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자신의 이방선교
상 아래 개들도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가 이방의 나라 페니키아에 직접 갔다는 사실을 마가복음이 보고하고 있다. 게네사렛에서 두로로 갔다가, 시돈을 거쳐 다시 골란고원을 넘어 데카폴리스로 에둘러 갈릴리바다 가버나움으로 되돌아오는 여정이 묘사되고 있는 것이다. 예수는 이미 이방선교를 몸소 실천한 국제적 사상가였다. 이방선교는 바울의 전유물이 아니었다.❞
예수는 페니키아문명권에 직접 갔는가? 두로(Tyre)와 시돈(Sidon)에 간 적이 있는가? 이러한 나의 질문, 그 자체를 많은 독자들이 낯설게 느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은 예수의 삶을 기록한 복음서(福音書)에 명료하게 주어져 있다. 자아! 마가복음 제7장을 펼쳐보라. 개역한글판을 정정함이 없이 그대로 여기 인용하겠다.
예수께서 일어나사, 거기를 떠나 두로 지경으로 가서 한 집에 들어가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 하나 숨길 수 없더라. 이에 더러운 귀신들린 어린 딸을 둔 한 여자가 예수의 소문을 듣고 곧 와서 그 발 아래 엎드리니,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자기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주시기를 간구하거늘, 예수께서 이르시되,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 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하시매, 여자가 집에 돌아가 본즉, 아이가 침상에 누웠고 귀신이 나갔더라. 예수께서 다시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시매, … (막 7:24~31).
지금 4복음서 중에서 가장 먼저 성립한 마가복음서의 저자가 예수의 행적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는 지리적 표상은 그 스케일이 거대하다. 예수는 분명 맨발로 걸어다녔을 텐데, 그러기에는 한 큐에 움직이기 어려운 거대한 지역의 여정을 한순간에 지나치듯이 묘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단화(短話)의 시작구인 ‘거기를 떠나’의 ‘거기’는 갈릴리호수 북단의 서쪽에 위치한 게네사렛(Gennesaret)이다. 가버나움에서 갈릴리 해변을 따라 서남쪽으로 15리 정도 떨어져 있다. 예수의 여정은 일단 이 게네사렛을 출발하여 서북쪽으로 약 200리 가량을 가면 나오는 지중해 해변의 항구도시 두로(Tyre)에 도착했다. 거기서 한 소녀의 치유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그리고 다시 지중해 해변을 따라 한 150리를 걸어 올라가 당시 지중해연안의 가장 중심적 역할을 했던 화려한 항구도시 시돈(Sidon)에 도착한다.
시돈은 페르시아제국의 함대가 있었던 도시였으며 세계에서 가장 선진의 유리 제조업이 발달한 도시였다. 아마도 우리나라 경주 왕릉에서 출토되는 유리병의 족보도 이 시돈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이다. 예수는 다시 이 시돈에서 내륙지방으로 내려오면서 골란고원을 가로지르고 트랜스요르단지역의 데가볼리(데카폴리스, Decapolis)를 경유하여 다시 갈릴리바다를 서쪽으로 에워싸고 북단의 가버나움 지역으로 되돌아오고 있다.
우리나라 지형으로 말하자면 서울에서 출발하여 해주항으로 갔다가, 다시 해변 따라 평양 부근의 남포항까지 북상하였다가, 다시 내륙지방으로 태백산맥을 건너 금강산으로 가서 속초, 강릉, 삼척까지 내려갔다가, 강원도ㆍ경기도를 통과하여 서울로 돌아오는 여정의 느낌인 것이다. 지금의 국가개념으로 말해도 이스라엘 북부에서 레바논, 시리아, 요르단을 거쳐 다시 갈릴리 북단으로 돌아와야 한다.
불트만은 이 단화가 Q자료에 수록된 가버나움 백부장의 종을 치유하는 설화와 함께 원격치유(Fernheilung)를 주제로 하는 전형적 전기적 아포프테그마(Apophthegma)【간략한 맥락 속에서 전개되는 예수의 말씀들, 불트만은 아포프테그마를 논쟁 및 사제 대화(conflict and didactic sayings)와 전기적 아포프테그마(biographical apophthegms) 두 종류로 나누었다. 전자에 24개, 후자에 22개를 할당하였다.】에 속하는 문학장르이며, 아포프테그마에 있어서는 전혀 시간ㆍ공간을 나타내는 보도가 리얼한 상황에 기초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따라서 예수의 ‘북방여행’은 추리된 공상(phantasy)이라고 단정한다(『공관복음서전승사』, 허혁 역, 75). 불트만의 이러한 주장에 일리가 있다고 하더라도, 마가의 기술은 당대의 어떤 구전에 일정한 기초가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마가시대 사람들의 예수인식은 이미 예수의 활동영역이 갈릴리지역과 페니키아문명을 연결하는 광범위한 북부지역공동체를 전제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고 있다. 최근의 스칼라십(Scholarship, 학문)은 예수운동이 당대에 이미 페니키아문명권에까지 전파되었다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숙지한다.
