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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 ‘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 ‘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2. 1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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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트릭스와 미르치아 엘리아데

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1. ‘문턱을 넘는 순간, 내 안의 신화는 시작된다

 

 

본성은 한정되어 있으나, 욕망에 있어서는 무한대를 달리는 인간은 천국을 기억하는 타락한 신이다.

-알퐁스 드 라마르틴(프랑스의 시인)

 

만약 세계 한가운데서 살고자 한다면 세계를 창건해야만 한다. -엘리아데

 

 

다가오는 시험이 걱정스럽고, 줄어드는 통장 잔고가 걱정스럽고, 가족들의 잔병치레가 걱정스러운 이 일상적 고통의 차원을 뛰어넘는 고통이 있다. 이런 걱정들은 각각 시험이 끝나면 해결되고 월급이 입금되면 잊히며 건강이 회복되면 사라진다. 그저 열심히 살아서는 해결될 수 없는 고통, ‘나 하나의 개인적 안위만으로는 만족할 수 없는 욕망.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세속적 일상을 질주하다가도 문득 , 이게 전부가 아닌데.’하는 생각에 사로잡힌다.

 

그저 밥 먹고 잠자고 일하는 이 똑같은 일상이 내 인생의 전부이면 어떡하지? 회사나 학교의 스케줄에 따라 복종하는 이 틀에 박힌 일상으로 내 인생이 끝나버리면 어떡하지? 이렇게 정신없이 살고 있는데 이 모든 난리법석에 아무런 의미가 없으면 어떡하지?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삶이 제자리걸음인 것만 같을 때, 아무리 안간힘 써도 나의 운명이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똑같은 패턴으로 반복될 때. 우리는 이렇게 위로받을 수 없는 두려움에 빠진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유능한 컴퓨터 프로그래머 토마스 앤더슨(키아누 리브스)은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회사생활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해 해커라는 2의 가면을 쓰고 자기만의 또 다른 정체성을 찾아 헤맨다. 그는 낮에는 유능한 회사원으로, 밤에는 지하세계에서 유명한 네오라는 이름의 해커로 살아간다. 그는 눈에 보이는 이 세속적 일상 너머에 어딘가 숨 쉬고 있을지도 모를 나만의 신화, 나만의 성스러운 삶의 목표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그는 끊임없이 컴퓨터 해킹을 하며 자신의 마음속에 떠도는 정체불명의 질문에 대한 해답을 찾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에게 둘도 없는 친구인 컴퓨터가, 그에게 정말 을 걸어온다. 그는 그것이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할 수가 없다.

 

 

컴퓨터: 일어나, 네오……

토마스: 뭐야?

컴퓨터: 넌 매트릭스에게 사로잡혔다.

토마스: 그게 무슨 소리지?

컴퓨터: 흰 토끼를 쫓아라!

토마스: 흰 토끼를 쫓으라고? (갑자기 토마스의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난다.)

 

 

 

 

토마스는 자신이 해킹한 프로그램을 왈패들에게 넘겨주다가 문득 그들 중 한 명의 몸에 하얀 토끼 문신이 그려져 있음을 발견한다. 마치 신성한 계시를 따라가듯, 신비로운 주문에 홀린 듯 자신도 모르게 하얀 토끼가 그려진 여인을 따라가는 토마스. 그는 왈패들을 따라 간 술집에서 매혹적인 여인 트리니티(캐리 앤 모스)를 만난다. 트리니티는 마치 오래전부터 그를 너무도 잘 알아왔다는 듯한 친밀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본다. 트리니티를 만나는 순간 그는 자연스럽게 토마스가 아니라 네오가 된다. 트리니티가 찾는 것도 토마스가 아니라 네오였기 때문이다. 아마 신화학자 엘리아데가 이 장면을 목격했더라면 그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을까. 네오는 지금 ()’()’ 사이에 놓인 문지방을 넘어가고 있는 거라고. 엘리아데는 세속에서 신성으로 넘어가는 경계의 특성을 교회의 내부로 열려 있는 문지방의 공간적 은유를 통해 설명한다.

 

 

두 개의 공간을 갈라놓는 문지방은 (……) 세속적인 것과 종교적인 것 사이의 거리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 문지방은 한계점이요 경계선이며, 두 개의 세계를 갈라놓고 대립시키는 구분선이다. 동시에 그것은 이들 세계가 교섭을 갖고, 세속적인 것에서 거룩한 것에로의 전이 가능성을 얻게 되는 역설적인 장소이기도 한다. (……) 몇몇 고대 문명(바빌론, 이집트, 이스라엘)에서는 판결의 장소를 문지방 위에 위치시켰다. 문지방, 문은 공간에 있어서의 연속성의 단절을 직접적으로 또 구체적으로 보여주며, 여기서 그것이 갖는 커다란 종교적 중요성이 유래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하나의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넘어가는 이행의 상징이자 동시에 매개자가 되기 때문이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23.

 

 

트리니티: 안녕, 네오!

네오: 날 어떻게 알지?

트리니티: 난 널 잘 알아. 난 트리니티야.

네오: 그 트리니티? 국세청을 해킹했던?

트리니티: 오래 전 얘기지.

네오: 맙소사.

트리니티: ?

네오: 남자인 줄 알았거든.

트리니티: 다들 그래.

네오: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지? 어떻게 한 거야?

트리니티: 중요한 건, 넌 지금 위험하다는 거야. 경고하려고 불렀어.

네오: 무슨 경고?

트리니티: 그들이 널 보고 있어.

네오: 누가?

트리니티: (네오의 귀 가까이로 바싹 다가오며 속삭인다.) 그냥 듣기만 해. 네가 왜 여기 왔는지 알아. 네가 뭘 했으며 왜 잠을 못 자고 왜 혼자 살며 밤이면 밤마다 왜 컴퓨터 앞에 앉는지도. 넌 그를 찾고 있어. 난 알아, 나도 한때 그랬으니까. 그가 날 찾았을 때 그는 내가 찾아낸 건 자기가 아니라 해답이랬어. 우릴 움직이는 건 질문이지. 그게 널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거야. 넌 그 질문이 뭔지 알아.

네오: 매트릭스란 뭐지?

트리니티: 정답은 어딘가에 있어. 그것은 널 찾고 있고 곧 찾을 거야. 네가 정말 원한다면.

 

 

네오는 하얀 토끼를 따라감으로써 자신의 운명이 완전히 뒤바뀔 것임을 예감한다. 그러나 아직 네오는 혼란스럽다. 아직 아무 것도 결정되지 않았다. 자신이 어쩌면 성스러운 세계의 일원일지도 모른다는, 이 믿음은 아직 너무 많은 의혹들에 흽싸여 있기 때문이다. 네오는 지금 믿음이라기보다는 유혹이나 의혹에 가까운 감정으로 트리니티를 바라보다. 엘리아데를 비롯한 수많은 신화학자들이 말하는 신성은 객관적인 세계 바깥에서 외따로 고립되어 있는 신비가 아니다. 신성은 객관적 현실을 넘어선 어떤 것이 객관적 현실 속에서나타나는 것이다. 토마스 앤더슨이 네오가 되는 것은 단지 세상 바깥의 이질적인 세계가 출현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지금까지 쭉 찾아왔던 것, 그의 일상 속에서 늘 함께 하고 있었던 어떤 보이지 않는 힘이 이제야 비로소 계시(revelation)’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믿음이란, 그 모든 알 수 없는 신비와 공포와 경이로움에도 불구하고, 그래도 인생은 의미 있는 것이라는 확신을 뜻하는 말일 뿐이다.

-아르투어 슈니츨러

 

 

 

 

 

2. ‘토마스네오

 

 

인간은 망가진 채로 태어나 수리를 받으며 살아간다. 그리고 신의 은총이 바로 그 집착제이다.

-유진 오닐

 

 

옛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각자 자기 문화에 어울리는 성소(聖所)를 찾아 기도를 드림으써 하루를 시작했다. 현대인은 로그인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의 일상을 알기 위해서는, 우리의 대략적인 뇌 구조를 분석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의 컴퓨터를 켜서 즐겨찾기리스트를 살펴보면 된다. 컴퓨터는 우리의 관심사와 우리의 욕망의 좌표를 알려주는, 너무도 노골적인 꿈의 검색 히스토리를 내장하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고 해서 애꿎은 컴퓨터를 탓할 필요는 없다. 신화학자 나카자와 신이치(中沢新一, 1950~)의 연구에 따르면 인간의 인지구조는 신석기 시대 이후로 근본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다만 인식의 미디오가 바뀐 것이다. 옛 사람들이 자연미디어로 하여 사유의 패턴을 만들어 나갔다면, 현대인은 컴퓨터를 비롯한 각종 기계적 미디어를 통해 정보를 수합하고 사유의 그물을 짠다. 관건은 그렇게 얻은 정보를 어떻게, 어디에, 언제 활용할 것인가를 선택하는 문제다. 어쩌면 이제는 컴퓨터야말로 우리 존재의 문지방일지도 모른다. 컴퓨터는 현대인의 새로운 성소(聖所)’

 

영화 매트릭스는 컴퓨터를 통해 사고하고 사랑하고 창조하게 된 인간이 재구성해낸 현대사회의 새로운 신화 텍스트가 아닐까. 영화 반지의 제왕처럼 매트릭스는 일종의 인공 신화의 요소들을 간직하고 있다. 매트릭스의 스토리와 배경은 SF영화의 패턴을 따르고 있지만 등장인물의 이름(네오, 트리니티, 모피어스 등등), 영웅 신화이 전형적 스토리텔링을 간직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매트릭스의 신화적 성격을 증언한다. 네오는 컴퓨터를 통해 자신의 신성한 임무를 최초로 깨닫게 된다. 컴퓨터가 부르는 그의 이름 네오를 통해 그는 현실이라는 꿈에서 깨어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까지 컴퓨터를 통해 이 세상이 뭔가 잘못된 것 같은 막연한 느낌, 내가 잃어버린 알 수 없는 무언가를 찾아야한다는 맹렬한 환상을 추격해왔다. 컴퓨터는 그에게 있어 성전이자 성소이자 성경인 셈이다.

 

그런데 컴퓨터를 통해 세계의 비밀과 무한 접속할 수 있는 토마스의 능력만으로는 사이에 놓인 문턱을 뛰어넘을 수 없다. 세속의 인간 토마스 앤더슨이 신성의 이름 네오를 향한 문턱을 넘기 위해서는 세속의 집착을, 신성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야 한다. 그는 매력적인 여성의 몸에 새겨진 문신으로 형상화된 하얀 토끼의 유혹은 쉽게 따르지만 전화기 저편으로 들려오는 모피어스의 목소리를 따라 목숨을 걸고 고층건물의 옥상 문턱을 넘어서지는 못한다. 휴대폰 너머로 모피어스는 다급하게 외친다. “비계를 타고 옥상으로 가!” 아직 네오가 되지 못한 토마스는 영문을 알 수 없는 이 미궁의 추격전을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말도 안 돼! 이건 미친 짓이야!” 모피어스는 다그친다. “방법은 두 가지다! 비계를 이용해서 옥상으로 올라가든가, 아니면 놈들한테 잡히든가. 선택은 네 마음이야.”

 

 

 

 

토마스는 까마득한 죽음의 골짜기가 펼쳐진 발아래를 내려다보며 두려움에 떤다. “미친 짓이야! 이게 다 뭐야? 내가 뭘 어쨌기에? 난 아무 짓도 안 했어. 죽겠군, 젠장! 난 못해!” 자신을 추격하는 정체 모를 선글라스 신사들(스미스 일당)의 시선을 피해 달아나고는 싶지만 떨어지면 바로 죽을 것이 확실한 고층건물의 옥상을 향해 맨몸으로 올라갈 용기를 내기는 쉽지 않다. 신성을 찾아 헤매기는 했지만 막상 신성의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엄청난 용기와, 그리고 내가 바로 그라는 믿음이 필요한 것이다. 토마스는 끝내 스미스 일당에게 붙잡히고 만다. 토마스는 스미스에게 붙잡혀 심문을 당하고 나서야 모피어스와 트리니티의 말을 믿지 못한자신의 선택을 후회한다. 스미스는 모피어스와 네오가 동시에 경계하고 있던 매트릭스의 수문장이었던 것이다.

