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효경한글역주, 고문효경서 - 4. 경우운~부지종언야(經又云~弗之從焉也) 본문

고전/효경

효경한글역주, 고문효경서 - 4. 경우운~부지종언야(經又云~弗之從焉也)

건방진방랑자 2023. 4. 2. 0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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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경우운~부지종언야(經又云~弗之從焉也)

 

 

또한 효경광요도장본문에, “사회적 풍조가혹은 천자가라고 말해도 좋다. 맥락상 아버지보다 더 높은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해주어야라는 뜻이 있다 그 아버지를 존경해주어야 아들이 기뻐 아버지를 따르고, 그 임금을 존경해주어야 신하가 기뻐 임금을 따른다라는 구절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도 숙손가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신설(新說)을 세우는 자들이 많다. 그들이 생각하기를, 임금과 아버지가 스스로 각자 임금과 아버지의 도를 실천해야만, 신하나 아들된 사람들이 비로소 기뻐 따르게 된다고 주장한다.
經又云: “敬其父則子悅, 敬其君則臣悅.” 而說者以爲各自敬其爲君父之道, 臣子乃悅也.
 
그러나 나 공안국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임금이 비록 임금답지 못하다 하더라도 신하는 신하됨을 끝내 포기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요, 아버지가 비록 아버지답지 못하다 하더라도 자식은 자식됨을 끝내 포기해서는 아니 되는 것이다. 만약 임금과 아버지가 임금과 아버지 됨의 도를 공경하지 않는다고 해서, 신하와 자식이 곧 반란을 일으키거나 분노를 터뜨려서 되겠는가? 이런 설은 도대체 통용될 수 없다. 나는 전(: 주석)을 짓는 데 일체 이 따위 속설들은 따르지 않는다.
余謂不然. 君雖不君, 臣不可以不臣; 父雖不父, 子不可以不子. 若君父不敬其爲君父之道, 則臣子便可以忿之邪? 此說不通矣. 吾爲傳, 皆弗之從焉也.

 

앞에서부터 전개해온 논지는, 위로부터의 부과나 강요나 세뇌가 아니라 노래가 유행하듯이 민간레벨에서의 효문화의 자발적 소통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여기 논지도 형식상으로는 그러한 논리에 위배되지 않는다. 신하된 자, 아들된 자의 효도가 윗사람에 대한 상대적ㆍ공리적 관계가 아니라, 자기 존재의 내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옳다. 그러나 그 자발성ㆍ촉발성을 궁극적으로 윗사람에 대한 무조건적 충성으로 귀결시키고 있다는 데 공서의 논리의 결함이 엿보일 뿐 아니라, 그 논리를 지배하는 가치관의 보수성이 엿보이는 것이다. 순자(荀子)의 합리주의 정신은 찾아볼 수 없고, 단지 철저한 효의 충화(忠化)만 남게 되는 것이다.

 

공서의 논리를 따라가다 보면 마치 우리나라 작금의 보수 언론의 논설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겉으로는 매우 설득력 있고 보편적이고 점잖은 듯이 보이다가 나중에는 결국 빨갱이 새끼들아니면 체제에 충성할 줄 모르는 새끼들에 대한 욕지거리로 끝나고 만다. 그러한 사람들을 만나봐도 똑같다. 인간적으로는 매우 고상하고 훌륭한 듯한데 전인적(全人的)인 합리적 판단이 결여되어 있다. 대부분이 빨갱이에게 당한 쓰라린 가족력이 있다든가, 종교적 이념에 세뇌당하여 있다든가, 권력에 아부하여 출세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든가 하는 실존적 상황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빨갱이들이 잘하는 짓은 없다 해도 그 빨갱이가 나의 실존으로부터 객화될 수 없는 한 부분이라는 대자대비의 마음이 없이 어찌 이 시대의 지성이라 말할 수 있겠는가! 오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대며, 겉옷을 빼앗거든 속옷까지 벗어주라 했는데, 그토록 원수를 사랑하지 못할지언정 나와 이념이나 비젼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포용하여 이 민족의 미래를 전체적으로 관망할 수 없다면 어찌 그런 자들이 신문의 논설을 쓸 수 있으리오!

 

 

공전을 전체적으로 살펴보면 제서(諸書)를 인용하여 무리하게 논지를 연결시키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출전의 횟수를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예기55, 관자51, 주역16, 좌전16, 상서11, 논어(論語)11, 모시(毛詩)4, 주례4, 국어(國語)4, 공자가어4, 공양전3, 대대례기2, 노자2 정도이다. 그런데 예기관자의 인용이 특별히 많은 것을 볼 수 있다. 필자는 예기를 통하여 유가의 효치주의ㆍ예치주의(禮治主義)를 근간으로 하면서도 관자를 통하여 유가정통주의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법치주의ㆍ공리주의적 관점을 수용하고 있다. 예기관자와 같은 잡다한 서물을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이 벌써 한대의 분위기는 벗어났다는 느낌을 준다.

