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잃어버린 기억’에 추격당하며 점점 고통스러워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생명장치적인 것, 곧 생물학적인 것, 신체적인 것, 육체적인 것이다.
-미셸 푸코
기억의 주기가 딱 24시간이라 매일 아침 같은 남자와 처음처럼 사랑에 빠지는 여자의 이야기(『첫 키스만 50번째』), 10분 이상 기억을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된 남자가 온몸에 단서를 문신해가며 아내의 살인범을 쫓는 이야기(『메멘토』), 가슴 아픈 기억만을 지워준다는 회사를 찾아가 이제 싫증이 나버린 애인과의 아픈 사랑을 지워버리지만 기억을 지우고도 이상하게 ‘기억할 수 없는 그녀’를 더더욱 그리워하는 이야기(『이터널 선샤인』)…….
‘기억 상실’을 소재로 한 수많은 영화 속의 주인공들 곁에는 ‘그들이 잃어버린 바로 그 기억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타인들’이 존재한다. 그리고 주인공들은 기억을 보유하고 있는 사람들의 도움, 혹은 방해 끝에 ‘잃어버린 자아’를 찾게 된다. 즉, 기억 자체를 찾지 못해도 기억에 상응하는 ‘타인’이 그 기억의 빈자리를 메워준다. 기억, 혹은 기억의 대체제를 찾을수록 주인공은 행복해지는 것이다.
그런데 『본 아이덴티티』, 『본 슈퍼리머시』, 『본 얼티메이텀』으로 이어지는 ‘본’ 시리즈의 주인공 제이슨은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정체성의 퍼즐을 완성하기보다는 ‘잃어버린 기억’에게 추격당하며, 기억을 되찾을수록 오히려 점점 고통스러워진다. 자신이 누군지는 아직 모르지만 자신이 엄청난 조직력과 무력을 갖춘 거대한 조직에게 쫓기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제이슨. 그는 자신의 여권을 가리키고 있던 거주지인 파리에 도착하여 자신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기억을 잃어버린 이후로 몇 달 동안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끊임없이 두통을 시달리던 제이슨은 처음 보는 여자 마리의 밑도 끝도 없는 수다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졸음이 몰려오며 두통도 사라지는 것을 느낀다. 기억을 잃어버린 그의 불안과 절망을 어루만져줄 최초의 멘토를 만난 것이다.
마리: 지금껏 60킬로미터나 달려오는 동안 나만 지껄여댔잖아요. 난 신경이 곤두설 때 이렇게 수다를 떨게 돼요. 이제 입 다물고 있겠어요.
제이슨: 아뇨, 계속해요. 한동안 아무와도 얘길 나누지 못했거든요.
마리: 됐어요, 어쨌든 나 혼자만 말하고 있잖아요. 당신은 취리히를 떠난 후 겨우 열 마디를 했을 뿐이에요.
제이슨: 당신 이야기 듣는 게 편해서 그랬어요. 한동안 잠도 못 잤고 두통으로 고생했어요. 항상 머릿속에 맴돌던 게 이제야 좀 사라지는 것 같아요. 그러니 계속 이야기해줘요.
그가 파리로 도착할 즈음, 카메라는 그를 추격하고 있는 CIA의 정황을 상세히 보여준다. 제이슨의 등 뒤에 두 발의 총성을 남긴 ‘옴보시’는 CIA의 골칫거리였고, 제이슨은 움보시를 살해하는 데 실패한 채 행방불명되었던 ‘트레드스톤’이라는 비밀조직의 일원이었다. CIA의 비리를 언론에 누설해서 한 몫 단단히 챙기고 싶어 하는 움보시는 CIA의 아프리카 활동에 대한 책을 집필 중이고, 또 다시 CIA의 암살대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는다. 움보시는 암묵적으로 CIA의 공납을 요구하는 중이고, CIA는 성가신 움보시를 해치우지 못해 안달이다. 트레드스톤의 존재는 CIA내부에서도 공공연한 비밀이며, 그들의 단독 활동은 CIA의 치명적인 치부가 될 수도 있다.
CIA의 이름을 걸고 ‘대놓고’ 할 수 없는 불명예스러운 일까지 도맡고 엄청난 비리까지 숨긴 트레드스톤의 행동대장 콩클린(크리스 쿠퍼)은 행방불명된 요원 제이슨을 찾느라 혈안이 되어 있다. 제이슨이 없어져야 트레드스톤의 ‘과오’까지 함께 삭제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마리 크루츠까지 함께 수배하여 둘을 한꺼번에 살해하여 모든 ‘증거’를 없애버리려 한다. 그들은 순식간에 마리의 정보를 입수하여 그녀를 ‘이해 가능한 존재’로 분석하려고 한다.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집시처럼 떠돌며 살아온 그녀는 이들의 입장에서 보면 다음 행동을 계산하고 예측하기 어려운, 골칫거리 ‘타깃’인 셈이다.
요원: ‘마리 헬레나 크루츠’입니다. 26세, 하노버 시 외곽 출생입니다. 부친은 용접공이었어요. 87년에 사망했습니다. 모친에 대해선 아직 조사 중입니다. 할머니는 아직 하노버에 살고 있어요. 그녀가 이 재앙의 결정적인 인물인 듯싶습니다. 배다른 오빠가 하나 있어요. 복잡하죠, 집시나 다름없거든요. 데이터가 너무 방대한데다 엉망진창이라, 예측불능입니다. 95년에 스페인에서 전기료를 납부했어요. 96년에는 벨기에에서 3개월 동안 전화료를 납부했고요. 세금 내역도 신용카드도 없습니다.
콩클린: 맘에 안 드는 여자야, 자세히 조사해보지. 할머니와 오빠의 전화선을 도청해. 연관이 있다면 누구든 지난 6년 동안 그녀가 묵었던 모든 장소를 알아내. 파리 요원들에게 이 정보 전송해.
마리는 단지 제이슨을 파리까지 데려다주었다는 이유만으로 ‘암살 대상’이 되어버린다. 관객은 한 사람의 신상 정보가 저토록 쉽고 빠르게 유출될 수 있다는 것, 개개인의 삶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시스템이 저토록 정교하게 전 세계를 아우른다는 사실에 새삼 전율한다. 우리는 이토록 쉽게 ‘이해 가능한’ 존재였단 말인가. 푸코는 과거의 연대기가 ‘영웅적’인 행동을 강조한 것에 비해 근대의 서류파일은 ‘규범의 일탈과 위반’을 관찰하는 것이 주된 임무라고 이야기한다. ‘기억할 만한 인간의 위대함’에 대한 성찰보다는 ‘측정 가능한 인간’을 강조함으로써 근대적 의미의 ‘인간 과학’은 탄생했다는 것이다. 학교와 병원과 감옥과 군대의 각종 ‘서류철’이야말로 천차만별의 개인을 ‘규격화 가능한 신체’로 균질화한 ‘프로파일링의 천국’인 셈이다.
인간에 대한 통제와 그 활용을 위한 세부의 치밀한 관찰, 그리고 동시에 사소한 것에 대한 정치적 고려는 고전주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 일련의 총괄적인 기술과 방법, 지식, 설명, 처방, 데이터 등의 일괄적인 자료를 공유하게 된다. 아마도 이러한 사소한 일들로부터 근대적 휴머니즘의 인간이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푸코, 오생근 역, 『감시와 처벌』, 나남출판, 2004, 2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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