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내쉬의 독백: 강력한 우상이 필요할 뿐 친밀한 스승은 필요치 않다
내쉬는 달랐다. 그가 어떤 예감을 갖기만 하면, 어떠한 인습적인 비판도 그를 막지 못했다. 그에게는 배경 지식이 전혀 없었다. 그건 정말 섬뜩한 일이었다. 배경 지식도 없는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해낼 수 있었는지 정말 이해할 수 없다. 그런 정신력, 그런 맹목적인 정신력을 가진 사람을 나는 달리 본 적이 없다.
-존 내쉬의 지인, 모저의 회고
영화 『뷰티풀 마인드』에서 프린스턴 대학원에 입학한 갓 스무 살의 존 내쉬(러셀 크로우)는 수업도 듣지 않고 다른 학생들과 잘 어울리지도 않는다. 왜 수업을 듣지 않느냐는 동료의 질문에 존 내쉬는 이렇게 대답한다. “강의는 사고를 둔하게 만들고 학생들의 잠재적인 창의력을 파괴해.” 존 내쉬는 자신의 천재성에 육박하는 대화 상대를 좀처럼 찾지 못했다. 그가 동경하는 것은 당시 프린스턴을 전 세계 과학의 메카로 만드는 데 혁혁한 공을 세운 아인슈타인이나 괴델 정도의 강력한 스승이었다. 그러나 이제 스무 살에 불과한 햇병아리 대학원생 내쉬에게 ‘아인슈타인과의 독대’ 같은 것은 불가능한 꿈이었다. 아인슈타인을 멀리서라도 바라보기 위해 존은 일부러 출근길에서 서성이며 그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했다. 아인슈타인을 길에서 멈춰 세우고, 그가 깜짝 놀랄 만한 새로운 발견을 제시하며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스무 살 청년 존 내쉬의 바람은 위대한 우상과의 대화였지 평범한 사람들과의 수다가 아니었다.
존 내쉬는 이후에 경제학에 대한 거의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이 ‘내쉬 균형 이론’을 창조해낸 것처럼, 물리학에 대한 아무런 배경 지식도 없이 아인슈타인을 찾아가 자신의 견해를 이야기하는 엄청난 모험을 감행한다. 프린스턴에 입학한 지 고작 두어 주 지났을 무렵, 자신이 인정하는 몇 안 되는 대가 아인슈타인의 ‘비공인 천재인증서’를 발급받기 위해, 존 내쉬는 아인슈타인을 불쑥 찾아간다. 존은 중력과 마찰과 복사에 대한 아이디어를 가지고 아인슈타인을 만나고 싶어 한다. 한 시간 동안이나 존 내쉬는 아인슈타인을 앉혀 놓고 칠판에 방정식을 써가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설명했다. 그러나 결국 아인슈타인이 빙긋 웃으며 한 말은 이렇다. “젊은이, 물리학을 좀 더 공부해야겠어.”
존에게는 강력한 우상이 필요했지만 친밀한 스승은 필요하지 않았다. 존 내쉬는 선생님들과 친해지는 것을 극도로 경계했다. 당시 내쉬를 알고 있던 수학자 캘러비는 이렇게 말한다. “내쉬는 지적 독립성을 지키고 싶어 했습니다. 지나치게 영향받는 것을 원치 않았지요. 다른 학생들과는 자유롭게 얘기를 나누었지만, 교수들과는 너무 가까워질까 봐 걱정했습니다. 압도당할지도 모른다는 것이 겁났던 겁니다. 그는 지배당하길 원치 않았습니다. 지적으로 은혜를 입는다는 것조차 싫어했지요.” 존 내쉬는 행복한 인간이 되는 길을 포기하고 위대한 천재가 되는 길에만 매진함으로써 그 누구의 친구도, 그 누구의 제자도 될 수 없었던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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