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이 일어
감흥(感興)
이정구(李廷龜)
中宵悄不寐 起坐披重衾
중소초불매 기좌피중금
江月入我幃 江風吹我襟
강월입아위 강풍취아금
泠泠萬慮息 便見太古心
령령만려식 변견태고심
床上有古書 床前有素琴
상상유고서 상전유소금
我欲奏一曲 擧世無知音
아욕주일곡 거세무지음 『月沙先生集』 卷之十四
해석
中宵悄不寐 起坐披重衾 | 한밤 쓸쓸히 잠 오지 않아 일어나 앉아 겹 이불 걷네. |
江月入我幃 江風吹我襟 | 강 달은 나의 휘장에 들고 강 바람은 나의 옷깃에 불어오네. |
泠泠萬慮息 便見太古心 | 시원하게도 온갖 염려 종식되고 보니 곧 태고의 마음을 보게 되네. |
床上有古書 床前有素琴 | 침상 위 옛 서적 있고 침상 앞엔 흰 거문고 있어 |
我欲奏一曲 擧世無知音 | 내가 한 곡조 연주하여 싶지만 온 세상에 지음 없구나. 『月沙先生集』 卷之十四 |
해설
이 시는 폐모론(廢母論)이 일어 서인(西人)들이 대부분 유배를 당했으며 이정구 자신은 교외에 우거하며 대죄(待罪)하고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정치적 상황으로 말미암아 근심스러워 한밤중에도 잠이 오지 않자, 잠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무거운 이불을 걷는다. 밖을 내다보니 강위에 뜬 달이 내 침실 휘장으로 들어와 비치고, 달 아래 강에서 부는 바람이 내 옷깃에 불어온다(근심스러운 상황이 주변의 맑은 경치로 인해 다소 위안이 되고 있음). 맑고 맑은 경치 때문에 온갖 시름이 사라지니, 곧 태고의 태평스러운 그 마음을 보는 것 같다. 방 안의 상 위에는 읽던 옛날 책이 놓여 있고, 침상 앞에는 장식 없는 거문고가 놓여 있다. 내가 거문고를 가져다 한 곡 연주하고 싶은데, 온 세상에 내 거문고의 음(音)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 안타깝다(당시 李恒福ㆍ申欽 등이 유배를 당하거나 죽음을 맞이하여 평생의 지기(知己)와 이별함을 아쉬워한 것임).
월사(月沙)는 「상촌집서(象村集序)」에서, “일찍이 문장은 천지의 한 것이요 불후(不朽)의 대업이라 하였다. 그 드러남과 숨겨짐은 사람에게 달려 있고, 흥하고 잃음은 세상의 도에 매여 있다. 그러므로 군자는 그때를 얻으면 정(精)을 발하여 사업을 이루고, 그때를 얻지 못하면 정(精)을 거두어서 글을 짓는다. 그러나 문사에 뛰어난 사람은 간혹 세상일에 소활하고 경제를 맡은 사람은 문사에 힘쓸 겨를이 없다. 그러므로 예부터 작자는 근심스러운 생각과 곤란에서 많이 나왔다. 사마상여(司馬相如)는 소갈병에 걸렸고 사마천(司馬遷)은 궁형을 당했지만 그 책은 더욱 풍부해졌고, 굴원(屈原)은 못가로 쫓겨나 「초사」가 마침내 지어졌다. 이것은 글에 공교로운 것이 궁하게 한 것이 아니요, 궁한 뒤에 글이 공교로운 것이다[嘗謂文章者 天地之精而不朽之大業也 其顯晦在人 興喪係世道 故君子得其時 則精發而爲事業 不得其時 則精斂而爲文辭 然而工文辭者 或疏於世務 任經濟者 未遑於詞翰 故自古作者多出於憂思困厄之中 兩司馬病渴論腐 其籍益富 屈三閭澤畔懷沙 其騷乃著 斯非工於文者窮 窮而後工也].”라 하여, 군자가 때를 얻지 못하면 문장에 전념하여 불후(不朽)의 작품을 남겨야 한다고 하였다. 이 시 역시 때를 얻지 못했을 때 지은 것으로, 월사의 불후(不朽) 작품이라 할 수 있다.
홍만종은 『소화시평(小華詩評)』 권하 23번에, “명나라 사신 웅화가 관반 여러분 중에서 이 시구에 화답한 분이 매우 많았으나, 명나라 사신은 아무것도 눈여겨보지 않고 오직 월사 이정구의 ‘맑은 향기 속에 제비가 옹송그린 채 앉아 있고, 텅 빈 누각엔 꿩만지친 듯 나네.’ 만을 두세 번 옮더니, ‘이 시는 당시의 운치를 가졌다.’라 하였다[天使熊化 …… 館件諸公和之者甚多 天使皆不掛眼 獨於李月沙廷龜 淸香凝燕座 虛閣敞翬飛之句 始吟詠再三曰 此有唐韻].”라 하여, 이정귀(李廷龜)의 시(詩)가 뛰어남을 드러내고 있다.
원주용, 『조선시대 한시 읽기』 하, 이담, 2010년, 115~116쪽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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