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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구 - 월야 등통군정구점( 月夜 登統軍亭口占) 본문

한시놀이터/조선

이정구 - 월야 등통군정구점( 月夜 登統軍亭口占)

건방진방랑자 2021. 4. 12.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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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뜬 밤에 통군정에 올라 입에서 나오는 대로 읊조리다

월야 등통군정구점(月夜 登統軍亭口占)

 

이정구(李廷龜)

 

 

樓壓層城城倚山 樓前明月浸蒼灣

江從靺鞨圍荒塞 野入遼燕作古關

北極南溟爲表裏 高天大地此中間

玆遊奇絶平生最 不恨經年滯未還

 

江上群峯是鶻山 山前大水卽龍灣

遊人喚酒尋遼店 獵騎呼鷹過漢關

萬竈貔貅刁斗裏 一樓風月畫圖間

元規千載留餘興 且判今宵盡醉還 月沙先生集卷之十

 

 

 

 

해석

樓壓層城城倚山
루압층성성의산
누대가 층층의 성을 누르고 성은 산에 기대
樓前明月浸蒼灣
루전명월침창만
누대 앞 밝은 달이 푸른 굽이에 잠겨드네.
江從靺鞨圍荒塞
강종말갈위황새
강은 말갈로부터 황량한 변방까지 에워쌌고
野入遼燕作古關
야입료연작고관
들은 요동과 연경에 들어가 옛 관문이 되었네.
北極南溟爲表裏
북극남명위표리
북극과 남해가 표리가 되니
高天大地此中間
고천대지차중간
높은 하늘에 너른 대지가 중간에 있네.
玆遊奇絶平生最
자유기절평생최
이번 유람의 기이하고 빼어난 것이 평생의 최고지만
不恨經年滯未還
불한경년체미환
해가 지나도 멈춘 채 돌아가지 못한 게 한스럽네.

 

江上群峯是鶻山
강상군봉시골산
강가의 뭇 봉우리는 골산이고
山前大水卽龍灣
산전대수즉룡만
산 앞 너른 물은 곧 용만이라네.
遊人喚酒尋遼店
유인환주심료점
나그네가 술을 마시러 주점 찾아가고
獵騎呼鷹過漢關
렵기호응과한관
말타고 사냥하다 매를 불러서 명나라 관문 지나네.
萬竈貔貅刁斗裏
만조비휴조두리
온갖 부엌의 날쌘 군대[貔貅]는 조두조두(刁斗): 옛날 군중에서 야경(夜警)을 돌 때 쓰던 바라로, 낮에는 밥을 짓고 밤에는 야경의 딱따기로 사용하였다. 속인 듯.
一樓風月畫圖間
일루풍월화도간
한 누대의 바람과 달은 그림 사이인 듯.
元規千載留餘興
원규천재류여흥
원규원규(元規): ()나라 유량(庾亮)의 자이다. 그가 태위(太尉)로 무창(武昌)에 있을 때 하속(下屬)인 은호(殷浩), 왕호지(王胡之) 등이 달밤에 남루(南樓)에 올라 막 시를 읊고 있었다. 이때 그가 그 자리에 나타났고 이에 하속들이 일어나 자리를 피하려 하자, 그가 제군들은 잠시 더 머물라. 이 늙은이도 이러한 일에 흥이 얕지 않다.” 하고는, 호상(胡床)에 걸터앉아 함께 시를 읊으며 놀았다. 晉書73 庾亮列傳여기서는 월사 자신을 가리킨다.의 천년 동안 머물러 남은 흥 있으니
且判今宵盡醉還
차판금소진취환
장차 결정하여 오늘밤 진탕 취해 돌아가자구나. 月沙先生集卷之十

 

 

해설

이 시는 1601년 명 황태자가 책봉된 후 조서를 가지고 오는 사신을 맞이하기 위해 의주에 갔을 때 달 밝은 밤 총군정에 올라 즉석에서 지은 시이다.

 

총군정은 높은 성을 누르고 있고 성은 산에 기대어 있는데, 누대 앞에 뜬 밝은 달은 푸른 물굽이에 젖어들고 있는 밤이다. 저 멀리 강은 말갈로부터 흘러 먼 변방을 감싸 돌고 앞에 펼쳐진 들은 요동과 연경(燕京)으로 들어가 옛 관문이 되었다. 통군정 앞은 북극과 남해가 안팎을 이루었고, 높은 하늘과 큰 땅이 그 사이에 펼쳐져 있다. 이번 사행을 맞이하는 길에서 본 빼어난 경치가 평생 으뜸이니, 여러 해 머물며 돌아가지 못하는 것도 한스럽지 않다.

 

이정구(李廷龜)는 이 시에서 총군정에 펼쳐진 웅장한 장관을 묘사함과 동시에, 작자의 기상 역시 웅장함을 보여 주고 있다고 하겠다. 이정구(李廷龜)관각체(館閣體)를 계승한 사람으로 홍재전서(弘齋全書)』 「일성록(日省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

우리나라의 관각체는 양촌(陽村) 권근(權近)으로부터 비롯되었는데 그 이후 춘정(春亭) 변계량(卞季亮), 사가(四佳) 서거정(徐居正) 등이 역시 이 문체로 한 시대를 풍미하였다. 근고(近古)에는 월사(月沙) 이정구(李廷龜), 호곡(壺谷) 남용익(南龍翼), 서하(西河) 이민서(李敏敍) 등이 또 서로 그 뒤를 이어 각체가 갖추어졌다. 비유하자면 대장(大匠)이 집을 지을 때 전체 구조를 튼튼하게만 관리하여 짓고 기이하고 교묘한 모양은 요구하지 않지만 사면팔방(四面八方)이 튼튼하게 꽉 짜여서 전혀 도끼 자국 따위의 흠은 보이지 않는 것과 같으니, 이 역시 한 시대의 거벽(巨擘)이 될 만한 것이다. ‘살아 있는 호곡(壺谷)이 두렵다.’고 한 말은 관각가(館閣家)에 지금까지 전해 오는 미담이다. 언젠가 옥오재(玉吾齋) 송상기(宋相琦)의 문집을 보니, 이러한 각 문체가 역시 호곡과 서하의 규범과 법도에서 나온 것이었다. 다만 농숙(濃熟)한 기력은 아무래도 미치지 못하였다[我國館閣體 肇自權陽村 而伊後如卞春亭徐四佳輩 亦以此雄視一世 近古則李月沙南壺谷李西河 又相繼踵武 各體俱備 比若大匠造舍 間架範圍 只管牢實做去 不要奇巧底樣子 而四面八方 井井堂堂 了不見斧鑿痕 此亦可爲一代巨擘生壺谷可怕 館閣家至今傳以爲美談 曾觀玉吾齋宋相琦文集 這箇各體 亦從壺 河規度中出來 而但氣力終不及濃熟].”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이담, 2010, 113~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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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이력 및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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