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주의 누원에 올라
등양주루원(登楊州樓院)
강희안(姜希顔)
有山何處不爲廬 坐對靑山試一噓
簪笏十年成老大 莫敎霜鬢賦歸歟 『秋江冷話』
해석
有山何處不爲廬 유산하처불위려 |
산이 있다면 어느 곳인들 초가집 짓지 못하겠는가만은 |
坐對靑山試一噓 좌대청산시일허 |
앉아 푸른 산을 대하고서 시험삼아 한 번 탄식해보네. |
簪笏十年成老大 잠홀십년성로대 |
벼슬살이 10년에 늙은이[老大]이 되었지만 |
莫敎霜鬢賦歸歟 막교상빈부귀여 |
흰 귀밑머리로 하여 「귀거래사」 짓게 하진 마시라. 『秋江冷話』 |
해설
이 시는 양주의 누원에 올라 지은 것으로, 자연에 동화(同化)되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잘 드러난 시이다.
산이 있으면 어디에다 오두막집 한 채 못 짓겠는가? 청산을 마주 대하고 앉아 있으니,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의 입장에 대해 탄식이 절로 나온다. 벼슬살이에 전념한 지 10여 년에 이미 늙은이가 되어 버렸으나, 도연명(陶淵明)처럼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읊으며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너무도 간절하다.
남효온(南孝溫)의 『추강냉화(秋江冷話)』에 이 시에 관해 다음과 같은 일화가 전한다.
“인재 강희안이 젊어서 재예(才藝)가 있었다. 만년에 양주의 누원(樓院)에 올라 짧은 시 3편을 남겼다. 그 첫 편에, ……라 하였다. 영천군 이정(李定)은 자가 안지(安之)인데, 이 시를 보고 절하면서 비평하기를 ‘이 시는 매우 핍진하니, 서거정의 시가 아니면 이승소의 시일 것이다’ 하였다. 그 당시 서거정(徐居正)과 이승소(李承召)가 시명을 독차지하여 이정이 감복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 뒤에 이정이 다시 누각 아래를 지나가다가 전날 썼던 비평을 다시 읽어 보니, 그 아래에 글이 쓰여 있기를 ‘이 시에는 강산의 아취(雅趣)가 있어 한 점의 티끌도 없으니, 이는 반드시 번뇌에 얽매인 세속의 선비가 지은 것이 아니다. 또 천지가 크고 강산이 깊은데, 어찌 인재가 없어서 반드시 서거정과 이승소라고 추측하는가? 인재를 저버리고 사람을 멸시함이 어찌 이리도 심하단 말인가?’ 하였다. 이정이 이 글을 보고 크게 뉘우쳐서 그가 전날 비평했던 글을 지워 버렸다. 지금의 『진산세고』에는 3편이 모두 실려 있지 않으니, 경순(景醇) 강희맹(姜希孟)의 편집이 넓지 못함이 이와 같다[姜仁齋希顔少有才藝. 晩年登楊州樓院, 有小詩三篇. 其一篇曰: ‘靑山何處不爲廬, 坐對靑山試一噓. 簪笏十年成老大, 莫敎霜髩賦歸歟.’ 永川君定, 字安之, 見而拜之. 且批曰: ‘此詩逼眞, 非徐卽李.’ 時徐居正李承召擅詩名, 故爲定所服也. 後定過樓下, 見前批, 下有書曰: ‘此詩有江山雅趣, 無一點塵埃, 必非世儒拘於結習者所作. 且夫天地之大, 江山之奧, 豈無人才, 而必推徐李, 是何孤人才蔑人類太甚耶?’ 定見書, 大悔恨, 抹其前批. 今之晋山世稿, 三篇皆不載, 景醇輯之不博, 如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년, 69~70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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