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임금에게 최선을 다하는 걸 아첨이라 비난하다
3-18.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임금을 섬김에 예를 다하는 것을 사람들이 아첨한다 하는구나!” 3-18. 子曰: “事君盡禮, 人以爲諂也.” |
예를 다함과 아첨은 전혀 별개의 사태이다. 인간의 선의의 표현으로서의 질서있는 삶은 아름다운 것이다. 그것은 수학자가 수의 질서를 아름답다고 느끼듯이, 물리학자가 우주의 질서를 아름답다고 느끼듯이, 생물학자가 생물을 지배하고 있는 놀라운 호미오스타시스(Homeostasis)의 질서를 아름답다고 느끼듯이, 공자는 인간세에 존속되는 예의 질서를 아름답게 느꼈을 것이다. 공자는 모든 인간에 대하여, 그 신분과 상황의 차이에 따라 예를 다하는 삶을 실천한 사람이었다. 그것은 비단 나에게서 높이 있는 자에게만 해당되는 사태는 아니었을 것이다. 그런데 공자가 윗사람을 섬김에 있어, 특히 군주(君主)와 같은 정치적 권력자에게 예를 다하는 정중한 태도를 취했을 때, 사람들은 그러한 공자의 행위를 권력자에게 아첨하는 것으로 곡해했던 것이다. 이 장은 진례(盡禮)와 아첨(阿諂)을 구분치 못하는 소인배들의 비아냥거림에 대한 공자의 탄식이다. 『순자(荀子)』의 「수신(修身)」 5편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실려있다.
내면적 나의 뜻이나 의지가 바로 잡아지면 돈 많은 자나 지위가 높은 자들을 우습게 볼 수가 있고, 내면적 나의 도의가 굳건해지면 왕이나 공경들을 가볍게 여길 수 있다.
志意脩, 則驕富貴; 道義重, 則輕王公.
진사이는 이 순자의 말을 들어 이러한 태도는 공자의 ‘사군진례(事君盡禮)’하는 태도에 비추어, 심히 잘못된 것이라 비판한다. 왕후(王侯)를 가볍게 여기는 자는 도의(道義)를 근본적으로 깨닫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지적한다. 그러나 진사이는 순자의 이러한 말의 맥락을 근원적으로 파악치 못했다. 따라서 이 장의 공자의 말과 순자의 말을 동일한 차원의 논리구조에서 대비한 것은 전혀 부당한 것이다. 순자는 ‘경왕후(輕王侯)’라는 말을 전국시대의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 한 것이다. 왕후(王侯)에게 소속되느냐 아니 되느냐는 문제는 계약의 차원에 속하는 것으로 그것은 실존적 선택의 여지를 남기는 문제였다. 단지 순자의 강조는 군자는 외계의 사물을 주체적으로 부리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君子役物], 외계의 사물에 의하여 지배당하고 구애받는 소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小人役於物] 맥락에 있었던 것이다. ‘경왕후(輕王侯)’보다는 ‘도의중(道義重)’에 더 강조의 포인트가 있었던 것이다.
이러한 진사이의 지적에 대하여 소라이(荻生徂徠)는 반론을 편다. 공자시대의 군주는 후대의 절대군주가 아니었으며, 군신관계가 어느 정도 친구사이 같은 정도의 서로 예를 지키는 사이였다는 것이다. 군주가 한 번 절하면 신하가 두 번 절하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서로가 서로에게 예의를 갖추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는 것이다. 공자는 결국 노(魯)나라와 위(衛)나라에서 밖에는 벼슬을 못했으므로, 이 장의 말은 구체적으로 노나라의 현실을 대상으로 발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공안국(孔安國)의 고주는 말한다.
공자의 당시에는 임금을 섬기는 자들이 대체적으로 모두 무례했다. 그래서 유례한 자들이 아첨꾼으로 보였던 것이다.
時事君者多無禮, 故以有禮者爲諂也.
따라서 공자의 말은 이러한 구체적 노나라의 현실 속에서만 타당하다는 것이다. 즉 노나라의 ‘삼가(三家)’의 대부들이 노나라 군주를 우습게 알고 무례한 행동들을 일삼았기 때문에 공자는 군주에게 예를 다하는 행위를 통해서 군신의 바른 관계를 과시하려 했던 것이며, 이것은 곧 공실(公室)의 세력을 펴주고 삼가(三家)의 세력을 억누르기 위한, 당대의 관례에는 어긋나는 위속(違俗)적 행위였다는 것이다. 소라이(荻生徂徠)의 해석은 진사이의 진부함을 크게 뛰어넘는 통찰력이 있다 할 것이다.