 

 

스미스: 우린 한동안 자넬 지켜봐왔다. 두 개의 인생을 살고 있더군. 하나는 소프트웨어 회사의 프로그래머인 토마스 앤더슨. 떳떳한 시민으로서 세금도 내고 집주인 아줌마의 쓰레기도 버려주지. 다른 하나는 네오라는 이름의 해커로서 온갖 컴퓨터 범죄는 죄다 저질렀더군. 둘 중 하나는 앞날이 보장돼 있고 다른 하나는 미래가 없어. 아직 솔직하게 털어놓겠네. 우린 자네가 필요해. 어떤 자가 연락해왔지? 모피어스라는 자 말이야. 그에 대해 자네가 아는 건 전부 무시해. 정부에서도 그자를 가장 위험한 인물로 찍었으니까. 동료들은 내가 자네 일로 시간낭비를 한다고 봐. 하지만 난 자넬 믿네. 자네가 새 출발을 하게 도와 줄 수도 있어. 자넨 테러범 체포를 도와주기만 하면 돼.

네오: (시니컬하게 미소를 지으며) 귀가 솔깃하네요. 더 좋은 게 있는데 말이죠. (가운데 손가락을 당당히 펴 보이며 엿 먹으라고 제스쳐를 취하고) 당신은 이거나 먹고! 내 전화나 돌려줘!

스미스: 이런, 앤더슨. 날 실망시키는군.

네오: 그런다고 겁낼 줄 알아? 난 내 권리를 알아! 전화나 내놔!

스미스: 얘기도 못 할 텐데 전화가 무슨 소용이지? 좋든 싫든 간에 넌 우릴 도와야 할 걸.(갑자기 네오의 입술이 점점 없어지며 그 어떤 언어로도 소통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쳐온다. 그들은 우격다짐으로 가재를 닮은 이물질을 네오의 배꼽으로 집어넣어 그를 경악케 한다. 네오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기 위한 도청 기계였다. 네오는 이 모든 끔찍한 상황이 악몽이라고 믿고 싶다.)

 

 

 

 

모피어스는 포기하지 않고 네오를 향해 접속을 시도한다. 스미스는 계속 그를 토마스로 부르지만 모피어스는 줄기차게 그를 네오라고 부른다. 스미스 일당이 원하는 것은 고분고분한 모범 회사원이자 성공이 보장되어 있는 세속의 인간 토마스였고 모피어스가 원하는 것은 매트릭스의 음모와 싸울 운명의 전사이자 신성의 인간 네오였던 것이다. 모피어스는 트리니티를 통해 네오의 몸에 정착된 끔찍한 기계장치를 없애버리게 만들고 네오를 자신의 거처로 초대한다. 트리니티는 모피어스를 향해 네오를 안내하면서 그에게 당부를 한다. “네오, 날 믿어야 해. 그리고 정직해야 돼. 모피어스를 과소평가하지 마.” 그녀의 당부는 매트릭스의 중요한 테마 중 하나다. 바로 믿음이다.

 

내가 신성한 세계를 향해 나아가고 있는 믿음, 내가 신성한 가치의 창조에 참여하는 존재라는 믿음, 그리고 내 곁에 일어나는 이해할 수 없는 비논리적 사건들이 바로 이 세계를 엮어내는 진실의 또 다른 모습이라는 믿음. 모피어스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네오의 표정을 보며 여유롭게 말한다. “자넨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된 기분이겠지? 토끼 구멍으로 떨어진 것 같지?” 네오는 속내를 들킨 듯 부끄러운 표정으로 대답한다. “그런 것 같아요.” 그들은 이렇게 첫 만남을 시작한다.

 

 

거룩한 공간의 계시는 고정점을 획득하고, 따라서 균질성의 카오스 속에서 방향성을 확보하며, ‘세계를 창건하고, 참다운 의미에서 그 속에 거주하는 것을 가능케 한다. 반대로 세속적인 경험은 공간의 균질성을, 따라서 그것의 상대성을 유지시킨다. 이때에는 고정점이라는 것이 더 이상 유일한 존재론적 지위를 향유하지 못하기 때문에 진정한 방향성이란 불가능해지고 만다. 그것은 나날의 필요성에 따라서 나타났다가 사라졌다가 하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여기에는 더 이상 어떤 세계도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부서진 우주의 단편들, (……) 무정형의 더미만이 있게 된다. 이 속에서 인간은 산업사회에 편입된 존재로서의 의무에 따라 움직이고, 그것에 지배당하여 조종 받게 되는 것이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22.

 

 

 

 

 

3. 현실은 꿈의 배설물일 뿐이야

 

 

신화란 본질적으로 무한하면서도 객관적 현상에 있어서는 유한할 수밖에 없는 어중간한 존재로서의 모순적인 인간 상태를 비애를 담아 표현한 것이다.

-폴 리쾨르

 

 

가끔 미치도록 바다가 보고 싶을 때, 지금 당장 여행을 떠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을 때, 평소엔 전혀 종교생활을 하지 않다가도 갑자기 아무 신의 옷자락이라도 붙들고 간절히 기도를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유모차를 타고 지나가며 까르륵 웃는 아이가 정말 살아 있는 천사처럼 보일 때, 엄마의 눈가에 자글자글한 주름에서 할머니와 엄마와 나의 3대를 넘어 우리가 진화해온 지긋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질 때, 오늘 따라 매일 보는 친구나 연인의 얼굴이 불현듯 여신 포스를 풍기며 아름답게 빛나 보일 때.

 

우리는 그럴 때 저마다의 무한한 시간, 저마다의 신화적 시간을 갈구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철학자 폴 리쾨르(Paul Ricoeur, 1913~2005)는 인간이란 유한성과 무한성의 두 기둥 사이에 가냘프게 매달려 있는 나약하기 그지없는 존재라고 생각했다. ‘의 세계와 의 세계 사이에서 흔들리며 분열되는 존재, ‘의 이상적인 통합을 추구하지만 매번 실패하는 존재.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유한한 시간의 화살표에 쫓겨 다니며 보내지만, 문득문득 정해진 스케줄의 중력 바깥으로 뛰쳐나가는 신화적 시간의 내밀한 원심력을 느끼곤 한다.

 

매트릭스의 네오에게는 이제 신화적 시간의 모험을 떠날 것인가, 세속의 시간에 머물 것인가하는 절박한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다. 모피어스는 빨간 알약과 파란 알약을 각각 보여주면서 각각의 의미를 설명해준다. 빨간 약은 신성한 모험의 시간을, 파란 약은 세속의 시간에 머물기를 의미한다.

 

 

모피어스: 네오. 네가 여기 온 이유를 말해 주지. 넌 스스로 이미 뭔가를 알기 때문에 온 거야. 그게 뭔지 설명은 못 해. 하지만 뭔가가 느껴졌을 거야. 넌 그걸 평생 동안 느껴왔어. 뭔지는 모르지만 세상이 잘못됐다는 걸 말이야. 그 생각 때문에 머리가 깨질 것처럼 아프고 자넨 미칠 지경이었겠지. 그 느낌에 이끌려 온 거야. 무슨 말인지 알겠나?

네오: 매트릭스를 말하는 건가요?

모피어스: 그게 뭔지 알고 싶나? 매트릭스는 사방에 있어. 바로 이 방 안에도 있고 창 밖을 내다봐도 있고 TV 안에도 있지. 출근할 때도 느껴지고 교회에 갈 때도 세금을 낼 때도 진실을 못 보도록 눈을 가리는 세계란 말이지.

네오: 무슨 진실이요?

모피어스: 네가 노예라는 진실! 너도 다른 사람과 마찬가지로 모든 감각이 마비된 채 감옥에서 태어났지. 네 마음의 감옥. 불행히도 매트릭스가 뭔지 말할 순 없어. 직접 봐야만 해. 이게 마지막 기회다. 다시는 돌이킬 수 없어. 파란 약을 먹으면 여기서 모든 게 끝난다. 침대에서 깨어나 믿고 싶은 걸 믿게 돼. 빨간 약을 먹으면 여기 이상한 나라에 남아 끝까지 가게 된다.

 

 

 

 

네오는 스미스 일당에게 힘없이 잡혀갈 때보다는 훨씬 단단해진 눈빛으로, 이것은 정말 스스로의 선택이라는 굳은 표정으로 빨간 약을 삼킨다. 이제 모피어스의 알쏭달쏭한 수수께끼 같은 말의 의미가 밝혀질 차례다. 네오가 ‘1999으로만 알고 있었던 현재는 사실 ‘2199이었고, 그가 자신의 몸이라고 생각했던 육체는 사실 인공지능컴퓨터(AIartificial intelligence)가 만들어낸 정교한 환상이었다. 인간들은 태어나자마자 AI들이 만들어낸 인공 자궁안에 갇혀 AI의 생명 연장을 위한 에너지로 사용되고, 뇌세포에 매트릭스라는 프로그램을 입력 당한다. 그 프로그램이 바로 네오가 지금까지 현실로 철석같이 믿어왔던 ‘1999이었던 것이다. 그가 살아온 현실은 매트릭스가 조종하는 꿈이었던 것이다.

 

인간이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모든 것들은 항상 매트릭스의 검색 엔진에 노출되고, 인간의 기억 또한 매트릭스에 의해 자유자재로 입력되고 삭제된다. 맛있는 스테이크를 먹으며 황홀해 하는 기분마저 모두 스테이크맛이라는 황홀한 환상을 섭취하는 것이었다. 모피어스 일행은 이러한 끔찍한 매트릭스의 음모에서 벗어나 자유를 찾기 위해 싸우는 전사들이었다. 스미스일당은 바로 그 매트릭스를 지키는 AI 통제 요원들이었고 모피어스 일행이 스미스일당의 삼엄한 검색망을 뚫고 매트릭스 안에 들어가 드디어 찾아낸 사람이 바로 네오였던 것이다.

 

네오는 비로소 기나긴 에서 깨어나 매트릭스 바깥에서 사육되고 있는 인간의 비참한 몰골을 확인하게 된다. 그는 온몸에 구멍이 뚫린 채 매트릭스의 인큐베이터 안에서 사육 당하고 있었던 자신의 진짜 육체를 발견하고 경악한다. 네오 뿐 아니라 지구인 전체가 그런 처참한 몰골을 하고서 2199년의 현실은 전혀 모른 채 1999년을 꿈꾸며살아왔던 것이다. 이제 그는 매트릭스 속에서 가상의 죽음을 고통스럽게 경험하고 명실상부한 네오로 다시 태어난다. 이제 네오는 아직 한 번도 써본 적이 없는 진짜 육체를 쓸 수 있게 된 것이다.

 

 

 

 

모피어스: 이게 컨스트럭트. 로딩 프로그램이지 뭐든지 로드할 수 있어 옷이든 장비든 무기든, 훈련 시뮬레이션이든 필요한 건 전부 다!

네오: 우리가 지금 프로그램 안에 있는 거라고요?

모피어스: 그렇게 믿기가 힘든가? 자네 옷도 바뀌었고 머리와 몸의 구멍도 없어졌잖아. 머리 모양도 달라지고. 지금 자네의 모습은 잉여 자기 이미지란 거야. 자신의 모습을 디지털화한 거지.

네오: 그럼 진짜가 아닌가요?

모피어스: 진짜가 뭔데? 정의를 어떻게 내려? 촉각이나 후각, 미각, 시각을 뜻하는 거라면 진짜란 두뇌가 해석하는 전자 신호에 불과해. 이게 자네가 아는 세상이야. 바로 20세기 말의 모습이지. 이젠 신경 상호작용 시뮬레이션의 일부인 매트릭스로만 존재하지.

