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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Susan Sontag)[편집되는 고통, 유통되는 슬픔을 넘어] - 10.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굿 윌 헌팅과 수전 손택(Susan Sontag)[편집되는 고통, 유통되는 슬픔을 넘어] - 10.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건방진방랑자 2021. 7. 22. 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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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네 잘못이 아니야(It’s not your fault)……

 

 

이제 윌과 숀의 심리 상담도 막바지에 이르렀다. 스물한 살이 된 윌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했다. 그러나 평생 그의 인생을 밝혀줄 소중한 멘토를 얻었다. 숀으로 인해 윌은 자신의 빛을 가리고 있던 어둠의 실체와 대면했다. 윌의 고통은 단지 과거의 상처들만이 아니었다. 윌의 미래를 가로막는 장애물은 바로 내가 고통의 근원이다라는 죄책감이었다. 그는 자신이 가는 곳마다 잇따라 일어나는 불행의 씨앗이 바로 자신의 존재 자체에서 우러나오는 어둠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자신의 인생을 내팽개치고 사랑하는 사람이 먼저 자신을 떠나도록 방치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불행의 원인을 설명할 수 없는 무력감, 그것은 모든 게 내 탓이다혹은 나는 저주받은 존재다라는 치명적인 죄책감을 낳았다. 숀은 그런 윌의 자책감을 알고 있다. 숀은 자신의 과거 또한 윌과 비슷한 상처로 얼룩져 있음을 숨기지 않는다. 윌도 처음으로 스스로의 상처를 담담하게 고백하기 시작한다.

 

 

: 아버지가 알코올중독이셨다. 늘 고주망태였지. 완전히 술에 찌들어서, 두들겨 팰 사람을 찾곤 했지. 난 엄마와 동생이 맞지 않게 하려고 먼저 덤볐지. 반지를 끼고 계신 날이면 더 볼만했어.

: 그 남자는…… 늘 탁자에 렌치와 각목과 혁대를 늘어놓고는, 저더러 선택하라고 했죠.

: 나 같으면…… 혁대로 하겠다.

: 전 렌치를 택하곤 했어요.

: ?

: 갈 데까지 가보자는 심정이었죠.

: 네 양부였니?

: ……. 제 평가 결과는 어때요? 애정 결핍 같은 건가요?

: 이 기록들…… 모두 다 헛소리야. 네 잘못이 아냐.

: 알아요.

: 내 눈을 똑바로 쳐다봐. 네 잘못이 아니야.

: 알아요.

: (숀은 윌의 내장기관까지 다 뚫어버릴 듯한 깊은 눈빛으로 윌을 바라보며 다시금 힘주어 말한다) 네 잘못이 아냐.

: 안다고요!

: (숀은 점점 윌을 벽 쪽으로 몰아세운다) 아냐, 넌 몰라. 네 잘못이 아니다.

: (윌은 숀의 집요한 반복에 분노와 공포를 동시에 느낀다) 안다니까요!

: (다시금 소름끼치도록 차분한 목소리로, 같은 문장이지만 매번 다른 울림으로 윌에게 다가간다) 네 잘못이 아냐.

: (감정이 폭발하며) 알았으니까 성질나게 하지 말라구요!

: 네 잘못이 아니야.

: (이제는 절규하는 윌) 제발, 성질나게 하지 말란 말이에요. 선생님만이라도!

: (숀은 여전히 놀라우리만큼 차분한 목소리로 같지만 다른 이야기를 한다. 네가 죄책감에서 빠져나오지 않으면 평생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숀은 이 짧은 문장으로 대신하는 듯하다) 네 잘못이 아니었어. 네 잘못이 아냐.

: (윌은 그제야 숀의 메시지를 알아듣고, 처음으로 울어버린다. 그리고 숀에게 안겨서 마음껏 운다) 젠장, 정말 죄송해요.

: (윌을 힘껏 품에 안으며) 다 잊어버려.

 

 

 

 

내가 나를 해치지 않는 한 아무도 나를 해칠 수 없다. 인간을 분석하는 그 어떤 이론도 살아 있는 인간의 상처에 완전히 다다를 수는 없다. 타인의 고통에 대한 성실한 개입은 연민이나 분석, 해부나 비판이 아니라 다만 가만히 서로의 존재에 스미고 번지는 행위를 통해 천천히 일어난다. 겹겹이 쌓인 위악의 제스처들, 그 두터운 연기력의 각질을 벗겨내면, 윌의 상처의 뿌리, ‘죄책감이 놓여 있다. 나는 재수 없는 아이, 내가 닿는 모든 것은 다치고 상하고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 어쩌면 처음부터 모든 것이 내 탓일지도 모른다는 근원적인 죄의식. 그곳을 향해 숀은 매번 다른 울림으로 번지는 주술적 언어, ‘네 잘못이 아니야!’로 다가갔다. 그 뿌리 깊은 죄의식을 떨쳐버리는 순간, 윌은 자유가 된다. 더 이상 심리 상담 같은 건 필요 없어진다. 상담 마지막 날, 윌은 자신이 치료되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배우려 하지 않던 이 오만한 청년은, 태어나 처음으로 선생님께 감사하다는 말을 하고 싶다. 게다가 그토록 윌의 취직을 바라던 램보 교수가 소개해준 굴지의 회사 맥닐 사에 입사하기로 결정한다. 드디어 윌은 자신의 천재적 재능을 발휘할 멋진 직장을 찾은 것이다.

 

 

: 이걸로 끝인가요? 치료는 끝난 거예요?

: 그래. 넌 완치됐어. 이제 자유야.

: 저기, 선생님께 정말…….

: 말 안 해도 알아. 네 마음을 따라 가렴. 그럼 괜찮을 거야.

 

 

윌은 부모도 형제도 없지만 그 어떤 부모 형제와도 바꿀 수 없는 친구 처키가 있음을 깨달았다. 사랑이라는 사슬로 자식을 옥죄는 부모가 아니라, 우정이라는 빛으로 친구의 어둠을 밝히는 처키와 그 일당들. 그들은 윌의 스물한 살 생일 선물로 자동차를 선물해준다. “축하한다, 짜샤!” 돈 없는 친구들이 여기저기 버려진 부속품들을 모아 뚝딱뚝딱 정성 들여 만든, ‘빈티지형 자동차를 보며 윌은 자신이 이토록 큰 사랑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돈으로 살 수도 다시 기억하여 만들 수도 없는, 세상에서 하나뿐인 윌 헌팅 표 DIY 자동차. “나하고 빌리하고 부속을 모으고 모건이 매일 구걸을 좀 했지. 빌리하고 내가 엔진을 새로 만들었어. 스물한 살 생일 축하한다.” 태어나서 이렇게 못생긴 차는 처음 본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윌의 얼굴에 문신처럼 새겨져 있던 덧없는 우울의 표정이 어느덧 완전히 걷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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