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사헌부 최고 벼슬인 대사헌에 제대되고서 포부를 밝히다
신배대사헌(新拜大司憲)
서거정(徐居正)
烏府淸班動百官 不才承乏愧朝端
何人自有風霜面 今我元非鐵石肝
直劒不辭終百折 曲藤何用要千蟠
幸逢昭代無封事 鳴鳳朝陽尙亦難 『四佳詩集』 卷之十○第九
해석
烏府淸班動百官 오부청반동백관 |
사헌부【오부(烏府): 어사대(御史臺), 즉 사헌부의 별칭. 『사물이명록(事物異名錄)』에 보면, “『한서(漢書)』에 ‘어사부(御史府)에 칙백나무를 죽 심었는데 일찍이 까마귀[烏] 수천 마리가 그 위에 서식하였다.’한다. 인하여 이름을 ‘오대(烏臺)’ 또는 ‘오부(烏府)’라고 하였다.”하였음.】는 맑은 반열로 뭇 관리를 움직이니 |
不才承乏愧朝端 부재승핍괴조단 |
재주가 아님에도 빈 자리 계승하여 최고 자리【조단(朝端): 조정에서 일하는 신하 중에서 첫째가는 지위】에 있는 게 부끄럽네. |
何人自有風霜面 하인자유풍상면 |
아무개는 스스로 바람과 서리 같은 면목을 지니고 있다던데 |
今我元非鐵石肝 금아원비철석간 |
지금의 나는 원래 철석 같은 간장(굳은 지조)도 없었네. |
直劒不辭終百折 직검불사종백절 |
곧은 칼로이라 끝내 백번 끊어짐을 사양치 않지만 |
曲藤何用要千蟠 곡등하용요천반 |
굽은 넝쿨이라 어찌 천 번 휘감김을 쓰겠는가? |
幸逢昭代無封事 행봉소대무봉사 |
다행히 태평성대 만나서 탄핵될 일【봉사(封事): 일반 소장(疏章)과는 달리 남에게 누설되지 않도록 밀봉(密封)하여 임금에게 바치던 서장(書狀). 또는 일반 소장을 일컫기도 하는데, 내용은 주로 벼슬의 부정을 탄핵하는 것이다.】 없으니 |
鳴鳳朝陽尙亦難 명봉조양상역난 |
강직하게 직간(直諫)하는 것【양지쪽에 봉황새가 운다는 것은 『시경』 대아(大雅) 「권아(卷阿)」에, “봉황이 훨훨 날아, 날개 깃을 탁탁 치며, 앉을 자리에 앉는도다. 왕에게는 길사가 많으시니, 군자가 부리는지라, 천자께 사랑을 받는도다. …… 봉황새가 울어대니, 저 높은 뫼이로다. 오동나무가 자라니, 저 양지쪽이로다. 무성한 오동나무에, 봉황새 노래 평화롭도다[鳳凰于飛 翽翽其羽 亦集爰止 藹藹王多吉士 維君子使 媚于天子 …… 鳳凰鳴矣 于彼高岡 梧桐生矣 于彼朝陽 菶菶萋萋 雝雝喈喈].”라고 하였는데, 이는 곧 오동나무가 아니면 깃들지 않고 죽실(竹實)이 아니면 먹지도 않는 봉황의 바른 품성을 재덕이 출중하여 정직하게 감간(敢諫)하는 선비에 비유한 것이다.】 오히려 또한 어렵구려. 『四佳詩集』 卷之十○第九 |
해설
이 시는 44살에 처음(53세에 다시 대사헌을 맡음)으로 대사헌이 되어 직책에 임하는 자세를 밝힌 것이다.
1연(聯)에서는 사헌부는 백관(百官)의 기강을 세우고 임금의 잘못을 간하는 자리인데, 자신이 그 직책을 맡게 됨을 부끄럽게 여기고 있으며,
2연(聯)에서는 어떤 사람은 서릿발 같은 위엄으로 그 직책을 훌륭하게 수행하는데, 자신은 철석(鐵石)같은 마음을 가지지 못해 임무를 잘 수행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렇지만 3연(聯)에서는 곧은 칼이 백 번을 부러지듯 자신도 곧은 칼처럼 엄정하게 일을 처리할 것이며, 휘어지는 등나무처럼 부정부패에 자신을 휘감기게 하지는 않겠다는 다짐을 보여주고 있다.
끝으로 4연에서는 성군이 다스리는 태평성대(太平聖代)여서 부패를 저지르는 백관(百官)을 고발하는 일이 없을 것이라 노래하고 있다.
서거정(徐居正)은 자신의 시대를, “지금 성인께서 위에 계시고 여러 어진 이들이 도우니, 군자의 도는 자라고 소인의 도는 사라진다[方今聖人在上, 群賢夾輔, 君子道長, 小人道消 「雲城府院君朴相公宅梅花詩序」).”라고 하여, 당대를 태평성대(太平聖代)로 보았다. 이 시는 이러한 태평한 당대(當代)에 관인(官人)의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관인(官人)의 자세를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서거정의 이러한 문재(文才)는 권근(權近)에게 비롯된 것으로 「행장(行狀)」에, “서거정은 양촌(陽村) 권근(權近)의 생질(甥姪)로 어려서부터 영특하여 나이 겨우 6세에 독서하고 글을 지을 줄 아니, 온 문중이 기동(奇童)이라 하였다. 조금 커서는 성균관에서 시험이 있을 때는 언제나 전열(前列)에 끼었으므로 당시 사람들이, ‘양촌의 문장이 분명 그 생질에게 전해진 것이리라.' 하였다[徐居正卽權陽村之外甥, 英敏夙成, 年纔六歲, 知讀書屬句, 一門謂之奇童. 稍長, 校藝學宮每居前列, 時人謂: ’陽村之文, 其必傳之外甥乎.‘].”라 기록되어 있다.
홍만종(洪萬宗)의 『소화시평(小華詩評)』 권상 60번에도, “서거정은 호를 사가정이라 하는데, 양촌 권근의 외손이다. 6살 때 시를 지으니, 사람들이 신동이라 불렀다. 그가 8살 봄에 양촌을 모시고 앉아 물었다. ‘옛날 사람들은 일곱 걸음을 걸을 때까지 시를 지었다고 하는데(曹植의 「七步詩」를 두고 한 말임), 그것은 조금 느린 것 같아요. 저는 다섯 걸음 안에 시를 지어 보겠습니다.’라고 하였다. 양촌이 매우 기이하게 여기고 드디어 하늘을 가리키며 주제로 삼고 명(名)ㆍ행(行)ㆍ경(傾) 세 글자를 운으로 불러 주었다. 이에 사가가 즉시 시를 지었다. ‘모양이 지극히 둥글고 커서 이름 짓기 어렵고, 땅을 안고 돌면서 절로 힘차게 다니는 구나. 지상을 덮은 중간에 만물을 포용하고 있는데, 기나라 사람은 왜 무너질까 근심했을까?’ 양촌은 감탄과 칭찬을 그치지 않았다[徐居正號四佳亭, 權陽村外孫也. 六歲屬句, 人稱神童, 八歲時陪陽村坐, 四佳曰: “古人七步成詩, 尙似遲也. 請五步成詩.” 陽村大奇, 遂指天爲題, 因呼名行傾三字. 四佳應聲曰: ‘形圓至大蕩難名, 包地回旋自健行. 覆燾中間容萬物, 如何杞國恐頹傾.’ 陽村歎賞不已.].”라는 비슷한 내용이 실려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55~56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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