 

 

시간은 인간을, 사회를, 코스모스를 닳게 하였다. (……) 세계가 순수하고 강력하며 거룩한 시간에 멱 감았던 저 신화적 순간을 재현하기 위해서 세속적 시간은 소멸되어야만 한다. 세속적인 지나간 시간의 폐기는 일종의 세계의 종말을 나타내는 제의에 의하여 수행된다. 불의 사그라짐, 죽은 자들의 영혼의 복귀, (……) 사회적 혼란, 성적 방종, 광란 등등이 코스모스로부터 카오스에로의 퇴각을 상징한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70.

 

 

 

 

 

4.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간단히 비유를 해보자. 사방이 막힌 방에 내가 있다. 방안에 있는 한 대의 컴퓨터가 바깥세상을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자 다른 사람과의 대화 수단이라고 생각해보자. 그렇다면 누군가 모뎀의 선을 자르고 조작된 신호를 보낸다면 나는 그것을 믿을 수밖에 없게 된다. 그것이 바로 매트릭스다.

-노성래, 과학동아20026월호, 52.

 

 

모피어스는 지금까지 네오가 현실이라고 믿었던 모든 세계가 가상이었다고 선언한다. 그는 인류가 AI인공 지능 컴퓨터 제조 기술을 갖게 된 것에 스스로 경탄하면서 AI의 탄생을 자축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나 인간의 일을 대신해주는 AI에 지나치면 의존하게 되면서 AI와 인류 사이에 권력의 균형이 깨져버린다. AI와 인류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고 승리는 AI의 몫으로 돌아간다. 그 과정에서 인간은 태양력으로 움직이는 AI들을 위협하기 위해 태양을 없애버렸다. 그리고 인간에게 승리한 AI들은 인간을 일종의 건전지로 사용하여 자신들의 생명을 유지하게 된다. 인간은 태양을 없애버리면 AI들이 멸망할 것이라 믿었지만 태양이 없어지자 AI들은 태양에너지 대체제로서 인간의 육체를 사용했다. 인간은 대량 사육되어 AI들의 건전지로 이용되고, 2199년 현재 인류가 꾸는 이야말로 그들이 지금까지 현실이라 믿었던 유일한 세계(1999)였다.

 

 

 

 

모피어스: 인류는 생존을 위해 기계에 의존했어. 운명이란 모순적일 때가 많아. 인체는 120볼트 이상의 전기를 발생시키고 체열은 25BTU가 넘어. 인간들은 끝도 없이 널려 있잖아. 인간은 태어나는 게 아니라 사육되는 거지. 나도 오랫동안 믿지 못했어. 그러다가 직접 본 거야. 죽은 자를 액화시켜 산 자에게 주입하는 걸! 끔찍하리만치 정확한 기계들을 보면서 난 명백한 진실을 깨달았지.

네오: (어느새 얼굴이 밀랍인형처럼 딱딱하게 굳어진다) 그럼 도대체 매트릭스가 뭐지?

모피어스: 통제야. 매트릭스는 컴퓨터가 만든 꿈의 나라야. 우릴 통제하려는 거지. 인간을 그들의 에너지로 이용하려고.

네오: (이제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 아냐! 믿을 수 없어! 불가능해!

모피어스: 믿기 쉽다고는 안 했어. 진실이라고만 했지.

네오: 그만해! 나가고 싶어! 나가게 해줘!

 

 

 

 

네오는 구역질을 참지 못하며 실신해버린다. 그는 이곳(진짜 세계)에서 나가는 것이 곧 매트릭스 안에 갇히는 것이라는 참혹한 역설에 직면한다. 차라리 아무 것도 모르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환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훨씬 속 편하지 않았을까. 네오는 빨간 알약을 선택한 대가를 톡톡히 치르고 있는 셈이다. 세속의 세계는 안전하지만 무의미한 반복으로 점철되어 있고 신성의 세계는 의미로 가득 차 있지만 목숨을 거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자신이 살아온 세계가 모조리 허무한 환상일 뿐이라도 차라리 그 편안한 무지의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져버린 네오. “다시 돌아갈 순 없죠?” 모피어스는 미소 짓는다. “그래. 돌아갈 수 있다면 가겠나? 사과를 해야겠군. 규칙이 있지 일정한 나이가 될 때까진 이 얘길 안 해. 위험하니까. 받아들이질 못하거든. 그런 경우를 봤어, 미안해. 하지만 난 할 일을 한 거야.”

 

그 말 뒤에는 짜릿한 시험의 문턱이 숨어 있다. 모피어스의 속내는 네오가 정말 임을 시험하고 싶은 것이 아니었을까. 네가 받아들이지 못해 죽을 수도 있지. 하지만 네가 정말 라면 넌 견딜 수 있을 거야. 네가 진정 선택된 자라면, 그리고 그 선택된 운명을 네가 받아들인다면, 넌 그 정도 괴로움 따윈 거뜬히 이겨내겠지. 넌 다시 태어나야해. 지금까지 매트릭스의 명령체계 속에서 배우고 느꼈던 모든 것을 지워야 해. 네가 실패할지도 모른다는 부담감까지, 네가 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까지, 모두 지워버려야 해.

 

 

모피어스: 매트릭스가 건설될 때 그 안에서 태어난 자가 있었지. 그는 원하는 대로 세상을 바꿀 수 있어. 매트릭스를 합당하게 바꾸는 거였지. 그는 맨 처음 우릴 해방시켜 주고 가르쳤지. 매트릭스가 존재하는 한 인류는 자유를 얻지 못해. 그가 죽은 후 오라클은 그의 재림을 예언했지. 그가 매트릭스를 파멸시키고 전쟁을 종식시킴으로써 인류를 구원할 거라고. 그래서 우린 평생 동안 매트릭스에서 그를 찾았지. 그를 찾았다고 믿었기에. 난 내 할 일을 한 거야. 푹 쉬어. 휴식이 필요할 거야.

네오: 뭘 위해서요?

모피어스: 훈련을 위해서!

 

 

 

 

모피어스의 간절한 염원에도 불구하고 네오의 마음에는 끊임없는 의심과 불안이 꿈틀거린다. 그럴 리 없어. 모두가 거짓이야. 예언이라니, 계시라니. 그런 건 다 신화에나 나오는 이야기야. 모피어스가 전해주는 오라클의 계시를 믿지 않으려는 네오의 마음. 그것은 세속적인 삶에 대한 미련이기도 하고 신성한 세계의 일원으로서 참여해야 한다는 압박감이기도 하다. 막상 세속의 삶(파란 약)을 잊어버리려니 그 편안함과 익숙함이 발목을 잡는 것이다. 게다가 내가 가 아니면 어쩔 것인가. 그들의 실망을, 아니 나 자신의 절망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 차라리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사는 것이 낫지 않았을까.

 

모피어스 일행 중 사이퍼의 존재가 바로 이 세속을 향한 미련을 대변하는 존재다. 그는 세속의 열망에 찌들어 신성의 가치를 완전히 망각한 존재다. 그는 모두의 관심과 보살핌을 받으며 어리둥절해하고 있는 애송이 네오를 질투한다. 네오가 충격의 여파로 며칠 동안 잠에 빠져 있을 때 네오의 잠든 얼굴 위로 쏟아지는 트리니티의 따스한 눈길. 아직은 그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의심이 남아 있지만 제발 네가 이기를 바라는 트리니티의 시선이야말로 사이퍼를 더욱 자극한다. 저 아름다운 눈빛이 내 것일 수 있었는데. 사이퍼가 질투로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네오를 바라보는 동안 네오는 진정한 부활을 꿈꾸고 있다. 죽음의 고통을 통과한 새로운 삶이야말로 부활의 청신호일 것이다.

 

 

한 해의 마지막 날에 우주는 태초의 물에로 용해된다. (……) 1년 내내 존재하였던 세계가 진정으로 사라진다. (……) 한 해의 모든 죄, 시간이 더럽히고 닳게 만든 모든 것은 무화된다. 세계의 무화와 재창조에 상징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인간 역시 새롭게 창조된다. (……) 새해가 올 때마다 인간은 그의 죄와 실패의 짐으로부터 벗어남으로써 더 자유롭고 더 순수해졌다는 느낌을 가진다. 그는 천지창조의 신화적인 시간, 따라서 거룩하고 강력한 시간에 다시 돌아간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70~71.

 

 

 

 

 

5. 내가 정말 일까?

 

 

무의미는 삶의 충만함을 저해하기 때문에 질병과 같은 것이다. 의미는 우리로 하여금 대단히 많은 것들을 어쩌면 모든 것을 견디게 한다. 과학은 결코 신화를 대신하지 못하며 그 어떤 과학으로도 신화는 만들어질 수 없다.

-칼 구스타프 융

 

 

매트릭스의 네오처럼 드라마틱한 부활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사실 인생의 곳곳에서 자기만의 사적 부활을 꿈꾼다. 일 년의 끝과 새로운 일 년의 시작을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를 그저 TV를 통해서만 들어도 왠지 마음이 한껏 정화되는 느낌. 비록 작심삼일(作心三日)에 그칠지라도 저마다 스스로와의 소중한 약속을 시작하는 시간. 왠지 술 담배도 끊고 아침운동도 다시 시작하고 인생의 모든 것을 총체적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을 것 같은, 보통 사람들의 소중한 환희. 우리는 새해가 시작될 때마다 그렇게 짜릿한 영혼의 부활을 꿈꾼다.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꼬물거리는 갓난아기를 보는 순간 느끼는,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신비로운 생의 시작처럼. 네오는 지금 마치 2199년에 재림한 사이버-예수처럼 그렇게 다시 태어나고 있다.

 

 

탱크: 안녕, 잘 잤어?

네오: (매트릭스와 연결된 몸의 구멍이 보이지 않는 탱크의 목뒤를 보며) 넌 구멍이 없…….

탱크: 그래, 난 구멍이 없어. 나와 도저 형은 진짜 세상에서 100% 구식으로 자유롭게 태어난 시온의 자녀거든.

네오: 시온?

탱크: 만약 전쟁이 끝난다면 파티가 열릴 곳이지.

: 시온은 도시야?

탱크: 마지막 남은 인간의 도시지.

네오: 어디 있는데?

탱크: (꿈꾸는 듯한 표정으로) 아직도 따뜻한 지구의 중심부에 있어. 우리가 오래 살면 갈 수도 있겠지. 젠장! 모피어스가 맞다면 네 능력을 정말 보고 싶어. 이런 얘길 하면 안 되지만, 정말 네가 라면, 정말 그렇다면……. 정말 신나는 거지!

 

 

가장 거룩한 자는 세계를 태아와 같이 창조한다. 태아가 배꼽 부위에서부터 성장해 가듯이, 신은 배꼽에서부터 세계를 창조하기 시작하며, 거기서부터 그것은 모든 방향으로 퍼져나간다. 그리고 대지의 배꼽, 즉 세계의 중심은 거룩한 나라이기 때문에, 요마(yoma)세계의 창조는 시온에서 시작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40.

 

 

 

 

탱크가 느끼는 시온을 향한 감정은 세계의 중심에 대한 노스탤지어다. 이 혹독한 전쟁이 끝나면 우리가 파티를 열 장소, 시온. 그곳은 2199년 매트릭스와 싸우는 전사들의 마음속에 살아 숨 쉬는 영혼의 베이스캠프이기도 하다. 네오에게도 이제 매트릭스라는 강요된 고향이 아니라 시온이라는 새로운 그리움의 거처가 생긴 것이다. 아직은 낯설고 아직은 이해하기 어렵지만, ‘시온이라는 단어를 듣는 순간 네오의 표정은 호기심으로 빛난다. 마지막 남은 인간의 도시? 매트릭스의 시스템과 상관없이 자연산인간으로만 이루어진 도시라니! 나도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이 사람들과 함께 그곳에 갈 수 있을까. 내가 정말 일까.

 

그러나 아직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은 이르다. 모피어스는 네오가 임을 확인하기 위한 갖가지 미션을 준비한다. 첫 번째 훈련. 그것은 스파링 프로그램이다. 각종 무술과 담력을 훈련하면서 동시에 시험하는 가상 프로그램 속에서 네오는 단시간 내에 엄청난 무공을 쌓아올리게 된다. 유도, 태권도, 취권, 쿵푸 등 각종 무술을 연마하며 네오는 어느새 모피어스에게 도전하게 된다.

