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경』의 ‘경’은 오경박사제도 이후의 경 개념일 수 없다
공자는 하ㆍ은ㆍ주 삼대에 대한 뚜렷한 역사의식이 있었다. 그리고 역사의 교훈을 통하여 미래를 예견하는 통찰력이 있었다. 그래서 『시(詩)』, 『서(書)』를 편찬했고, 『춘추(春秋)」라는 역사서를 편찬했다. 다시 말해서 유교만이 중국이란 무엇이며 중국의 역사는 어떻게 이어져가야 하는가에 대한 역사적 통찰을 제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막연하지만 선진시대에 ‘육예(六藝)’라는 말이 있었다고 사료되지만, 시(詩)ㆍ서(書)ㆍ예(禮)ㆍ악(樂)ㆍ역(易)ㆍ춘추(春秋)를 ‘육경(六經)’이라는 말로 지칭한 것은 『장자(莊子)』 「천운(天運)」편에 나오는 공자의 말이 최초의 용례이다. 그러나 과연 「천운(天運)」 편이 언제 만들어진 문헌인지를 단정하기는 매우 어렵다. 하여튼 보통 ‘육경’이라는 개념에서 문서화되기 어려운 ‘악(樂)’을 제외하고 나머지 ‘오경(五經)’이 중국의 권위있는 캐논으로서 그 지위를 부여받은 것은 역시 한무제 때 ‘오경박사(五經博士)’ 제도가 설치되면서부터 일 것이다. 물론 이 ‘오경’이라는 개념 속에 『효경』은 들어가 있질 않다.
우리가 중국의 경전을 보통 ‘십삼경(十三經)’이라 말하지만, ‘십삼경’의 개념은 송대에나 와서, 당나라 때의 개성석경(開成石經) ‘십이경(十二經)’에 『맹자(孟子)』를 보태어 성립한 것이며, 그 이전에는 매우 유동적인 셈법이 많았다. 한대에도 ‘칠경(七經)’이라는 말이 유행했고, 당대에도 ‘구경(九經)’이라는 말이 가장 보편적으로 쓰였으며, ‘구경’에 무엇을 보태느냐에 따라 ‘십경(十經)’, ‘십일경(十一經)’, ‘십이경(十二經)’ 등의 말이 존재했다. 하여튼 십삼경이라는 중국의 경전이 바이블로서 중국역사에 존재했다는 것은 하나의 환상에 불과하다. 그것은 송대 이전에는 해당되기 어려운 말이다.
그러니까 경전의 권위를 가지고 말한다면 한무제 때 ‘오경박사’의 ‘오경’ 이전에는 ‘경(經)’을 말하기 어려운 것이다. ‘경’이라 말해도 그 ‘경’은 국교의 정경으로서의 권위를 갖는 경(바이블)이 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그리고 유교가 실제로 중국사회 통치이념으로서 구체화된 것은 왕망(王莽, BC 45~AD 23) 이후의 사건이다. 왕망은 실제로 『주례(周禮)』라는 유교경전에 의거하여 이상적 유교국가(an ideal Confucian state)를 건설하려는 황당한 꿈을 유향(劉向)ㆍ유흠(劉歆) 부자와 함께 실현시키려고 노력했다. 그의 신(新)왕조의 꿈은 좌절되었지만, 그 꿈은 후한제국의 정신적 기초가 되었다.
그러니까 선진시대에, 그러니까 통일제국이 출현하기 이전에 서명으로서 ‘경(經)’ 자가 붙은 『효경』을, 오경박사 제도 이후의 경전과 같은 개념의 최초의 용례로서 인식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분명한 비약이 있다. ‘효경(孝經)’이라는 서명은 『효경』이라는 문헌 자체 내에 나오는 말을 축약시킨 단순한 용례일 수도 있다. 고문효경 「삼재장(三才章)」 제8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다.
대저 효란 하늘의 벼리이요, 땅의 마땅함이요, 백성이 행하여야 할 바이다. 그것은 천지의 벼리이니 백성이 본받지 않을 수 없다.
夫孝, 天之經也, 地之誼也, 民之行也. 天地之經, 而民是則之.
‘효경’이란 바로 ‘효(孝)가 하늘의 벼리[經]’이다. ‘효가 하늘과 땅[天地]의 벼리[經]’이다라는, 『효경』내에 존재하는 구문을 축약시켜 그 책명으로 삼은 편의상의 이름이며, 그것을 곧바로 ‘효의 경전’이라는 식으로 해석하기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효경’이란 ‘효의 벼리’, 그러니까 효의 원칙이나 방법을 제시한 책이라는 뜻이 그 원초적인 의미일 것이다. 최근에 마왕퇴(馬王堆) 3호 한묘에서 출토된 고일서(古佚書)의 이름이 『경법(經法)』이니, 『십육경(十六經)』으로 되어 있는 것도 이러한 ‘효경’의 용례와 의미의 맥을 같이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효경』은 과연 언제 만들어진 것인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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