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인성교육의 뿌리는 반공교육이다
세월호 사건이 발생하여 300명이 넘는 인원이 수장되었다. 그와 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각계각층에선 대책을 마련했는데, 교육부는 ‘인성교육진흥법’을 만들어 인성교육을 강화하려 했고, ‘생존수업교육’이란 걸 만들어 수영능력을 신장하려 했다. 어떤 문제든 ‘교육’이란 틀로 접근하는 순간 얼마나 사건의 본질과는, 그리고 재발방지와는 멀어질 수 있는지 이처럼 명확하게 보여주는 예가 있을까. 즉, ‘인성교육’이란 말이 나온 것 자체가 하나의 코미디라는 얘기다.
그래서 이제부턴 좀 더 현실적인 ‘인성교육’이란 게 어떤 역사적인 배경에서 등장했는지, 그리고 그게 학교 교육과정으로 들어올 땐 어떤 충돌이 생기는지, 그리고 왜 실패할 수밖에 없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자.
인성교육은 어떻게 등장했나?
권재원쌤은 ‘인성교육’이란 게 어떤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 등장했는지 설명해주기 시작한다. 1980년대 이전의 미국은 진보정권이 이끌었는데,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1911~2004)이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국내외적으로 보수 강경책을 펴게 되었다고 한다.
그 때 등장한 말이 ‘학교가 아이들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단다. 학교에서 여러 진보적인 교육도 스스럼없이 하며 비판적인 안목도 키워주고 있었으니, 보수주의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학교가 학생들을 타락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바로 그때 서서히 나오기 시작한 말이 ‘인성교육character education’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인성교육이 등장한 이유가 ‘진정 인간의 인성을 위한 교육적인 바람’이라기보다 ‘하나의 관점을 고집하기 위한 정치인의 얕은 수’임을 알 수 있다. 더욱이 인성교육의 영문명만 보아도 그 단순한 생각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다. ‘캐릭터의 성향을 바꾸기 위한 교육을 한다?’는 것이니 말이다.
인성교육론자들은 “학교는 실용적인 것만 가르쳐야지, 다른 것을 가르치면 안 된다”고 말을 하기에 이른다. 즉, 그들에게 학교의 역할은 현실적인 어려움을 해결해주고, 지금 당장 쓸모 있는 것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 외의 것들은 건드리면 그건 학교의 역할을 벗어난 월권이라 생각했다는 뜻이다. 즉, 인성교육이란 게 등장할 수 있는 배경엔 ‘지식교육/인성교육’을 나눠서 생각하는 기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 다양한 예를 들며 인성교육에 대해 종횡무진 누비고 있다.
인성교육의 뿌리는 반공교육이다
인성교육을 어떤 지고지순한 교육으로 바라보고 그건 누구도 할 수 있는 게 아닌, 선택된 사람만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기본에 자리하고 있다. 이때 당연히 문제가 되는 건,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누가, 어떤 기준으로 선택하느냐?’는 것이다. ‘가장 객관적으로 보이는 게, 가장 정치적’이라는 말이 있듯이, 어떤 기준에 따라 고르고 그 사람들이 어떤 내용을 가르치느냐에 따라 상황은 전혀 달라지니 말이다.
이런 식으로 자기들의 입맛에 맞는 강사를 통해 교육을 하려는 이유는 다른 게 아니었다. 교사집단은 공정한 시험을 통해 선발되기에 그들의 사상을, 생각을 확인할 기회가 없다. 그러니 보수주의자들 입장에선 ‘너무 급진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 ‘정권 비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 교사로 일하며 학생들의 생각을 더럽히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니 당연히 그들은 학생들의 심성을 건드리고, 어떤 비판적인 안목을 갖게 하는 교사들이 껄끄러운 존재로 여겨졌던 것이다. 얼마나 교사집단에 대해 혐오감을 느끼고 있었는지는 부시가 “빨갱이 선생들을 쳐내고 검증된 선생들이 교육할 수 있도록 하자”고 했던 말을 통해 알 수 있다.
▲ 이라크 전쟁은 방송을 통해 전쟁이 전세계에 방송되었다. 악의 제거라는 명분은 명분일 뿐이었다.
반공주의자들은 흔히 자신의 생각과 다른 존재를 ‘빨갱이’, ‘공산주의자’로 규정하며 위험한 존재로 매도하곤 한다. 그래서 그들을 불구대천의 존재로 만들어 ‘아예 씨를 말려야 한다’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며, 여러 법적 테두리로 그걸 현실화시키기도 한다(한국에선 전교조를 법외노조로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택한 방법은 교사집단을 자신의 입맛에 맞도록 바꾸는 건 애초에 불가능하니, 인성교육 분야에 있어서만큼은 기존 교사를 배제하고 자기들이 선정한 강사진이 맡도록 한 것이다.
이와 같은 미국의 흐름은 그대로 한국이 답습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발의된 ‘인성교육진흥법 시행령’에 따르면 ‘교육부가 공인한 단체의 사람만이 인성교육을 할 수 있다’는 것으로 명시되어 있다. 단위 학교별로 인성교육을 할 수 있는 교사를 선택하거나, 내용을 선정하거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교육부에서 지정한 단체의 특정인만이 인성교육을 할 수 있다는 식이다. 이것이야말로 어찌 보면 교사집단을 쌩무시하고 교육을 이끌어가는 파트너로 보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더 큰 문제는 이때 반공주의자들이 “자본이 망친 아이들을 마을로 되돌려 해방시키자”는 구호를 외쳤다는 사실이다. 전혀 문제없을 것 같은 이 말도 반공주의자들이 하면 매우 이상한 얘기가 되어 버린다.
▲ 인성교육진흥법을 보는 것만으로 속이 저절로 답답해진다. 이걸 만든 사람들에게 교육은 무얼까?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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