 

 

네오: (스스로의 능력에 감탄한 눈빛으로) 이제 쿵푸를 할 줄 알아요!

모피어스: 보여줘 봐. 이건 스파링 프로그램이지. 매트릭스 프로그램의 현실과 비슷해. (네오의 현란한 액션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좋아! 적응력, 순발력 모두 좋아. 하지만 문제는 기술이 아냐. (정말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쏘는 동작으로, 자기만족에 흠뻑 취해 있는 네오를 가볍게 제압해버리며 살짝 미소 짓는다.) 이봐, 방금 내가 어떻게 이겼지?

네오: (얼떨떨한 표정으로) 당신이 너무 빨라서요.

모피어스: 내가 빠르거나 힘이 센 게 내 근육 탓일까? 여기서? 네가 지금 공기를 마신다고 생각해? 다시 해봐!

네오: (네오는 이곳이 가상의 스파링 프로그램 안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고 다시 동작을 시작한다)

모피어스: 생각하지 말고 인식을 해! 때리려고만 하지 말고 진짜로 때려!

네오: (이제야 뭔가 깨달았다는 듯) 당신이 뭘 하려는 건지 알아요.

모피어스: 그래. 네 마음을 풀어주는 거야. 나는 문까지만 안내할 수 있지. 그 문을 나가는 건 네가 직접 해야 돼. 모든 걸 버려. 두려움, 의심, 불신까지. 마음을 열어.

 

 

 

 

시온에서 기독교 신화를 떠올렸던 관객은 모든 걸 버려, 마음을 열어!’라고 외치며 동양의 무술을 가르치는 모피어스를 보며 장자(莊子)를 떠올렸을 것이다. 무술을 기술의 연마로 생각했던 네오가 드디어 가상과 현실을 벽을 뚫고, 타자와 자신 사이에 놓인 소통의 장벽을 넘어, 새로운 경지에 오르는 순간. 그는 장자가 말했던 허심(虛心)’의 경지를 터득한 셈이다. 장자의 말처럼 타자와의 소통은 날개 없이 나는 법[以無翼飛]’을 배우는 것이며, 지금까지 신주단지처럼 모시고 살았던 친숙한 세계를 버리고 트임을 위한 소통의 공간을 창조하는 것이다. 채움을 위한 비움이 아니라, 트임을 위한 비움. 정보와 지식으로 내 영혼을 가득 채우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온전히 비워 네가 자유로이 드나들 존재의 틈새를 만드는 것이다.

 

 

 

 

 

6. 매트릭스에 갇히길 희망하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신화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들 자신이 바로 그 신화의 그늘 속에 살고 있고 우리 모두가 진리의 찬란한 빛으로부터 뒷걸음질 치는 탓에 그것을 감지하지 못할 따름이다.

-막스 뮐러

 

 

네오가 뛰어넘어야 할 과제는 매트릭스 안에서 지금까지 가져온 시공간의 감각절대적이고 유일하다라는 편견을 뛰어넘는 것이다. 그는 지금까지 매트릭스의 가상 속에서 그것만이 유일한 실재라고 믿고 살아왔기에 모피어스가 제공하는 훈련 공간을 그저 가상일뿐이야라고 느낀다. 모피어스 때리려고만 하지 말고 진짜로 때려!”라고 말한다. 아무런 의심 없이 믿고 살았던 매트릭스가 2199년의 인류에게 유일한 현실이었듯이, 지금 네오가 훈련하고 있는 가상공간이야말로 네오가 일굴 새로운 현실로 거듭난 것이다. 그는 이렇게 평생 매트릭스로 훈육된 시공간의 법칙을 스스로 깨뜨린다. 피와 살과 뼈로 이루어진 진짜 육체로 싸움을 시작한 것이다. 이제 그는 가상의 매트릭스 안에 있을 때조차도 진정한 육체를, 진정한 영혼을 아우를 수 있게 된 것이다.

 

 

 

 

지금까지 차곡차곡 쌓아온 모든 감정의 짐짝들을 하나하나 내려놓으며 네오는 조금씩 매트릭스의 중력의 법칙으로부터 자유로워진다. 모피어스에 대한 의심도, 트리니티에 대한 궁금증도, 오라클의 예언에 대한 불안도, 그는 조금씩 내려놓는다. 내가 가 아닐지로 모른다는 불안까지도, 다시 매트릭스로 돌아가고 싶다는 마지막 미련까지도 내려놓는 순간. 그는 드디어 철벽같은 모피어스의 방어를 뚫고 공격에 성공한다. 이 회심의 일격은 모피어스를 해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모피어스와 네오 사이에 놓인 의심과 불안의 장벽을 뛰어넘는 아름다운 소통의 첫걸음이었다.

 

 

나와 타자 사이에 혀를 날름거리는 심연을 건너기 위해 무엇보다 먼저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짐을 버려서 가벼움을 확보해야만 한다. (……) 타자와의 소통은 날개 없이 나는 방법이다. 마음을 비운다는 것, 친숙한 세계를 버린다는 것은 내가 가진 거의 모든 것을 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존의 선입견, 무의식적인 행동을 그 뿌리에서부터 제거해야 한다는 장자의 권고는 마치 새에게 날개를 버리라고 권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심각한 것이다. 그러나 장자가 보았을 때 과거와의 이런 단절이 없다면 우리는 친숙한 세계에 영원히 포획되어 새로운 삶을 생성할 수 없게 될 것이다. (……) 그래서 장자는 마음을 비우려고 하였고, 공자는 사사로운 뜻, 고착됨, 사적인 자의식을 제거하려고 하였으며, 불교도 자아의 동일성을 비우려고 하였던 것이다.

-강신주 외, 21세기의 동양철학, 을유문화사, 2005, 366~368.

 

 

네오와 모피어스의 멋진 한판승부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조금씩 네오에 대한 기대에 부풀어 오른다. 네오를 질투하면서도 의심하는 사이퍼의 눈빛은 점점 차가워지고, 네오에 대해 누구보다도 골똘히 생각하는 듯한 트리니티의 눈빛은 점점 깊어진다. 잠든 네오에게 음식을 가져다주며 극진히 보살피는 트리니티를 바라보는 사이퍼의 눈빛에는 서슬 퍼런 살기가 감돈다. “나한테는 한 번도 안 그러더니. 그가 특별하긴 한가 보군? 정말 네오를 라고 믿는다면 왜 오라클한테 안 데려가?” 트리니티는 동요하지 않고 대답한다. “준비가 되면 가겠지.”

 

 

 

 

언제쯤이면 예언자 오라클에게 네오가 임을 확인받으러 갈 수 있을까. 아직 모피어스는 침착하게 네오의 몸과 마음을 수련시키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그리고 모피어스는 네오에게 매트릭스에게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네오가 유일한 현실이라 믿고 살았던 1999년의 지구. 그들은 변함없이 지금은 1999이라는 매트릭스의 달력을 믿고 있을 것이다. 네오는 마치 유체이탈을 하여 과거의 자신을 바라보듯 애잔한 눈길로, 매트릭스에 갇혀 있는 지구인들을 바라본다.

 

 

모피어스: 매트릭스는 시스템이야. 그 시스템이 우리의 적이다. 둘러보면 뭐가 보이나? 사업가, 교사, 변호사, 목수……. 우리가 구하려는 사람들의 마음이지. 하지만 그들도 시스템의 일부니까 우리의 적이지. 이들 대부분은 아직 떠날 준비가 안 돼 있어. 그들은 너무나도 시스템에 잘 길들여져서 시스템을 보호하려고 하지. (……) 누구나 요원일 수 있어. 우린 그들로부터 도망치면서 살아남았지. 하지만 그들은 문지기야. 그들이 열쇠를 쥐고 있다. 그러니까 누군가가 그들과 싸워야 한다는 거지.

네오: 누군가가?

모피어스: 거짓말은 안 하겠다. 그들과 싸웠던 자들 중에 아직 살아남은 자가 없어. 하지만 자넨 성공할 거야.

네오: 왜죠?

모피어스: 요원은 콘크리트 벽을 부술 수도 있고 총알을 퍼부어대도 우습게 피하지만 그들의 힘과 스피트는 매트릭스 안에서 제한되지. 그렇기 때문에 절대로 너를 능가할 순 없어.

네오: 그럼 나도 총알 피할 수 있나요?

모피어스: 아니, 네가 준비가 돼 있다면 굳이 피할 필요도 없어.

 

 

단지 영화 속 매트릭스 안의 인간들만이 매트릭스라는 시스템을 잘 알지도 못하면서지키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현재의 삶만을 절대화하는 모든 힘들, 과학과 논리의 힘만을 신봉하는 지식의 흐름들, 달력으로 표시될 수 있는 역사적 시간만을 신뢰하는 이성의 근시안. 통장의 입출금내역과 스펙 쌓기에만 골몰하게 만드는 도시인의 일상적 시스템 자체가 또 하나의 거대한 매트릭스가 아닐까. 우리는 지금 이 삶이 너무 싫다고 불평하면서도 정작 다른 삶의 기회가 오면 뒤로 흠칫 물러선다. 지금까지 이 삶에 적응하기도 바빴는데 또 다른 삶의 모험에 뛰어들기가 두려운 것이다. 이미 여러 번의 기회를 놓친 적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단지 미몽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미몽 자체가 유일한 현실이 되어버린다. 그 꿈에서 깨어난다면 너무 괴로울 테니, 아예 깨어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이런 상태라면 사이퍼의 말처럼 모르는 게 약이고, 무지야말로 신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네오에 대한 질투로 불타는 사이퍼는 의 세계로 떠나 고통 받느니 차라리 의 세계에서 영원히 안주하고자 한다. 성공하고 싶다고, 영화배우처럼 유명해지고 싶다고, 돈을 왕창 벌고 싶다고. 그러니 매트릭스에 다시 꽂아만달라고, 그는 스미스 요원에게 청탁을 한다. 매트릭스라는 미몽으로 다시 돌아갈 수만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비종교적인간의 대다수는, 비록 그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을 때조차도 여전히 종교적으로 행동하고 있다. (……) 자기가 비종교적이라고 느끼며, 그렇게 주장하는 근대인들도 여전히 수많은 은폐된 신화와 변질될 제의를 유지시키고 있는 것이다. (……) 새해를 맞이할 때나 새 집에 살게 될 때에 수반되는 축제는 비록 속화되기는 했을망정 여전히 갱신의 제의 구조를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결혼, 아기의 탄생, 새 지위의 획득, 사회적 진출 기타 등등에 따르는 잔치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관찰된다. (……) ‘꿈의 공장이라고 하는 영화는 무수한 신화적 모티프들을 채용해서 써먹는다. 영웅과 괴물의 싸움, 입사의 투쟁과 시련, 모범적인 인물들과 이미지들(처녀, 영웅, 낙원의 풍경, 지옥 기타 등등)이 다 그러하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182.

 

 

 

 

 

7. 오라클의 시험: 미안하지만, 너는 가 아니야

 

 

신과 인간은 무엇이 다른가?

수없이 밀려드는 파도가

신들 앞에서는

영원의 물결로 변하지만

우리는 그 파도에 떠밀려 올라가고

휩쓸려 다니다가

결국 침몰하고 만다네

-괴테

 

 

엘리아데는 도시인들 대부분의 삶이 오직 경제적 타깃에만 집중되어 있다고 꼬집어 말한다. 마치 진화된 인류는 비과학적인 신화 따위엔 관심을 끊어야 한다는 듯 이성 지상주의적인 교육이 판을 쳐왔다. 그러나 신화의 힘을 믿는 종족을 원시적이고 야만적이라고 비난하는 문명인의 교육이야말로 우주적 시간에 대한 책임을 방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를 둘러싼 매트릭스는 무엇인가. 우리가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을 조금이라도 방해하는 힘이 있다면, 그 모든 것이 매트릭스의 회로가 아닐까. 우리가 스스로 창조해야 할 새로운 신화를 방해하는 모든 집착과 강요가 우리 안의 매트릭스를 오늘도 열심히 가동시키고 있는 중이다.

