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의 동헌에서 지었으니 병자년(1456) 6월이다
차익산동헌운 병자유월(次益山東軒韻 丙子六月)
이석형(李石亨)
우시이녀죽 진일대부송
縱是哀榮異 寧爲冷熱容
종시애영리 녕위랭열용 『樗軒集』 卷上
해석
虞時二女竹 秦日大夫松 | 순임금 때 두 딸의 대나무【이녀죽(二女竹): 우순(禹舜)이 남방(南方)에 놀러 갔다가 죽어 그의 두 비(妃)가 소상강(瀟湘江)에서 슬피 울어 눈물이 대숲에 뿌려져 반죽(班竹)이 되었다. 열녀(烈女)의 상징(象徵)이다.】와 진나라 때 대부로 봉해진 소나무【대부송(大夫松): 진시황(秦始皇)이 태산(泰山)에 놀러 갔다가 도중에 비를 만나 다섯 소나무 밑에서 비를 피하였다. 그 소나무에게 대부(大夫)의 벼슬을 주었다.】처럼 |
縱是哀榮異 寧爲冷熱容 | 가령 슬픔과 영화로움의 다름이 있더라도 어찌 냉냉한 얼굴을 하거나 열띤 얼굴을 하리오? 『樗軒集』 卷上 |
해설
이 시는 가슴속의 마음을 읊은 것으로, 세조(世祖)의 왕위찬탈과 사육신(死六臣)의 단종복위(端宗復位) 운동을 배경으로 풍자(風刺)의 뜻이 담겨 있다.
순임금 때의 두 왕비인 아황(蛾黃)과 여영(女英)이 순임금의 죽음을 듣고 상강의 대나무 숲에 눈물을 뿌리고 죽은 것은 단종 복위를 계획했다. 처형된 성삼문(成三問) 등을 비유한 것이고, 진시황제가 비를 피하고 소나무에 대부라는 직위를 내린 것은 신숙주(申叔舟) 등 세조의 왕위찬탈을 도운 사람들에 비유한 것이다. 비록 사육신(死六臣)의 죽음이 슬프고 신숙주 등의 영화가 다름은 있지만, 그렇다고 슬픈 사육신이 기운이 빠져 차가운 얼굴을 할 것이 뭐가 있으며, 신숙주 등이 기뻐서 열이 날 정도로 뜨거운 얼굴을 할 것이 뭐가 있겠는가?
불사이군 | 정권협조 |
순 임금의 두 왕비 | 진나라 소나무 |
사육신 | 신숙주, 한명회 등 |
哀 | 榮 |
차가운 얼굴할 게 없다 | 뜨거운 얼굴할 게 없다 |
『해동악부(海東樂府)』에는 이 시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逸話)가 실려 있다.
이석형(李石亨)의 본관은 연안(延安)이다. 세종 때에 삼장원(三壯元)에 올라 그 이름이 한때 으뜸이었으며, 성삼문ㆍ박팽년 등과 서로 가장 친하였다. 세조가 즉위하자 마침 모친상을 당하였는데, 복을 마치자 곧 전라감사를 제수받았다. 병자년 6월 25일에 성삼문 등의 옥사(獄事)가 일어났으나, 석형은 외임(外任)에 있었기 때문에 연루되지 않았다. 27일 순찰길에 익산(益山)에 이르러 여러 사람이 모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에 시 한 수를 지어 벽 위에 써 놓고, ‘병자년 6월 27일에 지었다’고 썼는데, 그 시에 이르기를, ……라 하였다. 그때 대간이 그 시의 뜻을 국문하기를 아뢰어 청하니, 세조가 그것을 보고 말하기를, ‘시인의 뜻이 있는 곳을 모르니, 어찌 반드시 그렇게 하랴?’하여, 일은 마침내 그치고 말았다.
李石亨延安人. 英廟朝, 登三壯元, 名冠一時, 最與成三問朴彭年諸人相切. 光廟受禪, 適丁內憂, 服闋, 卽除全羅監司. 丙子六月二十五日, 成三問等獄事起, 石亨以外任之故, 不爲連累. 二十七日巡到益山, 聞諸人盡死. 遂題一詩于縣壁上, 書曰: ‘丙子六月二十七日作.’ 詩曰: ‘虞時二女竹, 秦日大夫松. 縱有哀榮異, 寧爲冷熱容.’ 其時臺諫啓請鞫問詩意. 光廟覽之曰: “詩人命意, 不知所在, 何必乃爾.” 事遂止.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37~38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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