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묵 스님에게 장난스레 주며
희증쌍묵상인(戲贈雙默上人)
이정구(李廷龜)
釋重身猶病 經秋守一窓
석중신유병 경추수일창
柴扉掩落葉 書榻照寒釭
시비엄락엽 서탑조한강
鳥語還嫌鬧 僧來却喜跫
조어환혐료 승래각희공
秪今吾已默 對爾便成雙
지금오이묵 대이변성쌍 『月沙先生集』 卷之十六
해석
釋重身猶病 經秋守一窓 | 무거움을 벗어버리자 몸은 오히려 병들어 가을 지나도록 한 창문만 지키네. |
柴扉掩落葉 書榻照寒釭 | 사립문은 낙엽에 닫혀 있고 책상은 차가운 등잔 비추네. |
鳥語還嫌鬧 僧來却喜跫 | 새가 지저귀니 도리어 시끄러움이 싫어지만 스님 오니 도리어 발자국 소리 기쁘네. |
秪今吾已默 對爾便成雙 | 다만 이제 나는 이미 침묵하고 있어 당신 대하고 곧 쌍을 이루었네. 『月沙先生集』 卷之十六 |
해설
이 시는 장난삼아 쌍묵상인에게 지어 준 희작시(戲作詩)로 앞 시와 마찬가지로 폐축기(廢逐期)에 쓴 것이다.
무거운 직책에서 벗어나자 몸이 편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병들어 가을이 지나도록 내내 창을 지키며 누워 있었다. 사립문은 낙엽이 쌓인 채 계속 닫혀 있고, 책상은 차가운 등불만이 비추고 있다. 창밖에서 새가 우는데 예전에 듣기 좋던 그 소리가 지금은 도리어 그 울음의 시끄러움이 싫고, 스님이 나를 찾아오니 문득 스님의 발자국 소리가 반갑다. 마침 지금 나는 이미 침묵하여 말도 제대로 못 하는 처지에 있어, 그대를 마주하니 문득 쌍을 이루었다【쌍묵상인(雙默上人)이라는 이름을 가지고 재미있게 시를 지어 자신의 우울함에서 벗어나고자 함을 보여 줌】.
이정귀(李廷龜)의 시에 대해 정조(正祖)는 『홍재전서(弘齋全書)』 「일득록(日得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월사(月沙) 이정귀(李廷龜)의 문장은 순후하면서도 광대하여 얼핏 보아서는 그다지 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사람으로 하여금 싫증나지 않게 한다. 예로부터 문인(文人)은 과장을 일삼아 진실성이 없다고들 말해 왔지만, 이 사람은 전혀 그렇지 않다. 그 시를 읊고 그 글을 읽어 보면 절로 징험할 수 있다. 그 후손은 반드시 창성할 것이다[李月沙之文 醇厚博茂 驟看不甚有滋味 而讀之逾久 令人不厭 自古稱文人浮夸少實 而斯人則却不然 誦其詩讀其文 自可驗 其後必昌].”
“『월사집(月沙集)』은 대개 평이한 문장과 관각(館閣)의 문체로 내용과 형식이 정확하다. 붓끝에 혀가 있어 하고 싶은 말은 못 한 말이 없었고 표현하기 어려운 것도 모두 표현하였다. 무술년의 주문(奏文)【「무술변무주(戊戌辨誣奏)」라고도 하는 이 글은 저자가 35세 되던 1598년에 지은 총 3,309 자에 달하는 장문(長文)으로, 『월사집』제21권에 수록되어 있다. 조선이 왜적과 제휴하여 중국을 침범하려 한다고 정응태(丁應泰)가 중국 조정에 무고한 사실에 대하여, 조정의 명을 받고 중국에 가서 황제에게 호소력 있게 변명한 이 글에 대하여 선조(宣祖)는 ‘글이 폐부에서 나오기 때문에 곡진하고 간절하다.’ 하였고, 심재(沈鋅)의 『송천필담(松泉筆談)』등에서는 ‘천하제일의 문장이다.’라고 하였다. 또 이 글은 선조조의 현안 문제를 해결한 외교적 성과가 크다는 평을 받고 있으며, 저자의 문명(文名)을 천하에 알리는 역할도 하였다는 데에 그 의미가 크다 하겠다】은 얼마나 중대한 글이며 대문장인가. 중국말을 잘하였다는 것은 극히 일부분일 뿐이다. 앞에 저헌(樗軒) 이석형(李石亨)의 명망과 덕이 있었고 뒤에 월사의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자손이 번성하고 가문이 빛났다. 3대가 문형(文衡)이었고 5인이 호당(湖堂)에 들었으며, 당내(堂內)의 형제가 나란히 과거에 급제한 이가 7인이었고, 세상에 문집을 남긴 이가 4인이었다. 이처럼 문벌이 화려한 것은 덕수이씨(德水李氏) 집안과 서로 우열을 가리기 어려우나, 과거에 급제한 성대함은 많은 정도일 뿐만 아니다[月沙集 大抵是菽粟之文 館閣之體 而辭與理到 筆端有舌 所欲言之者 無不言之 所難形容處 亦皆形容 至如戊戌奏文 又何等大文字大手筆 善解漢語 特其小節耳 前有樗軒之名德 後有月沙之勳勞 故子孫蕃昌 門闌輝赫 文衡三世 湖堂五人 同堂兄弟之竝世登科者七人 有文集行于世者四人 似此華閥 與德水之李相伯仲 而科甲之盛 不啻過之也].”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117~119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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