 

 

세속적 존재의 시각에서 볼 때 인간은 그 자신과 그의 사회에 대한 책임 이외에는 어떤 책임도 느끼지 않는다. (……) 근대인의 커다란 관심사는 지구의 경제적 자원을 어리석게 고갈시키는 짓을 피하는 데 쏠려 있는 것이다. 그러나 실존적으로 원시인은 언제나 그 자신은 우주적 맥락 속에 던진다. 그의 개인적 경험은 진정성도, 깊이도 결여하고 있지 않다. 다만 그것을 표현하는 언어가 우리에게 친숙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것은 근대인의 눈에는 거짓되고 유치한 것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83.

 

 

사이퍼: 자네 생각을 알아. 나도 같은 생각이니까. 난 항상 그 생각뿐이지. 빨간 약이 아니라 파란 약을 먹을걸. 너도 그렇지?

네오: (살짝 미소 짓지만 이제 더 이상 파란 약을 선택하지 않은 자신의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 듯한 표정이다.)

사이퍼: 얼마나 부담스러워? 세상을 구해야 한다니! 충고 한마디 하지. 매트릭스의 요원을 보면 나처럼 해. 죽어라고 도망치라고.

 

 

지금 여기 보이는 삶 너머로 다른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믿을 수 없는 사이퍼. 그는 세속적인 가치 이외에는 어떤 것도 믿지 않게 되어버렸기에, 지금까지 그들 모두를 지켜온 믿음직한 수장 모피어스를 스미스에게 팔아넘긴다. 저항운동의 본거지인 시온의 메인프레임 접근 코드를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 모피어스를 스미스에게 넘기는 조건으로. 사이퍼의 눈에는 네오가 우리의 운명을 바꿀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세상을 구해야 한다는, 그 거대한 책임을 혼자 떠안아야 할 불쌍한 인간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것이다.

 

 

 

 

네오는 자신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낯설고 불확실하지만 이제 모피어스와 트리니티의 진심 어린 눈빛을 믿기로 한 눈치다. 아직 내가 바로 그다라는 확신은 없지만, 적어도 사이퍼의 유혹만큼은 달갑지 않다. ‘당신처럼은 되고 싶지 않아라는 듯 안타깝게 빛나는 네오의 눈빛에는 이제 지금-여기 너머의 새로운 삶에 대한 꿈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사이퍼가 잔인한 배반을 준비하고 있는 동안 네오는 드디어 준비가 되었다. 내가 정말 라는 것을 확인할 준비. ‘오라클의 계시네오의 존재’, 그 수수께끼의 퍼즐을 맞출 준비.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네오를 오라클에게로 데려간다. 여신의 치렁치렁한 드레스자락을 휘날리며 머리 뒤로 광배를 드리우고 있을 것만 같은 예언자 오라클의 모습을 상상했던 관객들은 오라클의 너무나도 평범한 모습에 놀란다. 어디서나 마주칠 수 있을 것 같은 푸근한 아낙네 같은 오라클의 모습. 오라클의 카리스마는 그래서 더더욱 따스한 빛을 발한다.

 

 

 

 

오라클: (자신의 모습을 보고 당황한 네오를 바라보며 살짝 미소 짓는다) 예상과는 많이 다르지? (오븐에서 익어가고 있는 쿠키를 바라보며) 거의 다됐어. 냄새가 참 좋지?

네오: (얼떨떨한 표정으로) .

오라클: (……) 넌 생각보다 귀엽구나. 그녀가 좋아할 만해.

네오: 누가요?

오라클: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다지 똑똑하진 않구나. 왜 나한테 왔는지는 알지? 어떻게 생각해? 너 자신이 라고 생각해?

네오: 솔직히 모르겠어요.

오라클: 한 가지 비밀을 알려주지. ‘라는 존재는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아. 아무도 알 수 없고 자신만이 알아. 온몸으로 아는 거지. 그럼 어디 한번 볼까? 입을 벌려봐, 네오. 좋아. ‘흥미롭군이라고 말해야겠지만, 하지만…….

네오: 하지만, 뭔가요?

오라클: 자넨 이미 알고 있어.

네오: (더없이 실망한 눈빛으로) 가 아니군요.

오라클: 미안하다. 넌 재능이 있지만 뭔가를 기다리고 있어.

(……)

네오: (쓸쓸히 웃으며) 모피어스한테 거의 설득됐었거든요.

오라클: 불쌍한 모피어스. 그가 없으면 우린 안 돼.

네오: ‘그가 없으면이라뇨?

오라클: 정말 알고 싶나? 모피어스는 네가 라고 믿어. 너도 나도 아무도 그를 설득할 순 없어. 널 위해 목숨을 버릴 만큼 그는 눈이 멀었어. 넌 선택을 해야 돼. 모피어스의 목숨과 네 목숨 중에서 말이야. 둘 중 하나는 죽는다. 그건 네 손에 달렸어.

 

 

내가 가 아니라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피어스는 내가 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는데, 그의 기대를 저버리면 어떻게 될까. 난 이제 매트릭스로 돌아갈 수도 없는데, 내가 가 아니라면 도대체 여기 머물러야 할 이유가 뭐지? 매트릭스의 편안한 세계에 대한 미련, 그리고 내가 정말 이 엄청난 미션을 감당할 수 있을까 하는 공포. 오라클은 네오가 아직 버리지 못한 이 미련과 공포를 진정으로 떨쳐내게 하기 위하여 그것과 정면으로 맞서게 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오라클은 그의 마음속에서 가 되기 위해 넘어야 할 마지막 문턱을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오라클은 너는 그가 아니야라고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았다. 물론 네가 바로 그야라고 확실하게 말하지도 않았다. 오라클은 단지 너를 만드는 것은 너 자신임을 일깨운다. 내가 임을 믿는 것은 사랑에 빠지는 것처럼 아찔한 것, 그리고 자신의 모든 것을 던져야 하는 엄청난 일임을 암시할 뿐이다. 답을 저 멀리 바깥에서 구하지 마. 언제나 그렇듯 답은 네 안에 있어. 다만 그 답을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는가, 그게 관건이지. 네 마음을 찬찬히 만져보렴. 너만이 느낄 수 있는 그 은밀한 해답의 질감이 느껴지는가.

 

 

폴 리쾨르에 따르면 실존의 두 기둥이란, ‘쾌락의 달성을 목표로 하는 생명의 기둥행복을 목적으로 하는 정신의 기둥이다. 리쾨르에게 있어 의미 있는 인생이란 이 두 기둥이 하나로 합쳐서 서로 밑거름이 되어주는 그런 인생이다. 의미 있는 인생을 추구한다는 것은 대립되는 이 두 요소를 파악해 통합을 이루어내는 것이다. 리쾨르가 그러한 필연적인 통합이 이미 이루어져 있는 것으로 믿은 인간의 기능은 바로 느낄 수 있는 능력(feeling)’이었다. 신화는 이 느낌들의 기록이다. 신화는 자신들의 실존적 모순을 해결하려고 몸부림쳤던 인간적 시도의 기록이며, 그 해결의 살아 있는 도구였다.

-비얼레인, 배경화 역, 살아 있는 신화, 세종서적, 319.

 

 

 

 

 

8. 오라클의 모호한 화법과 엄청난 미션

 

 

어둠은 아직 발현되지 않은 빛이다.

-엘리아데

 

 

오라클은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거나 단정하지 않는다. 그녀는 네오에게 결국 네 인생의 큰 그림을 그리는 것은 네 자신이라고, 너의 신화를 만드는 것 또한 너의 힘이라고 암시한 것이 아닐까. 오라클이나 트리니티나 모피어스가 아니라, 그 누구도 아닌 네 스스로가 임을 믿어야 한다는 것을 암시한 것이 아닐까. 네오 스스로가 에게 마치 사랑에 빠지듯 완전히 몰입할 때, 그는 운명의 문턱을 넘을 것이라고 말이다. ‘이다/아니다라는 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 오라클의 모호한 화법에 네오는 엄청난 혼란을 느낀다. 게다가 그녀는 내가 과연 인지 아닌지 헷갈려 미칠 지경인 네오에게 또 다른 엄청난 미션을 선물하기까지 한다. 너의 목숨과 모피어스의 목숨 둘 중 하나를 선택하는 순간이 올 것이라고.

 

 

 

 

모피어스와 네오 일행이 매트릭스에 잠입하여 활동을 개시하려는 동안, 사이퍼는 그들이 매트릭스로부터 현실로 빠져나오는 출구를 봉쇄해버린다. 드디어 사이퍼는 모피어스를 스미스일당에게 넘기려 하는 것이다. 그는 모피어스를 처치하기 위해 다른 요원들까지 살해하고 트리니티에게 전화를 걸어 그녀를 협박한다. 이제 너도, 네오도, 모피어스도 끝이라고. 더 이상 나는 매트릭스 바깥, 이 날것의 현실 속에서 공포와 불안을 견디며 살아가고 싶지 않다고. 나에게는 매트릭스라는 완벽한 가상이 훨씬 안전하고 매혹적인 현실 같다고. 이제 네오가 라는 환상 따위는 집어 치우라고.

 

 

사이퍼: 난 오래 전부터 널 사랑한다고 생각했어. 네 꿈을 꾸곤 했지. (매트릭스 바깥에 분리되어 있는 트리니티의 잠든 얼굴을 바라보며) 넌 아름다운 여자야. 이렇게 돼서 유감이야.

트리니티: 동료들을 네가 죽였구나.

사이퍼: 하하, 그래. 난 지쳤어. 전쟁도 싸우는 것도 지겨워. 여기도 지긋지긋하고 추운 것도 지겹고 맛없는 죽만 먹어대는 식사도 지겨워. 하지만 무엇보다도 모피어스 놈이 지겨워. (이번에는 모피어스의 몸 위로 올라타며 잠든 그의 멱살을 잡고) 놀랬지, 이놈아? 이렇게 될 줄은 몰랐지? 네 놈이 뒈지는 걸 봐야 하는데. 네 놈이 죽기 직전에 가서 내가 배신했다는 걸 보여 주는 건데.

트리니티: 모피어스를 노린 거였군.

사이퍼: 맞았어. 놈은 우릴 속였어. 속였다고! 네가 사실대로 말했으면 빨간 약은 안 먹었잖아! (……)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매트릭스를 선택하겠어.

트리니티: 매트릭스는 가짜야.

사이퍼: 그렇지 않아. 난 매트릭스가 이 세상보다 더 진짜 같다고 생각해. 여기서 플러그만 뽑으면 에이팍은 죽게 되지. (에이팍의 몸과 매트릭스가 연결된 코드를 뽑아버려 그녀 또한 즉사한다. 그는 이제 네오의 코드를 뽑아버리려 한다.) 모피어스의 말이 맞다면 난 플러그를 뽑을 수 없어. 만약 네오가 라면 그를 죽이는 건 불가능하니까. 맞지? 죽으면 가 아닌 거지. 넌 모피어스의 말을 정말 믿어? ‘, 아니오로만 대답해. 그의 눈을 쳐다봐. 커다랗게 아름다운 그 눈을 말이야. 그리고 대답해 봐.

트리니티: (얼굴이 하얗게 질린 채로, 그러나 차분하게 대답한다.) 난 네오를 믿어.

사이퍼: 난 안 믿어! 믿든 안 믿든 네오 너는 바비큐가 될 거다!

 

 

 

 

사이퍼가 잔인한 미소를 띠며 신이 나서 네오를 죽이려 하는 순간 죽은 줄 알았던 탱크가 일어나 사이퍼를 처치한다. 그렇게 네오와 트리니티, 모피어스와 탱크만이 살아남는다. 한편 매트릭스의 수문장 스미스는 모피어스를 납치하여 고문하는 중이다. 그는 모피어스로부터 시온의 메인 컴퓨터 접근 코드를 알아내려 한다. ‘시온을 파괴하여 매트릭스에 저항하는 모든 반란세력들을 일시에 제거해버리려는 속셈이다. 스미스는 매트릭스가 구현해낸 안락한 미래를 예찬하며 이 아름다운 미래는 너희 원시 종족들의 것이 아니라 우리 진화된 존재들(인공지능컴퓨터)’의 것이라고 말한다.