‘아무도 모르게 하시려다’라는 것은 예수가 자기를 잘 아는 갈릴리 가버나움 지역에서는 편하게 쉴 수가 없으므로, 조용히 지내고 싶을 때에는 타국의 대도시로 잠입하는 관행이 평소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러나 ‘숨길 수 없더라’라는 것은 이미 이방의 대도시에까지 예수의 명성이 자자했다는 현실적 상황이 반영되어 있다. 이에 두로에 나타난 여인은 누구였던가?
‘그 여자는 헬라인이요, 수로보니게 족속이라.’ 그 여자는 문화적 소양으로는 국제적 감각의 헬라인이었으나, 핏줄로 말하면 ‘수로보니게’ 사람이라는 것이다. 불행하게도 개역판의 발음표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눈치를 못 채고 간과해버리지만, ‘수로보니게(Syrophoenician)’란 ‘시리아계열의 페니키아인’이란 뜻이다.
페니키아는 아프리카 북부 카르타고(Carthage) 지역에 식민지를 개척했다. 그러니까 제2차 포에니전쟁(BC 218~201)에서 코끼리부대까지 휘몰아 알프스산맥을 넘어 로마로 진군하여 로마를 공포의 도가니로 빠뜨린 한니발 장군(Hannibal, BC 247~c.181)이 바로 페니키아인이었다. 이 아프리카 북부지역의 페니키아사람들을 흔히 리비오페니키아인(the Libyo-Phoenicians)이라고 불렀는데, ‘수로보니게’란 이에 대하여 시리아계 페니키아인을 지칭한 것이다.
이 시리아페니키아 여인과 예수의 대화는 아람어로 이루어졌을 가능성도 있지만, 예수가 이 여인과 직접 희랍어로 소통했을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는다. 예수는 이미 당시의 희랍문명에 깊은 조예가 있는 인물로서 재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 또 하나의 시돈의 석관, 이스탄불 고고학박물관 소장품, BC 4세기 중엽, 고인이 된 주인의 영면을 애통해하는 18명의 여인들이 석관 삥 둘러 조각되어 있는데, 석관 그 자체가 이오니아식 석주회랑의 그리스 신전 모습이다. 그 석주 사이사이로 여인들이 서서 우는데 그 표현이 우아하기 그지 없다. 예수보다. 4세기나 앞선 이 페니키아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 문명의 찬란한 영화를 엿볼 수 있다. 바로 예수에게 나타난 ‘수로보니게’ 여인이 이 중의 한 여인과도 같은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 여인은 예수에게 귀신들려 집 병상에 누워있는 딸의 치유를 호소한다. 그러나 예수의 대답은 냉혹하다.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여기 ‘자녀’와 ‘개들’의 관계를 ‘유대인’과 ‘이방인’의 관계로 명료하게 규정해버리는 것은 문제가 있으나, 하여튼 예수는 인정머리 없게, 자기에게 구원의 손길을 요청하는 타국의 교양있는 여인을 ‘개새끼’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정된 공동식사테이블이 전제되어 있고 그곳에서 사람들이 앉아 먹을 수 있는 음식의 양도 결정되어 있다. 이것을 집에서 키우는 개새끼들에게 던져 줄 수는 없다는 것이다. 여기 ‘개새끼 (kynarioi)’는 들판의 야생 늑대가 아니라, 집에서 식탁 주변을 맴도는 강아지(puppies)를 지칭한다. 따라서 이 표현은 알레고리가 아닌 직유(Vergleich)이다.
이러한 냉혹한 예수의 답변에 이 교양있는 페니키아 여인은 예수의 논리를 이용하여 예수를 제압한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상 아래 개들도 아이들의 먹던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페니키아 여인의 논리는 강렬한 자기주장을 나타내면서도 동시에 유머와 위트와 신념(faith)과 겸손(humility)을 은은하게 표현하고 있다. 예수의 말씀 속에도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라는 표현은 이미 유대인의 구원의 특권에 대한 시간적 한정성을 암시하고 있다. ‘먼저’ 먹게는 하겠지만, 그들이 먹기를 거부할 때는 그 구원의 밥상은 이방인에게 돌아간다는 것이다. 예수는 자신의 패배를 솔직히 시인한다. “이 말을 하였으니 돌아가라! 귀신이 네 딸에게서 나갔느니라.”
예수는 기적적 치유의 행위를 하지 않았다. 오직 말씀으로 원격치유를 행한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오직 페니키아 여인의 믿음이었다. 그 믿음이 좁은 예수운동의 동아리나 유대인의 민족의식에 갇혀있었던 것이 아니라, 이미 이방인에게 개방되어 있었다는 맥락에서 예수는 이미 세계인의 예수였다. 이방선교가 사도 바울의 전유물이 아니었던 것이다.
▲ ‘거룩한 산’ 헤르몬을 바라보다. 2814m, 만년설로 뒤덮인 이 산은 요단강의 시원을 이룬다. 장엄한 헤르몬산은 이스라엘 정복의 북쪽 경계였다(신 3:8). 안티레바논산맥의 꼭대기로 동북, 서남으로 30킬로 뻗어있다. 시돈 사람들은 이 헤르몬산을 시론이라 불렀고, 아모리 사람들은 스닐이라 불렀다(신 3:9). 이 산은 가나안의 신 바알(Baal), 희랍신 판(Pan)과도 관련 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변모한 ‘높은 산’(막 9:2)도 헤르몬산이라고 추정한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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