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   2024/12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Archives
Today
Total
관리 메뉴

건빵이랑 놀자

논어 이인 - 16. 군자와 소인의 깨달음 본문

고전/논어

논어 이인 - 16. 군자와 소인의 깨달음

건방진방랑자 2021. 9. 30. 08:13
728x90
반응형

16. 군자와 소인의 깨달음

 

 

子曰: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 猶曉也. 義者, 天理之所宜. 利者, 人情之所欲.

子曰: “君子之於義, 猶小人之於利也. 唯其深喩, 是以篤好.”

氏曰: “君子有舍生而取義, 以利言之, 則人之所欲無甚於生, 所惡無甚於死, 孰肯舍生而取義哉? 其所喩者義而已, 不知利之爲利故也, 小人反是.”

 

 

 

 

 

 

 

해석

子曰: “君子喩於義, 小人喩於利.”

공자께서 군자는 의에서 깨우치고, 소인은 이익에서 깨우친다.”라고 말씀하셨다.

, 猶曉也.

()는 효()와 같다.

 

義者, 天理之所宜.

의라는 것은 천리의 마땅함이고,

 

利者, 人情之所欲.

()라는 것은 인정의 하고자 하는 것이다.

 

子曰: “君子之於義,

정이천(程伊川)이 말했다. “군자는 의에 있어서의 관계와

 

猶小人之於利也.

소인의 이익에 있어서의 관계와 같다.

 

唯其深喩, 是以篤好.”

오직 깊이 깨우치기 때문에 돈독히 좋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氏曰: “君子有舍生而取義,

양시(楊時)가 말했다. “군자는 생을 버리고 의를 취하는 것이니,

 

以利言之,

이로움의 측면에서 말하면

 

則人之所欲無甚於生,

사람이 하고 싶은 것이 사는 것보다 심한 것이 없고,

 

所惡無甚於死,

미워하는 것이 죽는 것보다 심한 것이 없으니

 

孰肯舍生而取義哉?

누가 기꺼이 사는 것을 버리고 의를 버리려 하랴?

 

其所喩者義而已,

깨우치는 바가 의일 뿐이고

 

不知利之爲利故也, 小人反是.”

이로움이 이로움이 되는 까닭을 알지 못하는 것이니, 소인은 이와 반대다.”

 

군자는 의()에서 깨달음을 얻고 소인은 리()에서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이다. 즉 깨달음의 층차의 단계적 고하를 말했을 뿐이다. 따라서 군자는 위대한 통치자이고 소인은 우매한 백성이라는 식의 논리는 유교에 없는 논리이고, 또 있어서도 아니 되는 논리이다. 군자와 소인은 결국 동일한 인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모든 군자가 수양을 게을리하거나, 판단을 잘못하거나, 일시적 탐욕에 치우치거나, 처신을 잘못하면 곧바로 소인이 되고 마는 것이다. 결국 군자나 소인이나 모두 ()’라는 일정한 수준의 교양인들을 놓고 하는 말이지, () 밖의 밭가는 농부를 보고 소인이라는 표현을 쓰는 법은 없다. -김용옥, 중용한글역주, 259

 

 

인용

목차 / 전문 / 한글역주

생애 / 공자 / 유랑도 / 제자들

728x90
반응형
그리드형
Comments

출처: https://sakang.tistory.com/9 [🦘 40대 캥거루족:티스토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