 

 

스미스: 수십억 인간들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지. 태평하게 말이야. 첫 번째 매트릭스는 원래 완벽한 인간 세상이었지. 고통이 없는 세상이었어. 그런데 비극이 됐지. 인간들에게 매트릭스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인간들은 수없이 죽어나갔어. 어떤 이들은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지. 내 생각에는, 인간들은 고통을 통해서 현실을 인지하는 것 같아. 너희 원시적인 두뇌들은 자꾸 깨어나려고 했지. 그래서 매트릭스가 다시 태어나게 된 거야. 너희 문명의 절정이지. 사실 너희 문명은 아냐. 우리가 맡은 이후로는 우리의 문명이 됐으니까. 진화야, 모피어스! 진화라고! 공룡처럼 말이야. 창밖을 봐. 미래는 우리 세상이야 미래는 우리 거라고.

 

 

스미스가 모피어스를 고문하며 시온의 접근 코드를 알아내려 하는 동안 매트릭스 바깥의 현실에서 네오와 트리니티는 탱크와 함께 모피어스의 안부를 걱정한다. 매트릭스 내부의 가상현실 속에서 모피어스는 자신의 두뇌를 스미스 일당들에게 해킹당하기 일보직전이고, 매트릭스 외부의 진짜 현실 속에서 모피어스는 식은땀을 흘리며 고통을 견디고 있다. 모피어스는 강인한 정신력으로 간신히 고문을 버티고 있지만, 탱크와 트리니티는 이제 시온의 출구가 뚫리는 것은 시간문제임을 알게 된다. 탱크는 이제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요원들이 컴퓨터에 들어가면 시온은 끝장이야. 그렇게 할 순 없지. 시온은 너나 나나 모피어스보다 중요해.” 절박해진 네오는 무슨 방법이 없냐고 묻는다. 탱크는 절망적인 얼굴로 체념하듯 말한다. “플러그를 뽑으면 돼. 선택의 여지가 없어.” 매트릭스와 모피어스를 연결하고 있는 플러그를 뽑으면 모피어스는 죽게 된다. 네오는 비로소 오라클의 예언이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피어스와 나의 목숨,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고. 그 순간이 이렇게 빨리 찾아오다니.

 

 

인간은 누구나 고립되고 분리되었다고 느낀다. 하지만 그 분리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를 완벽하게 의식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왜냐하면 자신과는 완전히 다른, 아주 강한 그 무엇으로 떨어져 나왔다는 것을 느낄 뿐이기 때문이다. 또한 시간 속에 위치시킬 수도 없고 정의할 수도 없으며 정확하게 기억할 수는 없지만 자신의 존재 깊은 곳에 기억을 간직하고 있는, 그런 옛날의 어떤 상태로부터 분리되었다는 것만을 느끼기 때문이다. 그것은 시간도 역사도 존재하기 이전의 원초적인 상태를 말한다. 그는 자신으로부터 세계로부터 단절되었다고 느낀다. (……) 수많은 신앙은 실낙원에 대한 향수를 드러내고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상반된 요소들이 대립 없이 공존하고, 다양성이 신비로운 통일성의 여러 가지 측면을 구성하고 있는 그런 천국의 모순적인 상태에 대한 향수를 느끼는 것이다.

-엘리아데, 최건원·임왕준 역,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문학동네, 2006, 158.

 

 

 

 

 

9. “미안해, 넌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VS “아니, 너는 비범함이야.”

 

 

두려워하지 마라! 그대는 이미 피와 살로 된 육신을 가지고 있지 않다. 어떠한 소리나 빛이나 광선도 그대에게 해를 입힐 수 없나니. 그대는 죽을 수 없다.

-티벳 사자의 서중에서

 

 

살아남은 요원들은 그들의 마지막 희망 시온을 지키기 위해 모피어스를 포기하기로 한다. 시온은 모피어스나 트리니티나 보다 중요하니까. 잔인하지만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 판단하며 탱크를 말리지 못하는 트리니티. 탱크는 모피어스를 저 세상으로 보내기 위해 코드를 뽑으려 한다. “당신은 리더 그 이상이었죠. 우리의 아버지였어요. 잊지 않을게요.” 자신의 목숨과 모피어스의 목숨 중에서 선택을 해야 한다는 오라클의 예언. 그 때문에 미칠 듯이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괴로워하던 네오는 버럭 고함을 지른다. ‘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소심하고 자신 없던 네오가 처음으로 강력한 카리스마를 발휘하는 순간이다. “잠깐! 어떻게 이럴 수 있어?” 네오는 자신이 매트릭스로 직접 들어가서 모피어스를 구해오겠다고 말한다. 놀란 트리니티는 네오를 설득한다. “모피어스는 널 위해서 잡힌 거야. 절대로 가면 안 돼.”

 

 

 

 

네오는 모피어스가 자신을 잘못알고 그렇게 한 거라고 말한다. 나는 너희들이 그토록 기다리던 가 아니라고. 미안해, 난 그냥 평범한 사람이야. 그러니깐 내가 아니라 모피어스를 구해야 해. 네오는 굳이 선택을 해야 한다면 자신이 아니라 모피어스의 생명을 구해야 한다는 말을 조용히 삼킨다. 모피어스를 철통같이 지키는 스미스 일당들을 도저히 이길 수 없다고, 이건 자살 행위라며 네오를 만류하는 탱크. 그런데 네오는 눈빛에서 전에 없던 단단한 광채가 서리기 시작한다.

 

미친 짓처럼 보이겠지만 그렇지 않아. 그 이유는 설명할 수가 없어. 이제야 모피어스가 왜 목숨까지 바치면서 믿었는지 알겠어. 그래서 가야만 해.” 그는 모피어스가 왜 그토록 를 찾고 싶어 했는지, 모피어스가 왜 일생을 걸고 매트릭스에 그토록 힘겹게 저항해왔는지를 비로소 깨달은 얼굴이다. 왜 가야만 하냐고 묻는 친구들에게 그는 말한다. “나도 이제 믿으니까. 그를 살릴 수 있다는 걸.”

 

네오와 모피어스와 트리니티는 각기 조금씩 엇갈리는 믿음을 갖고 있다. 모피어스는 네오가 일 거라 믿고 있고, 트리니티는 모피어스의 리더십과 오라클의 예언을 믿고 있으며, 네오는 자신이 가 아니지만 모피어스를 꼭 살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이 모든 믿음은 아직 사실로 밝혀지지 않았으며 어디까지나 그 세 사람의 영혼을 지탱하고 있는 믿음의 영역이다. 세 사람의 믿음은 논리적으로 증명할 수 없지만 그들의 삶에서 가장 소중한 무엇이고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에너지의 원천이다.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지만 우리의 마음이 자석처럼 어디론가 이끌리는, 바로 그런 불가해한 믿음. 이것을 엘리아데는 아직 문명인에게 실낱처럼 남아 있는 종교성이라고 설명했다.

 

 

무의식의 활동에 대한 매혹의 느낌이나 신화와 상징에 대한 관심, 이방과 원시, 고대를 향한 열광, 그것이 내포하는 모든 상반된 감정을 동반하는 타자와의 만남, 이 모든 것이 언젠가는 새로운 유형의 종교성으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엘리아데, 최건원·임왕준 역,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문학동네, 2006, 10.

 

 

엘리아데가 말하는 종교성은 신앙의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철저히 무신론자라고 믿는 사람에게도 그가 아직 의식하지 못하는 종교성이 남아 있다는 것.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믿음일 수도 있고, 지금 여기의 이 삶 너머에 뭔가 커다랗고 신비한 무언가가 우리에게 끊임없이 알 수 없는 메시지를 보내는 듯한 느낌일 수도 있다. 아름다운 예술 작품을 봤을 때 이건 인간의 힘이 아니라 더 큰 무언가의 힘이 깃든 것이라고 느끼는 숭고함의 감정이 일 수도 있다. 그릴 수도 없고 설명할 수도 없지만 우리가 남모르게 그리워하는 그 무엇을 향한 마음의 화살표. 그것이 엘리아데가 말한 넓은 의미의 종교성이 아닐까.

 

자신의 논리와 네오의 믿음이 일치하지 않지만, 이제 트리니티는 알 수 없는 힘에 이끌려 네오를 믿기 시작한다. “너와 같이 갈 거야. 정말 그를 살리고 싶다면 내 도움이 필요할 걸.” 이제 아무도 그들을 말릴 수 없다. 그들은 합리적 이성이 아니라 믿음의 불빛으로 움직이기에. 아무도 이토록 위험한 작전을 시도한 적이 없다며 걱정하는 친구들에게 네오는 말한다. 아무도 시도한 적이 없기에,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성공할 거라고.

 

이상하다. 그는 지금 자신이 평범하다고 주장하지만 그는 어느 때보다도 비범해 보인다. 네오와 모피어스와 트리니티, 이 세 사람이 마음속에 지니고 있던, 조금씩 어긋나며 삐걱거리던 믿음이 완전히 일체가 될 때, 그 순간 네오는 진정한 로 거듭날 것이다.

 

 

정신분석처럼 특별히 근대적인 기술도 역시 입사식의 패턴을 보존하고 있다. 환자는 깊이 그 자신에게로 침잠하고, 자기의 과거의 삶을 되살리고, 자기의 외상적 경험을 또다시 직면하도록 요구 받는다. 형식면에서 보면 이 위험한 조작은 지옥에로, 마귀의 영역에로의 입사적 하강 및 괴물들과의 투쟁을 닮고 있다. 입사자가 그의 시련에서 승리를 거두고 다시 올라오리라고-간단히 말해서 충분히 책임을 질 수 있는 존재, 정신적 가치들을 향하여 열려 있는 존재에 접근하기 위해 죽고’ ‘다시 살아나리라고-기대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오늘날 정신분석을 받는 환자는 정신적 건강과 통일성을, 그리고 따라서 문화적 가치의 세계들을 발견하기 위하여, 유령과 괴물들에게 쫓기는 자기 자신의 무의식과 대면하지 않으면 아니 된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184~185.

 

 

 

 

 

10. 길을 아는 것과 걷는 것의 차이

 

 

우리는 모순으로 인해 비옥해진다.

-괴테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까지 내려오는 데 70년이 걸렸다.

-김수환 추기경

 

 

내가 바로 여야 한다는 강박에서 벗어나자 네오는 비로소 자유로워졌다. 내가 반드시 가 되어야 한다는 의무감도, 내가 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불안도 잊고, 오직 소중한 친구를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찼다. 오라클의 예언이나 네오의 엄청난 능력 때문만이 아니라, 네오가 자신의 삶을 잊고 오직 모피어스를 살려야 한다는 마음을 갖게 되는 순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네오는 진정한 가 된다. 이제 네오는 세상에서 제일 멀다는 그 거리, ‘마음과 머리 사이의 거리를 극복했다. 이제 마음과 육체의 거리를 좁히는 일이 남았다. 마음처럼 움직이지 않는 육체의 한계를 넘어설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네오는 이제 매트릭스의 중력장에 갇힌 스미스 일당뿐 아니라 마지막 남은 인간의 땅 시온의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미디어가 만들어낸 매트릭스의 촘촘한 그물에 갇혀 사는 현대인에게는 마음과 머리사이의 거리만큼이나 마음과 육체사이의 거리가 멀어졌다. 소파에 누워 하루 종일 텔레비전만 봐도 충분히 하루 분의 경험을 다 해낸 것 같은 가상의 충족감. 몇 시간의 인터넷 웹서핑만으로도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계의 진실을 다 알아버린 것 같은 환상적인 착시. 우리는 점점 육체의 생생한 촉각과 멀어지며 규격화된 문명의 언어와 이미지에 길들여진다. 네오는 매트릭스 안으로 들어가 모피어스를 구해내는 과정에서 자신을 길들인 그 미디어 매트릭스의 익숙한 감각과 싸우는 것이 아닐까. 네오는 모피어스를 구하기 위해 매트릭스 최고 정예 요원들과 몸으로싸우면서, 그들의 가상의 신체와 싸우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통해 평생 동안 한 번도 마음대로 쓰지 못한 자신의 육체를 제대로쓰는 방법을 배운다.

