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가죽을 뚫는 활쏘기를 비판하다
3-16.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활쏘기는 과녁의 가죽을 뚫는 것을 장끼로 삼지 않고, 힘을 쓰는 운동은 획일적 기준으로 그 등급을 매기지는 않는다. 이것이 곧 옛사람의 도이다.” 3-16. 子曰: “射不主皮, 爲力不同科, 古之道也.” |
이 장의 해석을 문법적으로 고주와 신주에 큰 차이가 있으나 그 철학적 함의는 크게 차이가 없다. 고주는 ‘사부주피(射不主皮)’와 ‘위력부동과(爲力不同科)’를 고지도(古之道)의 두 개의 다른 사례로서 병치시켜 두 문장으로 만들었고, 신주는 이 양자를 한 사례를 설명하는 한 문장으로 연결시켰다. 따라서 ‘위력부동과(爲力不同科)’는 ‘사부주피(射不主皮)’를 설명하는 조건절로 종속되고 만다. 나는 신주의 해석을 존중하면서 고주의 기본 틀을 수용하였다.
우선 신주의 입장을 해설해보자! 여기 활쏘기는 물론 『의례』 등에서 규정하고 있는 향사례(鄕射禮)에 관한 것이지만 공자의 시대에 향사례의 정형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의례』에서 규정하는 제식적 향사례나 대사는 후대에 그 제식 적 절차가 고착되면서 보다 자세히 기술된 것이다. ‘사부주피(射不主皮)’라는 것은 활을 쏘는 방식에 관한 논의다. 즉 활을 쏠 때, 과녁에 적중한다는 것은 물론 활쏘기의 최대목적이 아닐 수는 없다. 그러나 과녁에 적중하되, 과녁을 그려놓은 가죽포대기를 뚫고 나가느냐 안 나가느냐에 더욱 활쏘기의 의미를 두는 방식으로 활쏘기의 인식이 변천되어 갔다는 것이다【우리말의 ‘과녁’도 관혁(貫革)에서 유래된 말이다】. 즉 이것은 ‘과녁의 적중’이라고 하는 섬세한 신사적 겨룸의 문제 보다는 ‘과녁가죽의 뚫음’이라고 하는 힘의 과시에 보다 중요한 의미가 부과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실태[今之道]라는 것이다. 사실 이 ‘가죽 뚫음’은 현실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왜냐하면 당시 병사의 갑옷이 가죽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그 가죽을 뚫는 힘이 있어야만 무기로서의 힘이 과시되기 때 문이다. 신주는 공자의 말을 이와 같이 해석한다: “활쏘기는 가죽을 뚫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힘을 쓰는 방식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때 ‘부동과(不同科)’의 과(科)를 주자는 ‘등(等, 같다)’으로 해석한다[科, 等也].
사람마다 힘을 쓰는 방식이 다른데 어찌 강한 힘의 과시만으로 활쏘기의 의의를 찾을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것은 주나라가 쇠퇴하여 예가 폐지되고 열국 들이 무력으로 다투어 다시 가죽을 꿰뚫는 힘의 과시만을 숭상하였으므로 공자가 탄식한 것으로 푼 것이다. 즉 패도의 시대의 도래에 대한 예언적 한탄인 것이다[周衰禮廢, 列國兵爭, 復尙貫革, 故孔子歎之].
꾸베르땡(Baron Coubertin, 1863~1937) 남작은 1914년 올림픽기를 헌납하면서 새로운 올림픽 모토를 내걸었다. 키티우스(Citius), 알티우스(Altius), 포르티우스(Fortius)! 더 빨리, 더 높이, 더 세게! 르 카프로 상징되는 이 모토는 인간의 신체적 능력의 개발이라는 측면에서 한동안 세계의 체육인들에게 고무적 의미를 지니는 말이었지만, 지금은 인간의 존엄성을 한낱 르카프의 도구로 전락시키는 엘리트 스포츠의 저주가 되고 말았다. 공자의 ’사부주피(射不主皮), 위력부동과(爲力不同科)‘는 이러한 엘리트 스포티즘에 대한 사회체육론적인 휴매니즘의 모토로 해석될 수도 있을 것이다. 활쏘기는 힘의 과시에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신사적인 참여과정과 그 페어플레이에 더 큰 예악(禮樂)적 의의가 있는 것이다. 포르티우스적인 관혁(貫革)이 그 무슨 의미가 있으리오?
