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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신숙주 - 재박다조 차운기인수백옥중장근보청보산거(在博多島 次韻寄仁叟ㆍ伯玉ㆍ仲章ㆍ謹甫ㆍ淸甫山居)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신숙주 - 재박다조 차운기인수백옥중장근보청보산거(在博多島 次韻寄仁叟ㆍ伯玉ㆍ仲章ㆍ謹甫ㆍ淸甫山居)

건방진방랑자 2021. 4. 5. 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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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박다도에 있으면 차운하여 산 속에 살고 있는 인수 박팽년과 백옥 이석형과 중장 하위지와 근보 성삼문과 청보 이개에게 부치다

재박다도 차운기인수백옥중장근보청보산거(在博多島 次韻寄仁叟伯玉仲章謹甫淸甫山居)

 

신숙주(申叔舟)

 

 

半歲天涯已倦遊 歸心日夕故山秋

山中舊友靑燈夜 閑話應憐海外舟

一任東西自在遊 滄溟萬里海天秋

翻思有命應先定 字是泛翁名叔舟 保閑齋集卷第四

 

 

 

 

해석

半歲天涯已倦遊
반세천애이권유
하늘 끝에 있은 지 반 년에 이미 유람하기 지쳤는데
歸心日夕故山秋
귀심일석고산추
돌아갈 마음에 밤낮으로 고향산천 가을인 듯.
山中舊友靑燈夜
산중구우청등야
산 속의 옛 친구들은 푸른 등 밝힌 밤에
閑話應憐海外舟
한화응련해외주
한가롭게 이야기 나누다가 응당 해외의 배를 가련하게 여기겠지.
一任東西自在遊
일임동서자재유
한 번 동서에 맡겨 스스로 유람하고 있으니
滄溟萬里海天秋
창명만리해천추
만리 바다의 가을은 푸르고 아득하다네.
翻思有命應先定
번사유명응선정
나다니는 생각으로도 운명은 응당 먼저 정해졌으니
字是泛翁名叔舟
자시범옹명숙주
자는 범옹이고 이름은 숙주라네. 保閑齋集卷第四

 

 

해설

이 시는 일본의 박다도에 있으면서 차운하여 산중에 있는 박팽년ㆍ이석형ㆍ하위지ㆍ성삼문ㆍ이개에게 보낸 시이다.

 

하늘 끝 일본에 온 지도 벌써 반년이 지나 지쳐 가는데, 언제쯤 고향에 돌아갈 수 있을까? 예전에 산속에서 불을 밝혀 놓고 함께 글을 읽던 옛 벗들, 정답게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이야기에 이르러서는 멀리 일본에 와 있는 내 처지를 애처로워할 것이다. 이전에도 나라의 일을 맡아 천하를 주유(周遊)하였는데, 지금은 푸른 바다를 만 리나 건너 일본에서 가을을 보내고 있다. 이렇게 된 자신의 처지는 바다나 물을 떠다니는 노인이라는 범옹(泛翁)’이라는 자()와 배가 들어간 숙주(叔舟)’라는 이름 때문으로, 이미 정해진 운명인 것이다.

 

김안로(金安老)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신숙주(申叔舟)가 집현전에 들어가 장서각(藏書閣)에서 평소에 보지 못한 책들을 가져다 보며 밤을 새웠다. 하루저녁에는 삼경(三更)이 되었을 때 세종이 환관 하나를 보내어 보고 오라고 하였다. ()은 여전히 촛불을 켜고 독서하였는데, 3, 4차례 가서 보아도 여전히 그치지 않고 독서하다가, 닭이 운 뒤에야 잠을 잤다. 주상께서 담비 가죽옷을 벗어 푹 잠든 틈을 타서 덮어 주도록 하였다. 신숙주가 아침에 일어나 비로소 알았다. 사림에서 이 말을 듣고 힘쓰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申叔舟入集賢殿, 取藏書閣平昔所未見之書讀之, 通宵不寐. 一夕漏下三鼓, 我英廟遣小宦往覘之. 公猶燃燭讀書, 往覘數四, 讀猶不輟, 雞鳴後始寢. 上解貂裘, 令乘睡熟覆其上, 叔舟朝起方覺之. 士林聞之, 莫不勸勵.].”라 하여, 학문에 정진한 신숙주의 일화(逸話)가 실려 있다.

 

이러한 결과 신숙주는 일본과 중국에도 명성을 날렸는데, 그의 비문(碑文), “서장관으로 일본에 사신 갔었을 때 왜인(倭人)이 다투어 그의 시를 요구하자 붓을 쥐고 곧 지으니 모두들 탄복하였다. 떠나서 돌아오기까지 무릇 9개월 걸렸다. 이전의 통신사행은 이만큼 완전하고 또 빠른 적이 없었다. 매번 사신들이 올 때마다 왜인이 반드시 그의 안부를 물었다[以書狀聘日本, 倭人爭求其詩, 操筆立就, 衆皆嘆服. 自發曁還凡九箇月. 前此通信之行, 未有若此之完且速者. 每使价來, 倭人必問其寒暄.]”라 하였고,

 

황화집(皇華集)에는, “경태(景泰) 초 한림학사(翰林學士) 예겸이 사신으로 우리나라에 왔을 때 태평루(太平樓)에 올라 시를 지었다. 신숙주가 그 운()을 써서 화답하니, 학사(學士)가 탄복하고 돌아갈 때 시를 지어 보내기를, ‘시 솜씨는 일찍 굴원(屈原)과 그의 제자 송옥(宋玉)의 단()에 올랐으니, 그 명성 전하여져 조정 끝까지 가득 찼네하고, 동방의 최고라 칭찬하였다[景泰初, 翰林學士倪謙奉使東來, 登太平樓賦詩. 叔舟步其韻和之, 學士嘆服, 旣還寄詩云: ‘詞賦曾乘屈宋壇, 爲傳聲譽滿朝端.’ 稱爲東方巨擘.].”라 하여, 그의 詩名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44~45

 

 

인용

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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