊賢)
強秦若翼虎 懦趙眞首鼠
강진약익호 나조진수서
特會非同盟 安危在此擧
특회비동맹 안위재차거
藺卿膽如斗 杖劍立左右
인경담여두 장검립좌우
叱咤生風雷 萬乘自擊缶
질타생풍뢰 만승자격부
桓桓百萬兵 一言有重輕
환환백만병 일언유중경
염파복고의 견자모유명
駕言池上遊 去我今幾秋
가언지상유 거아금기추
餘威起毛髮 萬木寒颼颼
여위기모발 만목한수수 『益齋亂稿』 卷第一
해석
強秦若翼虎 懦趙眞首鼠 | 강한 진나라는 날개 달린 범 같고 나약한 조나라는 참으로 머뭇거리는 쥐라네. |
特會非同盟 安危在此擧 | 특별히 모였지 동맹은 아니기에 안위는 이번 거둥에 있었지. |
藺卿膽如斗 杖劍立左右 | 인상여【민지의 모임에 진왕은 조왕에게 “왕은 음악을 좋아한다니 비파를 한번 타십시오.” 하여 모욕을 주었다. 조왕이 비파를 타자, 상여는 진왕에게 “대왕께서는 진 나라의 악기인 질장구를 치십시오.” 하여, 보잘것없는 진 나라의 음악을 비웃는 한편 조왕이 받은 모욕에 대한 앙갚음을 하려 하였으나 진왕이 즐기지 않자, 상여는 “오보(五步)의 안에 신은 목의 피를 대왕에게 뿌리겠소.” 하며 위협하였다. 진왕의 좌우가 칼로 상여를 치려 하자, 상여가 눈을 부릅뜨고 꾸짖으니, 좌우가 놀라 위축되었다. 이에 진왕은 한번 질장구를 치고는 술자리를 파하였는데 이 뒤로는 상여를 두려워하여 감히 조 나라를 공격하지 못하였다. 『史記』 「廉頗藺相如列傳」】 담은 되 같아서 칼을 잡고 좌우에 서있기만 하다가 |
叱咤生風雷 萬乘自擊缶 | 꾸짖으니 바람과 우레 치는 듯하여 만승의 임금도 스스로 장구를 치고 |
桓桓百萬兵 一言有重輕 | 굳센 백승의 병사들도 한 마디 말에 경중이 있다 했네. |
廉頗伏高義 犬子慕遺名 | 염파는 높은 의의에 복종했고【염파는 조 나라 장군으로 많은 전공(戰功)을 세웠는데, 조왕은 민지의 모임에서 돌아와 인상여의 공을 높이 평가하여 상경(上卿)을 시키니 지위가 염파의 위였다. 염파는 이에 불만을 품고 상여와 대전할 것을 결심하였는데, 이 소식을 들은 상여는 피하고 만나지 않았다. 집 식구들이 의심하자 상여는 대답하기를 “나는 강폭한 진 나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는데, 염 장군(廉將軍)을 두려워하겠는가. 현재 염 장군과 나는 이 나라의 두 범인데 만일 두 범이 싸운다면 누군가 하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되면 결국 진 나라에 이익을 안겨 주는 것이니 내가 피하는 것은 국가의 이익을 우선하고 개인의 감정을 뒤에 하려는 것이다.” 하였다. 이 말을 전해들은 염파는 매를 짊어지고 가서 사과한 다음 친교를 맺었다. 『史記』「廉頗藺相如列傳」】 견자도 남겨진 명성을 사모했지【견자는 한(漢) 나라의 문장가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아명(兒名). 사마상여는 인상여(藺相如)를 사모하여 이름을 상여라고 고치기까지 하였다. 『漢書』 「司馬相如傳」】. |
駕言池上遊 去我今幾秋 | 인상여의 말을 가지고 민지 가에 유람하노라니 나와의 거리가 지금 몇 년임에도 |
餘威起毛髮 萬木寒颼颼 | 남은 위엄이 털에서 일어나고 오랜 나무에선 한기가 불어오네. 『益齋亂稿』 卷第一 |
해설
이 시는 민지에서 전국(戰國)시대 인상여의 고사(故事)를 생각하며 인상여의 의기를 드높이고자 한 영사시(詠史詩)로, 익재의 충군애국(忠君愛國)하는 신하의 본분의식(本分意識)이 그 창작배경이 된 것이다.
강한 진나라는 날개 달린 호랑이와 같고 작은 조나라는 쥐와 같다. 진나라에 의한 이번 모임은 동맹이 아니라 국가의 안위가 달린 문제다. 왜냐하면 이 일을 핑계로 진나라가 조나라를 침략하려 하기 때문이다. 민지에서의 회담은 인상여의 대담한 기개와 기지로 진나라 왕을 굴복시키고 회합을 성공으로 마친다. 이에 염파는 감복하고 사마상여는 인상여를 사모하여 이름을 바꾸기도 하였다. 시인이 민지에 이르러 역사를 회고해 보니, 지금으로부터 많은 시간을 거슬러 가야 하지만 인상여의 위엄은 지금도 천하의 초목을 떨게 하고 있다.
원주용, 『고려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09년, 258쪽
인용
'한시놀이터 > 삼국&고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최림 - 증우인(贈友人) (0) | 2021.04.03 |
---|---|
민사평 - 촌중시사운(村中時事韻) (0) | 2021.04.03 |
이제현 - 황토점(黃土店) (0) | 2021.04.03 |
이제현 - 감회(感懷) (0) | 2021.04.03 |
이제현 - 고정산(高亭山) (0) | 2021.04.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