그러나 이 구절을 역사적으로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활쏘기가 실제로 전사(戰士)의 생존권이 걸린 의무였던 공자의 시대에, 안일하게 이러한 ‘부주피(不圭皮)’의 주장을 했을 리가 만무하다는 가설도 세워볼 수가 있다. 다시 말해서 이 장은 활쏘기가 보다 향사(鄕士)들의 제식적 소일거리가 되었을 후대에 꾸며진 공자의 말일 수도 있으며, 비교적 후대에 속하는 픽션적 파편이 삽입된 것으로 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가설은 별 의미가 없다. 전국시대 내려오면서 활쏘기의 강력성은 계속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사부주피(射不主皮)’를 신주와 동일하게 해석하고, 일단 여기서 이문장 을 단락시킨다. 그리고 ‘위력부과(爲力不同科)’에 대해서는 새로운 해석을 내린다. ‘위력(爲力)’은 힘쓰는 일이다. 즉 인간이 몸으로 힘을 쓰는 신체적 운동은 그 과(科, 종류)를 달리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이다. 여자는 표창을 던지라고 하면 분명 남자보다 더 멀리 던질 수가 없지만, 차거운 물에 들어가 오래 견디기 시합을 하라면 남자보다 더 오래 견딜 수는 있다. 레슬링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이기기 어렵지만, 사격이나 양궁에서는 여자가 남자를 이기기는 어렵지 않다. 사람의 힘을 한 기준으로 평가하여 폄하하면 많은 사람을 적재적소에 쓸 수가 없다. 힘의 등급이 달라도 그 강ㆍ약의 스타일에 따라 사람을 유용하게 쓸 수 있는 것이다. 황간은 고례는 사람의 강약을 상ㆍ중ㆍ하 3등급으로 나누어 분별하여 썼는데, 주나라 말기에 오면서 이 삼과(三科)의 등급을 없애버리고, 강ㆍ약의 품성을 무시한 획일적인 기준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옛 도가 쇠퇴해졌다고 소(疏)를 달았다.
예로부터 ‘힘을 쓴다[爲力]’하는 것은 그 과(科)를 달리하는 것이다. 동일한 종류의 동일한 기준량의 힘만이 힘이 아닌 것이다. 인간의 힘이란 모두 제각기 그 과(科)를 달리하는 것이니, 그 과(科)에 따라 힘의 질과 양이 모두 동등하게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고지도(古之道)다. 옛사람의 도란 곧 이러한 인간의 다양한 재능에 대한 존중이요, 결과보다는 인간의 노력의 과정에 대한 윤리적 가치의 존중이다. 고지도(古之道)의 찬미는 곧 금지도(今之道)의 부정이 아니라, 고지도(古之道)의 미덕을 일부라도 보존하고 있는 금지도(今之道)에 대한 격려와 찬사의 말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위(爲)’는 거성이다. ○ ‘사부주피(射不圭皮)’는 『의례』 「향사례(鄕射禮)」에 나오는 문장이다【『儀禮注疏』 卷第十三, 十五b】. ‘위력부동과(爲不同科)’는 공자가 「향사례」의 뜻을 해석한 것이 이와 같다는 것이다. ‘피(皮)’는 가죽이다. 보통 천으로 과녁판(후侯)를 만들고, 그 한가운데 부분에 가죽을 붙여 과녁을 만드는데 그것을 보통 곡(鵠)이라고 한다. ‘과(科)’는 등급이다. 옛날에는 활쏘기로써 그 덕행을 관찰하고 과녁을 맞추는 것만을 주로 하고, 가죽 과녁을 뚫는 것을 주로 하지는 않았다. 대저 사람의 힘이란 강ㆍ약이 있어 등(等: 급이나 품성)이 같지는 않다. 『예기』에 말하기를 ‘무왕이 상나라를 이기고 군대를 해산하여 교(郊)에서 활쏘기를 베풀었다. 이에 가죽을 뚫는 활쏘기는 종식되었다.’【「악기(樂記)」에 있다】 하였는데, 바로 이것을 말한 것이다. 주나라가 쇠퇴하고 예가 폐하니, 열국이 군사력으로 다투고 다시 가죽 뚫기[貫革]를 숭상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탄식하신 것이다.
爲, 去聲. ○ 射不主皮, 鄕射禮文. 爲力不同科, 孔子解禮之意如此也. 皮, 革也, 布侯而棲革於其中以爲的, 所謂鵠也. 科, 等也. 古者射以觀德, 但主於中, 而不主於貫革, 蓋以人之力有强弱, 不同等也. 『記』曰: “武王克商, 散軍郊射, 而貫革之射息.” 正謂此也. 周衰, 禮廢, 列國兵爭, 復尙貫革, 故孔子歎之.
○ 양중립이 말하였다: “‘중(中)’은 배워서 능할 수 있는 것이지만, ‘역(力)’은 억지로 이르게 할 수 없는 것이다. 성인께서 옛 도를 말씀하시는 까닭은 오늘의 잘못됨을 바로잡기 위함이다.”
○ 楊氏曰: “中可以學而能, 力不可以强而至. 聖人言古之道, 所以正今之失.”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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