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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빵이랑 놀자

시네필 다이어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너를 찾으러 가는 길 끝에서 ‘나’를 발견하다] - 9. one-way ticket: 돌아올 길이 없음이 겁나지 않는다 본문

책/철학(哲學)

시네필 다이어리,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과 조셉 캠벨[너를 찾으러 가는 길 끝에서 ‘나’를 발견하다] - 9. one-way ticket: 돌아올 길이 없음이 겁나지 않는다

건방진방랑자 2021. 7. 25. 0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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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one-way ticket: 돌아올 길이 없음이 겁나지 않는다

 

 

우리 안의 더 깊은 힘을 찾아내는 기회는 삶이 가장 힘겹게 느껴질 때 비로소 찾아온다. 삶의 고통과 잔인함에 대한 부정은 결국 삶에 대한 부정이다. 그 모든 것에 라고 말할 수 있게 된 후에 우리는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조셉 캠벨, 다이앤 오스본 편, 박중서 역, 신화와 인생, 갈라파고스, 2009, 27

 

 

센에게도 그 순간이 찾아왔다. 그녀는 굳이 가지 않아도 될 것 같은데, 어려운 길을 택한다. 그 길을 가면 엄청난 영광이나 성공이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친구 하나를 구할 수 있을 뿐이다. 보장할 수 없는 이익이 전혀 없는데도, 다치거나 죽거나 돌아오지 못할 위험을 무릅쓰고, 그녀는 떠나기로 한다. 떠나기 전 마지막 해야할 일, 그것은 괴물이 된 가오나시를 만나는 것이다.

 

 

 

 

거대한 이빨을 가진 집채만한 괴물로 변해버린 가오나시는 센을 내놓으라며 난동을 부린다. “어딨어? 센을 내놔!” 유바바는 모든 것을 센의 탓으로 돌린다. “왜 이렇게 꾸물거렸어? 손해가 막심하잖아. 기분 좋게 만들어서 금을 짜내.” 욕심쟁이 유바바는 잡아먹힌 사람들의 생사는 안중에도 없고 가오나시에게서 금을 더 뜯어낼 궁리만 한다. 이때 생쥐로 변한 수퍼 베이비가 엄마를 알아보며 눈을 깜빡거리자 유바바는 못 볼 꼴을 봤다는 듯 심술궂게 투덜거린다. “그 더러운 생쥐는 뭐야?” 센은 천하의 유바바가 설마 자기 아들을 못 알아볼까 의심한다. “모르시겠어요?” 유바바는 손사레를 친다. “알 턱이 있나! 징그러워!” 자신의 몸뚱이 하나 건사하지 못했던 여린 소녀 치히로는 어느새 적의 아들까지 건사해야 할 판이다. 아무도 돌보지 못했던 그녀가 누군가를 돌보고 살리고 치유하는 존재가 된다. 가오나시를 방 안에 가둔 유바바는 센을 혼자 들여보내 독대시킨다.

 

 

 

 

가오나시의 풍채와 비교하면 백분의 일도 안 될 것 같은 센은 주눅들지 않고 조용히 묻는다. “말해 봐. 넌 어디서 왔어? 난 가야할 데가 있어.” 가오나시는 무조건 센이 좋다고, 센을 갖고 싶다고 중얼거릴 뿐이다. “네가 왔던 곳으로 돌아가. 너한텐 내가 원하는 게 없어. 집은 어디야? 아빠, 엄마는 있지?” 커다란 가오나시는 어울리지 않는 투정을 부린다. “싫어, 싫어! 난 외로워!” “집을 모르는 거야?” “센을 갖고 싶어가오나시의 욕구는 지극히 단순하다. “갖고 싶다. 갖고 싶다. , 갖고 싶다. 먹고 싶다. 먹고 싶다. , 먹고 싶다.” 센은 하쿠를 먹이고 남은 경단을 떠올린다. “나를 먹을 거면 먼저 이걸 먹어. 부모님께 드릴 건데 너 줄게.” 사랑하지 않는 대상에게도, 자신을 괴롭히는 대상에게까지도, 센은 부모님을 살릴 수 있는 경단을 준다. 경단을 먹은 순간 가오나시의 입에서는 그동안 게걸스레 먹어치운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튀어나온다.