 

 

 

 

스미스: 이곳에 있는 동안 깨달은 사실이 있어. 너희들은 종족을 분류하다가 영감을 얻었지. 너희는 포유류가 아니었어. 지구상의 포유류들은 본능적으로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데 인간들은 안 그래. 한 지역에서 번식을 하고 모든 자연 자원을 소모해 버리지. 그리고 또 이동하는 거지. 지구상에는 똑같은 방식의 유기체가 있어. 그게 뭔지 아나? 바이러스야. 인간은 질병이야. 바로 암이지. 너희는 역병이고 우리가 치료제다.

모피어스: (고문에 지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점점 정신을 잃어간다.)

 

 

스미스는 인류 문명의 치명적인 오류를 날카롭게 지적하지만 너희는 역병이고 우리가 치료제다라는 결론은 그리 만족스럽지 못하다. 스미스는 마치 파우스트의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인간의 욕망에 기생하면서 인간의 오류를 들춰내는 존재다. 모피어스와 네오는 스미스라는 강력한 적을 통해 배운다. 네오는 스미스 일당과 몸으로 싸우면서 자신도 모르게 점점 강해지는 것을 느낀다. 트리니티는 매트릭스의 정예요원들처럼 신출귀몰한 속도로 움직이는 네오의 액션에 감탄한다. “어떻게 그랬지? 네가 그들처럼 움직였어. 그렇게 빠른 건 처음 봐!” 네오는 이제 여유롭게 웃으며 으쓱한다. “아직 멀었어.”

 

 

 

 

네오는 적과 싸우면서 진정으로 강해지는 법을 배운다. 자기가 강해지는 것을 몸으로 느끼면서 자신이 아직 멀었다는 것도 동시에 깨닫는 네오의 눈부신 비약. 네오는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적과 싸우면서 진짜 가 되는 중이다. 혹시 내가 가 아닐지라도 상관없이 그 길을 가는 것, 내가 선택받은 자가 아닐지라도 내가 아는 최선의 길을 발견하고 그 길로 향해 나아가는 용기. 그것이 네오를 로 만든다. 드디어 트리니티와 네오는 천신만고 끝에 모피어스를 구해낸다.

 

마지막 의혹을 떨쳐버리지 못하던 트리니티도, 네오의 능력에 반신반의하던 탱크도, 이제는 네오가 임을 믿기 시작한다. “네오가 바로 였어!” “이젠 믿겠나, 트리니티?” 아직도 자신이 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네오는 모피어스에게 자신은 가 아니라고 말하려 한다. 그러자 모피어스는 미소 지으며 말한다. “오라클은 네게 필요한 말을 한 거야. 너도 나처럼 곧 알게 돼.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를.”

 

길을 아는 것과 길을 걷는 것의 차이. 그것이 머리와 마음의 거리, 그리고 더 나아가 마음과 육체의 거리가 아니었을까. 네오의 뛰어난 학습능력이나 엄청난 해킹능력이 아니라, 내 목숨이 아니라 너의 목숨을 구하려는 네오의 진심이 그를 진정한 로 만들어준 것이 아닐까. 엘리아데는 이 순간을 존재론적 이행이라 불렀다. 평범한 회사원 토마스 앤더슨이 모피어스의 전화를 받는 순간, 그가 하얀 토끼를 따라 트리니티를 만나는 순간, 파란 약의 유혹을 뿌리치는 빨간 약을 삼키는 순간, 자신이 죽을지도 모르지만 모피어스를 구하려고 결심하는 순간. 그 모든 순간이 네오의 존재론적 이행을 위한 세속적인 세계의 파열이었다. 이 존재론적 이행의 끝자락에는, 나보다 타인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함으로써 스스로가 자신도 모르게 위대해지는 순간이었다. 그것은 네오가 스스로의 평범함을 인정하는 순간이었고, ‘나의 존재에 가려 미처 보이지 않던 너의 존재를 끌어안는 순간이었다.

 

 

거룩한 것이 공간 속에 자신을 현현시키는 곳에서 실재가 모습을 드러내며 세계가 출현한다. (……) 거룩한 것의 출현은 단지 세속적인 공간의 형태 없는 유동성에 고정점을 투사하고, 카오스에 중심을 부여하는 것으로만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또한 지평의 돌파를 가져온다. 즉 우주적인 여러 차원 사이(지상과 천상 사이)의 교섭을 열어주고, 하나의 존재양식에서 다른 존재양식으로 가는 존재론적 이행을 가능케 하는 것이다.

세속적인 공간의 균질성에 이 같은 파탄이 일어남으로써 하나의 중심이 창조되는데, 그것을 통하여 초세계적인 것과의 교섭이 정립되며, 결과적으로 세계가 창건된다.

-엘리아데, 이동하 역, 성과 속, 학민사, 1996, 57.

 

 

 

 

 

11. 내 이름은 …… 네오다

 

 

대자연은 오류에 대해 근심하지 않는다. 자연은 스스로 이를 수정하며, 이 모든 것들로 인해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 생각해보지 않는다.

-괴테

 

 

네오는 과연 내 몸이 마음대로 움직일까내심 걱정하지만 모피어스를 구해야 한다는 지상과제 앞에서 모든 두려움을 잊는다. 그는 과연 이런 방법이 통할까를 고민할 틈도 없이 몰려드는 적들의 주먹과 총알을 피해 자신도 모르고 있던 스스로의 잠재력을 유감없이 발휘한다. 잡생각을 할 틈조차 없이 친구를 살리는 일에 완전히 몰입하기에 생각의 방해를 받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다. 스미스와 트리니티가 매트릭스 바깥으로 무사히 탈출하고 나서도 네오는 끝까지 자신을 추격하는 스미스 일당을 제거하기 위해 천의무봉(天衣無縫)의 무술 실력을 뽐낸다. 어느새 두려움도, 불안도, 미련도 사라진 네오의 눈빛에는 비로소 자기 안의 흔들리지 않는 중심을 찾은 자의 무한한 여유가 서린다.

 

 

 

 

스미스와 무시무시한 추격전을 펼치는 네오. 이제는 네오에게서 얼마 전까지 스미스 일당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던 회사원 토마스 앤더슨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러나 스미스는 네오의 마음속에 남아 있을지도 모를 마지막 두려움을 자극한다. 그를 네오가 아니라 앤더슨으로 부르며, 그의 평범함에 대한 두려움에 호소하는 스미스. 스미스는 자신에게 맞아 비틀거리는 네오를 계속 앤더슨으로 부르며 이죽거린다. “앤더슨, 너 이러다 죽겠다?” 스미스는 네오가 임을 인정하지 않음으로써 네오의 잠재력을 부정한다. 달려오는 열차를 향해 네오의 몸을 내팽개치며 스미스는 싸늘하게 미소 짓는다. “저 소리가 들리나? 피할 수 없는 소리다. 네 죽음의 소리지. 잘 가라, 앤더슨.”

 

 

 

 

그 순간 네오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만신창이가 된 몸을 일으켜 기차를 피하고 오히려 스미스를 기차 쪽으로 밀어 넣는다. 그리고 그는 절규한다. “내 이름은, 내 이름은 …… 네오다!” 모피어스도 탱크도 트리니티도 모두 네오가 임을 인정했지만 아직 네오는 스스로를 의심하고 있었다. 이제 네오는 자신의 가정 커다란 적수 앞에서 드디어 자신이 바로 임을 믿기 시작한다.

 

네오는 자신이 가 아님을 인정하고 떠난 길 위에서 오히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내가 바로 임을 발견하는 역설적 루트를 밟아 되돌아온다. 뫼비우스의 띠처럼 연결된 고뇌의 통로를 지나자 지금까지 믿어왔던 세계의 앞면과 전혀 다른, 세계의 이면이 나타난 것이다.

 

세상을 향해서는 주고, 자신의 내면 안에서 다시 태어나는 용기. 토마스 앤더슨은 바로 그 용기를 조금씩 키워가는 과정에서 네오가 되고, 파란 약이 아니라 빨간 약을 삼키고, 의심의 터널과 죽음의 터널을 거쳐 마침내 가 되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는 순간. 매트릭스가 길들인 육체의 감각에서 벗어나는 순간. 그는 이제 단지 날아오는 총알을 피하는 것이 아니라 총알이 달리는 시간총알이 머무는 공간을 사로잡아 스스로를 중력의 법칙에서 해방시켜버린다. 그가 정지시킨총알을 하나하나 떼어내어 땅에 떨어뜨리는 장면. 그것은 네오가 가 되기 위해 마침내 공간과 시간(=인간의 한계)을 쥐락펴락하는 마술적 경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스스로 자신의 책임을, 운명을, 신화를 완전히 긍정하는 희열의 순간에 도달한 것이다.

 

 

세계를 갱신한다는 것은 세계를 성스럽게 만든다거나 원형과 비슷한 형태로 만드는 것을 뜻한다. 때로 이와 같이 다시 성스러운 존재로 만든다는 것은 세계를 천국상태로 회귀시키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 이것은 전통적인 인간이 풍요롭고 의미 있는 우주 안에서 존재하고 싶은 욕구를 느끼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여기서 풍요롭다는 것은 음식물이 풍부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풍부한 의미를 담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이 우주는 일종의 기호로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우주는 말을 하고’, 자신의 구조와 양식과 리듬을 통해서 메시지를 전달한다. 인간은 그 메시지를 듣고 또는 읽고, 그래서 결과적으로 우주를 일관성 있는 의미체계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

(……) 마지막으로, 종교적 인간은 세계의 개혁에 책임이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엘리아데, 최건원·임왕준 역,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문학동네, 2006, 212.

 

 

 

 

 

12. 난 이제 그들이 두렵지 않아

 

 

신화는 별들에게 열정의 옷을 입히고,

신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지닌 결함과 과오를

덧씌우기도 했다네. 신화 속에서 바람과

파도는 음악이었다네. 모든 호수와 사내,

샘물과 산, 숲과 향내 그윽한 골짜기는

온갖 요정들의 놀이터였다네

-로버스 G. 잉거솔

 

 

세속의 아수라 속에서도 신성의 숨결을 발견하는 열쇠. 그 열쇠는 바로 이었다. 네오를 비롯하여 매트릭스에 갇혀 있던 모든 인류는 자신의 진짜 몸을 AI에게 건전지로 헌납한 채 가상의 이미지로만 꾸역꾸역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태어나서 자신의 눈, , , , 발을 단 한 번도 진짜 세계에서 써 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네오가 매트릭스로 철저히 세뇌된 자신의 두뇌를 해방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을 매트릭스의 회로에서 빼내 육체와 정신의 혼연일체를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역으로, 매트릭스 안에서는 거의 신의 경지에 올라 있는 스미스가 이상하게도 그다지 행복해 보이지 않았던 것은 그의 이 자유롭지 않았기 때문은 아닐까. 스미스는 모든 것을 갖췄지만 자신의 건전지를 인간의 육체로부터 쥐어짜내야 하는 참혹한 운명을 향해 저주를 퍼붓는다. 스미스가 모피어스를 협박하며 투덜거리는 장면은 결국 매트릭스 안의 적자인 인공지능로봇조차도 결코 행복한 삶을 누리는 것이 아님을 실감하게 만든다.

 

 

 

 

스미스는 자신의 몸을 자신의 욕망대로 사용할 수 없기에, 아니 자신의 욕망 자체가 곧 매트릭스의 욕망이기에, 그 불완전한 육체조차 인간에게 철저히 기생해야만 유지할 수 있기에, 결코 구식 인간들처럼 몸과 마음이 일치하는 순간의 희열을 평생 누릴 수 없다. 그는 한 번도 햇살의 따스함을, 얼음물의 청량감을, 향기로운 꽃냄새를, 사랑하는 여인의 체온을 으로 느껴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스미스: 난 여기가 싫어. 이 동물원, 감옥……. 뭐라고 부르든 간에 더 이상은 못 참아. 냄새 때문이지. 그런 게 있다면 말이야. 네 냄새가 느껴져. 마치 감염될 것 같아. 아주 불쾌해. 안 그래? 여기서 벗어나야 해. 네 머릿속에 열쇠가 있어. 시온이 파괴되면 내가 여기 있을 필요가 없어지지. 시온으로 들어가야 해. 코드가 뭔지 빨리 말해.

