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공(至公)한 거사(去私)의 제국
여기 『여씨춘추(呂氏春秋)』 「십이기」의 시령사상이 우리에게 전하려고 하는 것은 정치는 근본적으로 타이밍의 예술이라는 것이다. 시령의 사상은 천지자연(天地自然)과 인간(人間)의 하나됨을 말하고 있다. 하늘의 기가 하강하고 땅의 기가 상등(上騰)하면서 생물이 맹동(萌動)하는 맹춘(孟春)의 달에는 시생(始生)하는 천지의 기운에 맞추어 전성(全性: 본성을 온전하게 함)하고 전덕(全德: 덕을 온전하게 함)해야 하며(「본생本生」 편), 욕망을 조절하여 장생의 길을 터득해야 하며(「중기重己」 편), 무편무당(無偏無黨)의 공도(公道)를 실천함으로써 천하를 한 사람의 사심으로써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천하의 천하가 되게 하며(「귀공貴公편), 사심(私心)을 버려야 한다(「거사去私」 편).
하늘은 사적인 마음으로 만물을 덮지는 않는다[天無私覆也]. 땅은 사적인 마음으로 만물을 품지 않는다[地無私載也]. 해와 달은 사적인 마음으로 불을 밝히지 않는다[日月無私燭也]. 사계절은 사적인 마음으로 제멋대로 움직이지 않는다[四時無私行也]. 그 자연스러운 덕을 골고루 베풀어 만물이 다 같이 성장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다[行其德而萬物得遂長焉].
황제(黃帝)가 일찌기 말하지 않았던가? 아름다운 음악이라도 그 도가 지나쳐서는 아니 되고, 화려한 색채라도 그 도가 지나쳐서는 아니 되고, 가볍고 따스한 옷이라도 그 도가 지나쳐서는 아니 되고, 향기를 흠상해도 그 도가 지나쳐서는 아니 되고, 맛있는 음식이라 해도 그 도가 지나쳐서는 아니 되고, 쾌적한 주거라도 그 도가 지나쳐서는 아니 된다고, 요(堯) 임금에게 아들이 열이나 있었어도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지 아니 하고 순(舜)에게 주었고, 순 임금에게 아들이 아홉이나 있었어도 아들에게 제위를 물려주지 아니 하고 우(禹)에게 주었다. 이 모든 것이 지공(至公)의 존중이다!
겉으로는 자연(Nature)과 인간(Human Society)의 합일을 말하고 있는 시령(時令)의 자연철학 같이 들리지만 그것이 소기하고 있는 바는 지공무사(公無私)한 새로운 제국의 질서를 설파하고 있다는 데 『여씨춘추(呂氏春秋)』의 위대한 소이연이 있다. 과거의 정치체제와는 다른 사적 권력의 개입이 없는 새로운 질서, 사유(私有)가 없는 제국의 질서, 그렇지만 이러한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군주를 필요로 한다는 현실적 요청은 하나의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일인(一人)이 소유하는 천하가 아닌, 천하가 소유하는 천하[天下非一人之天下也, 天下之天下也], 과연 이러한 천하를 어떻게 일인(一人)이 없이 창조한단 말인가?
『여씨춘추(呂氏春秋)』가 성립할 즈음에는 이미 강력한 진왕 정(政) 한 사람[一人]에 의한 제국의 제패가 눈앞의 현실로서 그려지고 있었다. 강력한 군주와 지공무사한 정치체제의 결합은 결국 군주의 무위(無爲)라는 도ㆍ법적 사유로 귀착된다. 이것이 후대에 황로사상(黃老思想)이라고 부르게 되지만 그 원형, 그 생생하고 진실한 요청의 실상을 우리는 『여씨춘추(呂氏春秋)』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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