 

모두가 기피하는 더러움을 껴안고 그 존재로부터 더러움을 토해내게 하는, ‘구토와 정화의 모티브는 어느새 센의 트레이드 마크가 되었다. 그리고 이 구토와 정화야말로 ‘800만 신들이 모여 목욕을 하는 유바바 온천본연의 소명에 가장 어울리는 행위가 아닐까. 가오나시와 오물신으로 대변되는 과잉과 폭식, 더러움과 그로테스크함은 단지 그들 개인의 오명이 아니라 인간이 저버린 자연의 은유이면서 동시에 토해내야 할 만큼 폭식하고 소비하고 낭비해온 자본주의사회의 인간 자신의 은유이기도 하다. 우리의 가오나시는 다시 슬림한옛 모습을 찾고 소리 없이 센을 따르는 조용한 오타쿠적 면모(?)를 되찾게 되었다. 센은 비로소 마음 편하게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부모님을 구할 수 있는 경단은 없어졌고, 센은 삶을 위해 죽음의 영토를 통과하는 영웅의 마지막 문턱을 넘어야 한다. 작은 생쥐가 되어버린 수퍼베이비와 얼굴 없는 귀신 가오나시를 여행의 동반자로 삼아.

 

 

 

 

에로스의 사랑과 아프로디테의 허락을 얻기 위해 페르세포네가 살고 있는 하데스로 떠나는 프시케처럼, 죽은 아내 에우리디케를 살려내기 위해 하데스로 내려간 오르페우스처럼, 인간에게는 허락되지 않은 죽음 저편의 세계로 센은 기약 없는 여행을 떠난다. 그곳으로 떠나가는 기차표는 오직 원웨이 티켓일 뿐임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돌아오는 길이 없을 것을 겁내지 않는다. 하쿠를 친친 동여매고 있는 가혹한 운명의 사슬을 풀어주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그 공포가 그녀를 사로잡은 나머지 그녀는 괴물이 된 가오나시도, 자신을 협박하는 유바바도, 돌아올 길이 없는 원웨이 티켓도 두렵지 않다. 자신을 괴롭힌 수퍼베이비와 자신을 스토킹한 가오나시까지 여행의 동반자로 삼은 센의 따스함,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자가 자신도 모르게 실현하는 우정이다. 그녀의 적들은 어느새 그녀의 친구가 된다. 그리스 신화의 스틱스 강처럼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의 짐을 짊어지고, 저기 길 떠나는 소녀의 처연한 뒷모습은 시리도록 아름답다.

 

 

추악한 것이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신을 발견할 것이고, 남을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죽일 것이며, 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던 곳을 통해 우리는 우리 존재의 중심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이고, 외로우리라고 생각하던 곳에서 우리는 세계와 함께 하게 될 것이다.

-조셉 캠벨, 이윤기 역, 세계의 영웅신화, 1996, 대원사, 29.

 

 

지켜야 할 사람이 생기자 그녀는 더욱 강해진다. 하쿠는 지금 싸우고 있다. 자신의 이름을 되찾기 위해,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잃어버린 나를 되찾기 위해. 나의 꿈을 가두는 나와의 싸움, 나를 잊은 나와의 싸움, 나를 나이지 못하게 하는 치명적인 헛것들(종이 새들)과의 싸움. 하쿠는 끊임없이 자신을 찾으려 하지만 난 역시 안 돼라는 마음의 벽에 부딪힌다. 위험에 빠진 친구를 구해주는 임무는 애초에 센의 미션리스트에 속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녀는 아무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는 무서운 곳에서 처음으로 친구가 되어준 하쿠를 구해주려 한다. 나락에 빠진 자신과 부모님을 구하기도 벅찬 센-치히로는 자신이 구해줘야만 할 것 같은 세 명의 친구까지 덤으로 얻게 된다. 서구의 옛이야기에서 영웅은 주로 동굴이나 성을 지키고 있는 을 죽임으로써 승리를 구가하지만, 센은 용을 죽이지 않고 오히려 용을 속박하고 있는 올가미를 풀어주려 한다. 센이 하쿠의 고통을 함께 앓을 때, 그녀는 어느새 자기를 잊은 채로 하쿠의 존재에 물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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