 

 

스미스는 마치 권태에 지친 메피스토펠레스처럼, 살아 움직이는 인간들을 향해 유혹의 미끼와 저주의 화살을 동시에 던진다. 스미스의 엄청난 파워에 기가 질렸던 네오는 스미스와 으로 싸우면서 그의 불안과 공포를 차츰차츰 읽어낸다. “너희를 느낄 수 있다. 너희는 우리를 두려워한다. 변화가 두려운 거야.” 네오는 천하무적으로 보였던 스미스 일당이 실은 자신들을 두려워하고 있음을 알아차린다.

 

 

 

 

스미스는 바로 매트릭스의 명령체계를 향해 저항하는 인간의 자유 의지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가 인간에게 운동과 생명 대신 휴식과 정지, 죽음을 강요하듯이. 네오가 싸워야하는 것은 바로 스미스라는 강력한 상징적 존재로 대변되는 매트릭스의 의지, 생의 운동성을 부정하는 거대한 시스템의 만유인력이었다. 스미스는 단지 사악하기 때문이 아니라 운동을 부정하고, ‘생명을 부정하고, 마침내 자유와 저항을 부정하기에 위험한 존재였던 것이다. 끊임없이 꿈틀대고 미끄러지는 인간의 욕망,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은 바로 살아있는 육체이기에. 매트릭스의 인공지능로봇은 그들이 그토록 증오하는 인간의 살아있는 육체를 결코 소유할 수 없기에.

 

 

괴테가 구상한 메피스토펠레스는 항의하고 부정하는 영이며, 특히 삶의 흐름을 멎게 하고 일의 진행을 방해하는 영이다. 메피스토펠레스의 행위는 신을 거역하는 것이 아니라 생을 거스르는 것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모든 방해의 아버지다”. 그가 파우스트에게 요구하는 것은 멈추라는 것이다. “어쨌든 멈춰라!”는 특히 메피스토펠레스를 연상시키는 문구다.

메피스토펠레스는 파우스트가 멈추는 순간 그 영혼을 잃으리라는 것을 안다. 그런데 멈춤은 창조주에 대한 부정이 아니라, 생명에 대한 부정이다. 메피스토펠레스는 신에게 직접 대항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중요한 창조물인 생을 방해한다. 운동과 생명 대신 휴식과 정지, 죽음을 강요하려고 애쓴다. 바뀌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부패하고 사라지기 때문이다.

-엘리아데, 최건원·임왕준 역,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문학동네, 2006, 99.

 

 

 

 

 

13. 예언과 믿음과 사랑이 합치되는 순간

 

 

초월이라는 신의 의지는 진실과 사랑이 넘치는 투쟁에 혼신을 바치는 나의 참 자아로 돌아가라는 뜻이다.

-칼 야스퍼스

 

 

네오는 스미스의 숨겨진 두려움을 간파하고 사력을 다해 그를 공격하지만, 잠시 방심하는 사이 스미스 일당의 교활한 팀플레이로 죽음의 위기를 맞는다. , , ……. 스미스의 총격으로 매트릭스 안의 네오는 피를 토하며 죽어간다. 매트릭스 안에서의 죽음은 곧 정신의 죽음. 정신이 죽으면 매트릭스 바깥의 육신도 죽는다. 스미스는 더 이상 뛰지 않는 네오의 심장박동을 확인하곤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선다. 이제야 자신이 라는 것을 알 것만 같은데, 바로 그 황홀한 깨달음의 순간 네오는 죽음의 문턱에 다다르고야 만다.

 

 

 

 

모피어스와 탱크는 믿을 수 없는 광경 앞에서 전율한다. 매트릭스 바깥에서 심장 박동을 멈춘 네오의 육체. 설상가상으로 그들이 타고 있는 호버크래프트를 침략하는 스퀴디(매트릭스를 방해하는 저항군을 찾아 파괴하는 살인기계)의 무리들. 그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 모피어스 일행은 이제 네오의 죽음으로 아무런 희망을 찾을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이다.

 

 

 

 

이 순간 차분히 상황을 관망하고 있던 트리니티가 네오의 식어가는 육체를 바라보며 말문을 연다. 모두가 망연자실한 순간, 트리니티는 이상하게도 평소보다 더욱 차분하고 평화롭기 이를 데 없는 표정이다. 트리니티는 마치 오래전부터 준비하고 있던 것처럼, 생에 단 한 번뿐일 수밖에 없는, 눈부신 고백을 시작한다.

 

 

트리니티: 네오……. 난 이제 두렵지 않아. 오라클은 내가 사랑에 빠지는 남자가 바로 라고 말했어. 그러니까 …… 당신은 죽을 수 없어. 왜냐하면 내가 당신을 사랑하니까……. 들려? 사랑해……. 이제 일어나야지.

 

 

트리니티는 이미 죽음의 문턱을 넘어선 듯 가망이 없어 보이는 네오에게 키스한다. 이제 그녀의 목소리에는 어떤 떨림도 없고 오직 에 대한 흔들리지 않은 믿음이 아로새겨져 있다. 트리니티의 눈물 어린 키스를 받는 순간 네오는 기적처럼 깨어난다. ‘의 진정한 부활의 순간이다.

 

 

 

 

오라클의 예언모피어스의 믿음트리니티의 사랑이 합체하는 순간. 마침내 네오가 완전한 로 거듭나는 순간. ‘는 매트릭스의 철칙(매트릭스에서 죽으면 현실에서도 죽는다)에 어긋나는 단 하나의 존재라는 예언이 증명되는 순간이다. 네오를 꼬박꼬박 앤더슨이라고 부르며 네오가 임을 끈질기게 부정하던 스미스. 그는 이제야 네오가 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믿기 시작한다.

 

그 순간 네오는 아무도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스미스 격파한다. 순식간에 온몸을 스미스의 몸 안으로 침투시켜, 스스로를 잠시 스미스의 몸속으로 사라지게 한 후, 말 그대로 스미스를 내파(內破)’해버리는 것이다. 이제 네오는 자신의 몸을 완전히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천부적 매뉴얼을 스스로 완성시킨다. 어떤 인공무기의 성능도 압도하는 최고의 무기는 바로 인간의 몸 그 자체임을, 네오는 그렇게 증명한다. 그리고 네오는 이렇게 자신감 넘치는 피날레 멘트를 날린다.

 

 

네오: 난 미래를 모른다. 이것이 어떻게 끝날지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어떻게 시작할지를 말하려는 거다. 이제 전화를 끊고 이 사람들에게 전부 다 보여주겠다. 진짜 세상을 보여주겠다. 규칙이나 통제, 경계나 국경이 없는 세계. 모든 것이 가능한 세계를. 

 

 

 

 

 

14. 너와 함께, 네 안에서, 너를 통해, 내가 된다

 

 

폴 리쾨르는 한 인간이 일생을 평화롭게 살기 위해서는 다음의 여섯 가지 문제를 잘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첫째,(죽음이라는 운명과 관련된) 인간의 유한성.

둘째, 신이나 신령한 존재로부터 소외당한 인간의 현실.

셋째, 생성과 초월의 과정,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 있는 존재인 개개의 인간에게 진리는 절대로 온전하게 완성된 것일 수 없다는 점.

넷째, 선택에 대한 인간의 자유와 그에 따른 책임 사이의 모순성.

다섯째, 인간이란 타자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그들을 통해(with, in, and through others) 비로소 존재하는 것이므로, 우리가 의미를 인식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

여섯째, 우주 속에서의 인간의 정체성과 그 역할.

-비얼레인, 배경화 역, 살아 있는 신화, 세종서적, 2000, 18.

 

 

그들과 함께, 그들 속에서, 그들을 통해(with, in, and through others) 비로소 존재하는 우리. 네오를 위해 다치고, 의심 받고, 죽음을 불사했던 친구들이 없었다면 네오는 평생 가 될 순간을 단 한 번도 포착하지 못한 채 매트릭스 안에서 방황하다 죽어갔을 것이다. 온종일 말 한 마디 안 하고 디지털 무언족으로 살아도 충분히 잘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이 세상 속에서, 우리는 더더욱 친구가 필요하다. 나를 일깨우고, 나를 시험하고, 나를 뒤흔드는 타인이 없다면 우리는 평생 각자의 가 되는 길을 찾지 못해 운명의 미궁 속을 헤매지 않을까.

 

네오가 진정으로 성숙하게 되는 계기는, 단지 그의 뛰어난 학습 능력이나 놀라운 해킹 실력 때문이 아니라, 늘 혼자 생각하고 혼자 행동하고 혼자 결정하던 네오가 드디어 모피어스라는 타인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순간이다. 모두가 시온이라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아무리 소중한 모피어스라도 희생시킬 수밖에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을 때, 오직 네오만이 모피어스를 살리자고 한다.

 

 

 

 

모피어스와 네오 중 둘 중 한 명의 목숨만을 선택해야 한다는 오라클의 비극적인 예언이 틀리는순간 네오는 비로소 진정한 가 될 수 있다. 오라클은 단지 너는 아무리 피해도 그가 될 수밖에 없을 거야라고 손쉽게 운명의 진로를 귀띔해준 것이 아니라, ‘네가 진정으로 넘어야 할 운명의 장벽은 바로 이것이다라고 일깨워준 것이다. 그 운명의 장벽을 넘을 것인가 아닌가는 바로 네오 스스로의 선택이고 능력이고 용기였던 것이다.

 

엘리아데는 캐나다의 정신과 의사 버크 박사의 신비한 체험을 이야기하며 우리 안에 내재한 가 발현되는 결정적인 계기를 묘사한다. 세속의 틈바구니에서 신성을 발견하는 체험. 그것은 완전히 낯선 경험은 아니다. 내 안에 깃든 타자, 가장 익숙하지만 동시에 가장 낯선 타자를 발견하는 순간. 내 안의 빛, 바로 너와 함께, 너를 통해, 네 안에서, 우리는 언젠가 비로소 가 될 수 있다. 너와 함께, 네 안에서, 너를 통해, 비로소 나는 존재한다.

 

 

 

 

버크박사는 어느 봄날 밤 자신에게 닥친 일을 3인칭으로 서술했다. 친구들과 함께 워즈워드와 셸리, 키츠, 특히 휘트먼의 시를 읽으며 파티를 즐긴 뒤 자정에 빠져나온 그는 승합마차를 타고 오랜 드라이브를 했다. (일은 영국에서 일어났다.) 그는 거의 수동적인, 고요한 기쁨을 누리고 있었다. 갑자가, 예고도 없이, 그는 불꽃 색깔의 구름에 파묻혔다. 순간 그는 불, 대도시의 돌발적인 화재를 떠올렸다. 그러나 곧 그는 빛이 자신의 내면에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 즉시 고양된 감정이 그를 감쌌는데, 이는 엄청난 기쁨의 감정이었으며, 여기에 형언할 수 없는 지적 계시가 수반되고 또 뒤를 이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부라만의 찬란함을 지닌 순간적인 번갯불이 일렁이고 있었는데, 이 불은 그 뒤로 그의 일생을 밝힌다. 부라만의 지복 한 방울이 심장으로 떨어져, 천국의 뒷맛을 그에게 영원히 남긴다. (……) 그는 보고, 알았다. 우주는 죽은 물질이 아니라, 살아 있는 현존이다. 인간의 영혼은 불멸이며(……) 세상의 근본 원리는 우리가 사랑이란 부르는 것이고, 길게 보면 각자의 행복은 절대적으로 보장된 것이다. 그는 단 몇 초의 계시에서 그 후의 몇 달, 심지어 몇 년의 연구에서보다 더 많이 배웠으며, 어떤 연구도 가르쳐줄 수 없었을 많은 것을 배웠다.

-엘리아데, 최건원·임왕준 역, 메피스토펠레스와 양성인, 문학동네, 2006,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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