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천년 왕업을 이룬 문충공의 자취가 서린 선죽교
선죽교(善竹橋)
이개(李塏)
繁華往事已成空 舞館歌臺野草中
惟有斷橋名善竹 半千王業一文忠
해석
繁華往事已成空 번화왕사이성공 |
번화했던 지난 일은 이미 공허함이 되었고 |
舞館歌臺野草中 무관가대야초중 |
춤추던 여관과 노래하던 무대는 들풀 속에 묻혔네. |
惟有斷橋名善竹 유유단교명선죽 |
오직 끊어진 다리는 선죽교라 불리는데 |
半千王業一文忠 반천왕업일문충 |
반 천년의 왕업은 한 사람 문충공일 뿐이네. |
해설
이 시는 선죽교에서 지은 것으로,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의 충절(忠節)을 기리는 회고시(懷古詩)이다.
지난 고려의 역사를 생각해보니, 번화했던 수도 개성(開城)은 이미 사라지고 헛된 것이 되어 버려, 기생들이 춤추던 집이나 노래하던 무대가 모두 들풀 속에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오직 선죽교만이 남아 있는데, 그것도 한편이 잘려 버리고 이름만 남아 있다. 그 선죽교에는 고려 500년 왕조의 업적이 한 사람 정몽주(鄭夢周)의 충절(忠節)만이 흔적을 남겨 두고 있다.
이개는 기개(氣槪)가 매우 높았는데, 이와 관련하여 『동각잡기(東閣雜記)』에 다음과 같은 일화(逸話)가 실려 있다.
이개(李塏)는 목은(牧隱)의 증손인데, 시(詩)와 문(文)이 뛰어나 세상에서 중망을 받았다. 세종이 온양(溫陽)에 갈 적에 이개가 성삼문 등과 함께 편복(便服)으로 행차를 따라가 고문(顧問)이 되니, 사람들이 모두 영광스럽게 여겼다.
성삼문의 모사에 참여하였는데, 사람됨이 몸이 파리하고 약하나 곤장 아래에서도 안색이 변하지 아니하므로, 보는 사람들이 장하게 여겼다. 세조가 잠구(潛邱)에 있을 때에 이개의 숙부 이계전(李季甸)이 매우 친밀하게 출입하므로 이개가 경계한 적이 있었다. 이때서야 세조가 말하기를, ‘일찍이 이개가 제 숙부에게 그런 말이 있었다는 것을 듣고, 마음에 못된 놈이라 여겼더니, 과연 다른 마음이 있어 그러하였던 것이로구나.’ 하였다. 이개가 수레에 실려 형장(刑場)으로 나갈 때에 시를 짓기를, ‘우의 솥처럼 중할 때엔 삶도 또한 크거니와, 기러기 털처럼 가벼운 데선 죽음 또한 영광일세. 일찍이 일어나 자지 않고 문을 나가니, 현릉(文宗)의 송백이 꿈속에 푸르구나.’ 하였다.
李塏牧隱之曾孫也, 詩文淸絶, 爲世所重. 英廟幸溫陽, 塏與三問等, 便服隨駕備顧問, 人皆榮之. 預三問之謀, 爲人瘦弱, 而杖下顏色不變, 見者壯之. 光廟在潛邸, 塏之叔父季甸, 出入甚密, 塏戒之. 及是光廟曰: “曾聞有此言, 心以爲不肖果有異心而然耶.” 塏載車有詩曰: “禹鼎重時生亦大, 鴻毛輕處死猶榮. 明發未寐出門去, 顯陵松柏夢中靑.”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39~40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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