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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한글역주, 5장 조선왕조 행실도의 역사 - 유향의 『효자전』에서 곽거경의 『이십사효』까지 본문

고전/효경

효경한글역주, 5장 조선왕조 행실도의 역사 - 유향의 『효자전』에서 곽거경의 『이십사효』까지

건방진방랑자 2023. 3. 30.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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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향의 효자전에서 곽거경의 이십사효까지

 

 

효행록에서 선정된 인물들이 삼강행실도에도 계속 등장할 뿐 아니라(선정과 배열에 출입이 있다), 그 이야기의 양식적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효행록의 전편에 ‘24인의 효행을 아들 권준이 실었다 했는데, 많은 사람들이 권준이 독창적으로 중국 고사에서 뽑아 실은 것처럼 이야기하는데 이십사효라는 것은 이미 당말(唐末)에서부터 시작되어 송대에는 확고하게 정착된 일종의 설화 문학양식이다. 이미 한나라 때의 유향(劉向)효자전(孝子傳)을 지은 이래 벽암록(碧巖錄)첫 번째 공안의 주인공이며 우리나라에도 불사리(佛舍利)를 보내곤 했던(신라 진흥왕 10) 양무제(梁武帝)를 비롯하여 많은 사람들이 효자전을 지었다.

 

이러한 효자전류에서 발췌하여 24인을 모은 ‘24()’라는 문학장르가 이미 당말에 정착된 것으로 보인다. 돈황의 장경동(藏經洞)에서 고원감대사이십사효압좌문(故圓鑑大師二十四孝押座文)’이라는 문서가 발견되었는데대영도서관과 불란서국립도서관에 수장됨. 번호는 S7, S3728, P3361 그 작자가 당말오대의 원감대사(圓鑑大師) 운변(雲辯, ?~951)으로 사료되고 있다. 이미 이 속에 순(), 왕상(王祥), 곽거(郭巨), 노래자(老萊子) 등의 효자이야기가 수록되어 있어 24효의 한 원형임을 말해주고 있다.

 

1950년대 이래 중국에서 발굴된 송나라 때의 많은 분묘 속에서 24효도(二十四孝圖)의 벽화가 발견되는 것으로 보아 ‘24효도의 개념이 이미 송나라 때는 매우 유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분묘 속에 효자도를 그려넣는 것은 분묘 속의 주인공이 효자이기 때문에 사후의 세계에서도 복을 받으리라는 것을 기원하는 상징이기도 하고, 또 분묘 속의 효자들이 악귀들을 내쫓아버린다는 방술의 의미도 들어있다. 24효가 독립된 서물로서 일반인들에게 애독된 것 중 가장 유명한 것은 원나라 때 대전(大田)의 사람 곽거경(郭居敬, 는 의조義祖)이 편찬한 이십사효(二十四孝)인데 이 책이야말로 중국의 명ㆍ청대와 동아시아문명권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

 

24명을 누구로 볼 것이냐, 그 선정대상과 순서는 사람들에 따라서, 그리고 판본에 따라서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이미 한나라 유향의 효자전에 거론된 순()ㆍ곽거(郭巨)ㆍ정란(丁蘭)ㆍ동영(董永)은 빼놓지 않고 등장하며 기본 인물들을 공유한다. 곽거경(郭居敬)이십사효에 등장하는 인물은 다음과 같다:

 

우순(虞舜)ㆍ한문제(漢文帝)ㆍ증삼(曾參)ㆍ민손(閔損)ㆍ중유(仲由)ㆍ동영(董永)ㆍ염자(剡子)ㆍ강혁(江革)ㆍ육적(陸績)ㆍ당부인(唐夫人)ㆍ오맹(吳猛), 왕상(王祥)ㆍ곽거(郭巨), 양향(楊香)ㆍ주수창(朱壽昌)ㆍ유금루(庾黔婁)노래자(老萊子)ㆍ채순(蔡順)ㆍ황향(黃香)ㆍ강시(姜時)ㆍ왕포(王褒)ㆍ정란(丁蘭)ㆍ맹종(孟宗)ㆍ황정견(黃庭堅)

 

그리고 우리나라 효행록전편의 24인은 곽거경의 이십사효와는 조금 다른 계통의 판본에서 유래한 것인데 다음과 같다.

 

우순(虞舜)노래자(老萊子)ㆍ곽거(郭巨)ㆍ동영(董永)ㆍ민손(閔損)ㆍ증삼(曾參)ㆍ맹종(孟宗)ㆍ유은(劉殷)ㆍ왕상(王祥)ㆍ강시(姜時)ㆍ채순(蔡順)ㆍ육적(陸績)ㆍ왕무자(王武子)ㆍ조아(曹娥)ㆍ정란(丁蘭)ㆍ유명달(劉明達)ㆍ원각(元覺)ㆍ전진(田眞)ㆍ노고(魯姑)ㆍ조효종(趙孝宗)ㆍ포산(鮑山)ㆍ한백유(韓伯瑜)ㆍ염자(琰子)ㆍ양향(楊香)

 

권준의 아버지 권보가 위의 24효를 보고 다시 38효를 보탰다고 하는 것은, 당시 이미 송ㆍ원대에서 유행하던 다른 판본의 효행기록에서 권보의 24효가 누락한 케이스들을 골라 모았다는 뜻이며 전혀 독창적인 컬렉션은 아니다. 고려말에 권가에서 편찬한 효행록에서부터 이미 판화가 삽입되어 있었는데, 그것도 이미 중국 24효가 대개 판화를 동반했던 것임을 본뜬 것이다. 그러나 현존하는 조선초기의 권근의 주석판본에는 판화가 없다. 주석작업을 하면서 판화를 누락시킨 듯하다. 가학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효행록이 보다 진지하게 인식되기를 바랬을 것이다.

 

 

 

 

인용

목차

원문 / 呂氏春秋』 「孝行/ 五倫行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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