 

후한말부터 위진남북조시대에 걸친 전란의 계속, 북방 유목민족의 침입, 권신의 발호, 관기(官紀)의 문란 등으로 사회적ㆍ정치적 혼란이 가중되어가는 분위기 속에서 점점 개인주의ㆍ자유주의ㆍ허무주의ㆍ향락주의에 빠져가는 민심의 향배를 걱정하며, 민간에서 효제예악(孝弟禮樂)의 센세이셔날(sensational)한 자발적 풍조를 일으켜, 그것을 강력한 중앙집권적 군주권력에의 충성으로 연결시키고 유교의 도덕사상에 의한 강력한 지배체제를 확립하고자 하는 어떤 비젼의 사나이가 날조한 작품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생각해본다. 그러나 날조라도 인사동 스캔들보다는 더 정밀한 날조라고 보여지며, 고문효경에 대한 최초의 주석이라는 의미에서 그 가치는 손상되지 않는다. 공전이 간단명료한 훈고에 그치지 않고 구질구질한 의리(義理)를 부연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설명 안 해도 될 것을 불필요하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다는 것 등등으로 보아 한대의 주()라는 느낌보다는 그 후대의 소()의 양식을 밟고 있다고 사료된다. 이러한 측면에서도 공서를 공안국 본인의 작품이라고 강변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상으로 공서를 마치겠으나 본문에 대해서도 기존의 주석을 나열하는 번쇄함에 빠지지 않고 간결하게 나 자신의 생각을 전달하여 21세기를 살아가는 독자들 스스로 그 정확한 의미를 파악하게 만드는 데만 주력할 것이다. 한 한국사상가의 독자적인 주석으로 이해해주었으면 한다. 판본은 인치본(仁治本, 1241)과 청가정본(淸家正本, 1781), 지부족재총서(知不足齋叢書)을 절충하였다전술하였듯이 국립중앙도서관 소장자료 중 조선총독부고서 청구기호 古古1-29-72’로 되어 있는 공안국전(孔安國傳) 고문효경(古文孝經)이 인치본에 가장 가깝다.

 

나의 한글번역에 관해서는 논어한글역주1권에 있는 번역론을 참고해주었으면 한다.

 

 

봉혜의 효심은 가이없어라!

삼소(三蘇)라 하면 소순(蘇洵)과 그의 두 아들 소식(동파)ㆍ소철을 가리키지만 우리나라 최근세에도 삼소에 맞먹는 삼변(三卞)이 있었다. 변영만ㆍ변영태ㆍ변영로 삼형제를 두고 하는 말이다. 수주(樹州) 변영로선생의 외손자되시는 분이 나와 평소 왕래가 있는데 어느 날 글 쓰는데 너무 수척해 보인다 하며 당신이 양평시골에서 키우시는 토종 암탉 한마리를 과먹으라고 가져오셨다. 그런데 상자를 열자마자 이놈이 훨훨 날아가더니만 나흘 동안이나 소식이 없었다. 그런데 나흘 후에 다시 마당에 나타났는데 이번에는 고양이에게 쫓기고 말았다. 그런데 이 닭이 하늘 높이 봉황처럼 나르는 것이 아닌가? 집마당 10m나 되는 측백나무 꼭대기로 올라가 버렸다. 그곳에서 수행승처럼 꼼짝 않고 단식하며 사흘을 버티더니 다시 내려왔다. 그리고 이 땅에서 강렬한 기운을 발하며 고양이까지 제압해 버리고 주인행세를 하기 시작했다. 하도 그의 행동이 당당하고 기이하여, 나는 논어(論語)에 나오는 공자의 탄식을 본떠 봉혜(鳳兮)’라 이름지었다.

나는 봉혜를 기르면서 대자연 생생지리(生生之理)를 터득했다. 봄이 되어 대지가 준동(蠢動)키 시작하자 봉혜는 알을 품었다. 열두 알을 품었는데 스무 하루동안 꼼짝 않고 내가 손수 지푸라기로 만들어준 둥지를 지켰다. 나는 주역복괘(復卦)에 나오는 복기견천지지심호(復其見天地之心乎)’의 의미를 되새겼다. 천지대자연의 생물지심(生物之心)이 봉혜의 마음을 움직인 것이다. 생명을 잉태하지 아니하고서는 못 배기는 천지의 마음이여! 열 두개 알 중 하나는 초기에 깨졌고 다섯은 본시 무정란이었다. 하나는 껍질을 깨지 못하고 막판에 죽었으나 드디어 다섯마리가 부화되는데 성공했다.

이 책의 원고가 무르익어갈 무렵이었고 나는 봉혜와 마지막 출산의 씨름을 같이 했다. 봉혜의 따사로운 체온이 삐악삐악 병아리 소리를 우리에게 전해줄 즈음 나도 효경을 탈고했다. 다섯 마리의 새생명이 이 드넓은 천지간에 모습을 드러낸 그 최초의, 감격적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봉혜의 효심은 가이 없어라!

 

 

인용

목차

원문 / 呂氏春秋』 「孝行/ 五倫行實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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