이 공자의 언급이 중년의 공자가 국군인 정공(定公)의 신임을 얻고 계씨를 포함한 ‘삼가(三家)’의 전횡을 막기 위하여 그들의 성과 군대를 해체시키기 위하여 노력한 시기의 말이라고 한다면, 당시 정공에게 협력하는 공자의 모습을 비난하는 세력은 모두 삼가계열의 사람들이었을 것이다. 대의를 위하여 노력하는 공자의 에너제틱한 모습과 그 공자를 ‘아첨꾼‘이라고 비아냥거리면서 수군거리는 소인배들의 모습이 대비되어 나타난다. 왕안석(王安石)의 신법을 대하는 구법당의 태도 또한 대의를 형량치 못했다. 따라서 신ㆍ구의 엎치락뒤치락만 되풀이되었고, 그 되풀이되는 과정 속에서 신ㆍ구의 진정한 이념들은 다 도망가버렸고 남은 것은 민중의 삶의 도탄이었고 국가의 패망이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 은 공자는 항상 역사의 신진세력, 개혁세력, 실천세력으로서의 이미지를 보지(保持)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장의 말씀은 이러한 역사적 정황을 떠나서도 우리의 일상생활에 계발을 주는 바가 크다. 윗사람에게 타당한 논리로써 간(諫)하거나 득실을 논하는 비판을 가하는 것은 매우 정당한 것이다. 그런데 비판이란 곧 무례(無禮)할 수 있는 것이요, 무례함이 오히려 곧 충(忠)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우매한 자들의 소치이다. 다시 말해서 소인배들은 예(禮)를 실(失)하는 것만이 용감한 비판의 전제조건인 것처럼 착각하는 것이다. 우리는 윗사람을 비판할 때에도 예(禮)로써 할 줄을 알아야 한다. 윗사람을 비판할 때, 우리는 냉철한 논리를 관철하면서도 모든 예의를 다 지킬 수 있는 것이다.
다산은 ‘사군진례(事君盡禮)’의 주체가 고주의 경우는 타인이 되어 있고, 신주의 경우는 공자 자신으로 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타인이 되면 이 문장은 맥아리가 없다. 역시 공자의 주체적 삶의 고백으로 풀어야 할 것이다.
황씨가 말하였다: “공자가 임금을 섬기는 예에 있어서 특별히 뭘 더한 것이 없다. 그냥 평범하게 하면서 예를 다했을 뿐이다. 당시 사람들은 그것도 못하면서 오히려 공자를 아첨한다고 까댔다. 그러므로 공자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심으로써 예의 당연한 바를 명백히 하신 것이다.”
黃氏曰: “孔子於事君之禮, 非有所加也, 如是而後盡爾. 時人不能, 反以爲諂. 故孔子言之, 以明禮之當然也.”
황씨의 말 중에서 ‘여시이후진이(如是而後盡爾, 이와 같이 한 후에 다할 뿐이다)’는 명료한 함의가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전후맥락에 따라 의역하였다.
황씨는 생몰연대가 미상이나, 역시 복건성 복청(福淸) 사람【복주(福州) 아래 바다 쪽】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황씨는 황조순(黃祖舜, 후앙 쭈순, Huang Zu-shun), 자는 계도(繼道)이다. 양송(兩宋)의 사람으로 휘종(徽宗) 선화(宣和) 3년에 진사(進士)에 합격하였다. 권형부시랑(權刑部侍郞)으로서 시독(侍讀)을 겸했는데, 『논어강의(論語講義)』를 진(進)하였다. 그 저술의 내용이 명료하고 사의(義)가 명쾌하여, 국자감(國子監)에 명령하여 그것을 간행케 하였다. 그것이 『논어설(論語說)』이다. 주희는 이 책을 많이 참고하였다. 그 외로도 『역설(易說)』, 『시국풍소아설(詩國風小雅說)』, 『예기(禮記)』, 『열대사의(列代史議)』, 『황장정집(黃莊定集)』 15권이 있다. 『송원학안』 「무이학안(武夷學案)」에 간단한 소개가 실려있고, 『송사(宋史)』에도 「황조순전(黃祖舜傳)」이 있다.
정자가 말하였다: “성인은 임금을 섬기는 데 예를 다할 뿐이다. 그런데도 당시의 사람들은 그것을 아첨이라고 비아냥거렸던 것이다. 만약 타인이 공자와 같은 상황에서 같은 말을 했다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내가 임금을 섬기는 데 예를 다하거늘, 소인배들이 아첨한다고 하는구나!’【‘나’라는 주어가 첨가되었고 ‘소인배’라는 분별의식이 들어갔다】. 그러나 공자께서는 ‘나’니 ‘소인배’니 하는 말씀을 하지 않으시고 이와 같음에 그치셨으니, 성인의 도가 크고 덕이 넓음을 여기서 또한 볼 수 있다.”
○ 程子曰: “聖人事君盡禮, 當時以爲諂. 若他人言之, 必曰‘我事君盡禮, 小人以爲諂,’ 而孔子之言止於如此. 聖人道大德宏, 此亦可見.”
여기 ‘정자’는 정이천(程伊川)이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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