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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의심하라] - 3. 내가 누구인지 알수록 나는 위험해진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본 아이덴티티와 미셸 푸코[‘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의심하라] - 3. 내가 누구인지 알수록 나는 위험해진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3. 1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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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내가 누구인지 알수록 나는 위험해진다

 

 

규율은 개인을 제조한다. , 그것은 개인을 권력 행사의 객체와 도구로 간주하는 권력의 특정한 기술이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267~268.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 자체가 두려워진 이름 모를 사내. 그는 유일한 가시적 단서인 스위스 은행 계좌번호를 사용하기로 한다. 우여곡절 끝에 스위스 은행에 들어간 그는 비밀계좌에 들어 있는 자신의 소지품을 열어 보고 드디어 자신의 이름을 찾아낸다. 미합중국의 여권 위에 기재된 그의 이름은 제이슨 본이었다. 좀처럼 표정이 없던 이 사내의 얼굴에 처음으로 안도의 미소가 스쳐간다. “내 이름은 제이슨 본이구나. 파리에 살고 있군.” 자신의 이름을 알게 되자 자신의 모든 것을 찾아낼 수 있는 열쇠를 찾은 듯 기뻐하는 제이슨.

 

 

 

 

그러나 소지품이 들어 있는 상자의 칸막이를 벗겨내니 수 십장의 여권이 쏟아져 나온다. 사진은 모두 내 얼굴을 가리키는데 이름과 국적은 모두 다른 수십 장의 여권이 기다리고 있다. 내가 나임을 증명하는 서류가 이토록 많은데, 나는 더더욱 알 수 없는 존재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소지품 상자에는 돈다발이 한가득 들어 있는데다가 까지 들어있었다. 도대체 나는 누구이기에 이런 엄청난 물건들을 스위스 은행의 비밀계좌에 갖고 있는 것일까.

 

 

 

 

그는 아직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없지만 분명 보통 사람처럼 살아갈 수는 없게 되었다는 사실을 감지한다. 제이슨은 자신에게 어떤 위험이 닥칠지 몰라 일단 여권과 돈은 챙기지만 만은 용납할 수 없어 다시 소지품 상자에 넣어두고 스위스 은행을 떠난다. 기다렸다는 듯이 누군가 자신을 미행하는 듯한 느낌을 감지한 그는 케인이라는 이름으로 등록된 미국 여권을 가지고 재빨리 미대사관으로 도피한다.

 

미대사관의 안전한품 안에 잠시 의탁한 그는 이곳도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다. 경찰뿐 아니라 군인들까지도 그를 추적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그는 경찰관 두 명을 때려눕힌 액션 실력은 빙산의 일각이었음을 보여주기라도 하는 듯, 신출귀몰한 액션과 과감한 두뇌 플레이를 화려하게 선보이며 수백 명의 추격자들을 따돌리고 한 여자에게로 접근한다. 제이슨이 대사관에서 눈여겨보았던 한 독일여성이 차를 몰고 떠나려는 찰나, 제이슨은 그녀를 불러 세운다.

 

 

제이슨: 당신은 돈이 필요하죠. 난 당장 차가 필요해요.

마리: 내 차는 택시가 아니에요, 그럼 이만.

제이슨: 나를 파리까지 태워다 주면 만 달러를 주겠어요.

마리: 젠장, 내가 바보천지인 줄 아나?

제이슨: 그냥 가버리면 정말 바보예요.

마리: 장난해요? 사기 치냐고요?

제이슨: 사기 아니에요(그는 만 달러 뭉치를 마치 야구공 던지듯 심상하게 그녀에게 던져주곤 심각한 표정으로 말한다.). 파리에 무사히 도착하면 만 달러를 더 주겠어요.

마리: (대사관 주변에 진을 치고 있는 경찰들을 보고 표정이 굳어지는 제이슨을 의심스런 눈길로 쳐다보며)세상에! 경찰 때문인가요?

제이슨: 차를 타면 돈을 내는 게 당연하잖아요.

마리: (절박한 상황에서 돈을 보자 마음이 흔들리지만, 낯선 남자를 태우는 일이 영 찜찜한 듯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난 지금도 너무 복잡해요, 알겠어요?

제이슨: 그럼 돈을 돌려주겠어요?

 

 

화폐는 때로 최고의 신분증명서가 된다. 그가 누구인지 몰라도 그의 화폐가 그의 아이덴티티를 증명한다. 제이슨은 결국 마리의 자동차를 타고 파리로 향한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빠른 속도로 학습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치밀한 계획이 아니라 신체의 반사적 액션을 통해 자신의 엄청난 잠재력을 깨닫게 된다. 제이슨의 무의식이라는 유일한 비밀통로를 통해 그의 의식을 향해 끊임없이 감각의 모스 부호를 날려 보내는 중이다. 넌 지금의 네가 아니야. 넌 너를 찾을수록 미궁에 빠질거야. 너를 찾는 길이 과연 최선일까. 네가 다룰 수 있는 무기는 총만이 아니야. 네 온몸이 곧 최첨단의 무기인 셈이지…….

 

온 몸의 세포가 기억한 삶의 흔적, 그 엄청난 분량의 메시지를, 무의식은 이라는 미디어를 통해 의식을 향해 송신한다. 그는 그 어디라도 갈 수 있는 수많은 여권과 엄청난 돈까지 지녔지만 어딜 가나 나는 내가 누구인지 모른다는 보이지 않는 감방 안에 갇혀 살아가야 한다. 그를 쫓는 것은 한 개인이 아니라 거대한 권력기구이며 그의 모든 정보를 프로파일링하여 보유하고 있는, 제이슨 자신보다 제이슨을 훨씬 잘 알고 있는 무시무시한 비밀 조직인 것이다. 제이슨은 자신의 정체성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를 발견하자마자, 생사의 문턱을 가르는, 출제자도 출제 목적도 알 수 없는 엄청난 시험을 치르게 된 것이다.

 

 

시험은 개인을 자료의 영역 속으로 집어넣는다. 시험은 사람들의 신체와 일과의 차원에서 구성되는, 섬세하고 정밀한 모든 기록을 뒤에 남겨 놓는다. 개인을 감시 영역 안에 두는 시험은 또한 개인을 기록망 속에 넣어두는 것이다. 시험은 개인을 붙잡아 고정시키는, 두툼한 기록문서에 집어넣느냐. 시험의 여러 가지 방식은 집약적인 기록과 서류보관의 체계를 동반하게 된다. ‘기록에 의존하는 권력은 규율의 톱니바퀴 같은 장치 안에서 본질적인 부속품처럼 조립된다.

-미셸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295~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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