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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컴 겨울수련회 참가기 - 7.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본문

연재/배움과 삶

교컴 겨울수련회 참가기 - 7.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건방진방랑자 2019. 10. 2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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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인성교육은 실패한다

 

 

향교문화관엔 열기가 후끈 달아올랐다. 아무래도 논의가 분분한 주제이니만치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는 인성교육이란 게 얼마나 비교육적인 처사로 시작되었으며, 그게 어떤 역사맥락에서 출발했는지를 살펴봤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 보면, ‘교육의 문제를 가장 전면에서 껴안고 고민하는 교사들이 이렇게 발분하며 한 걸음씩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이 놀라우면서도 반갑기도 하다. 하지만 단순한 문제가 아니기에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하는지, 그리고 어떤 식으로 바꾸는 게 옳은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역사적인 맥락, 그리고 어떤 철학적인 함의에 따라 인성교육이 시작되었는지를 보고 있다.

 

 

 

지식교육/인성교육의 이분법이 낳은 왜곡

 

권재원쌤은 강의를 계속하며 결과적으로 인성교육은 법안을 발의한 그들이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내지도 못할뿐더러,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소리를 높였다. 이유는 크게 세 가지를 들었다.

첫째, 인성교육을 지식교육과 나누어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반공주의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인성교육이 중요하다는 말 속엔 이미 지식교육과 대립항으로 보고자 하는 시각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우리도 그런 시각으로 교육을 보고 있다. 그래서 지식교육만 강조하다보니, 아이들의 인성이 개판이 됐다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고 있으며, 학생드라마의 공부는 잘하지만 매정하고 자기중심적인 인물 / 공부는 못해도 의리가 있고 남을 배려하는 인물이라는 구도를 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니 말이다.

이처럼 알지 못하는 사이에 이미 고정관념으로 자리 잡힌 생각이 가장 무서운 생각이라 할 수 있다. 그건 가장 객관적, 보편적이란 탈을 쓰고 의식을 억누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 생각에 짓눌리면 짓눌릴수록 왜곡된 시선을 지니게 되어, 본질을 보지 못하게 된다.

 

 

이런 광고를 봐도 그 안엔 둘을 이분법으로 나누어 놓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목표를 스스로 위배하며 등장하다

 

그래서 권재원쌤은 아예 교과들 속엔 과연 인성을 교육시킬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걸까요? 오히려 그런 교과들 속에 이미 인성을 교육할 수 있는 부분이 있는데 그러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라고 문제제기를 했던 것이다.

맞다, 애초에 각 과목이 만들어질 때엔 그런 과목들을 배워 인성을 기르고, 지식을 넓히며, 관계성을 회복하는 것이 기본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번에 배포된 교육과정엔 아예 바른 인성을 갖춘 창의융합형 인재라는 아주 거창한 목표가 설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어떤 목표든 좋은 말들을 모조리 갖다 붙인 것이기에 절대로 이룰 수 없는 이상적이긴 하지만, 교육을 하려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그와 같은 사람의 가능성을 확장하기 위한 것이라 허황되다고만은 할 수 없다.

그런데 그렇게 심혈을 기울여 교육과정을 만들고, ‘교육과정해설서를 배포했음에도 그것으로 부족하다며, 다시 인성교육이란 별도의 항목을 만든 것이 문제라는 얘기다. 그건 자신들이 만든 교육과정의 목표를 부정하는 꼴이며, ‘현실 교육으론 한계가 있다고 자기비판을 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이미 각 과목엔 인성적인 부분, 지식적인 부분들이 모두 들어있어 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분과학문이 지닌 한계를 지적할 수밖에 없지만, 여기서는 인성교육에 집중하기 위해 그런 이야기는 하지 않는다는 조건에서 말이다. 그러나 현실적인 교육환경 상 그런 것들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경우, 현실교육에선 그게 잘 되지 않으니, 별도의 과목을 설치한다고 할 게 아니라, 어떤 상황들이 그런 교육이 이루어지지 못하도록 방해하는지, 현장에서 진행하기에 힘든 부분이 어떤 것인지 찾아내어 환경을 개선해 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데 그런 노력을 하기보다 별도의 강사를 배정하여 별도의 커리큘럼을 만들려고만 하니 당연히 실패할 수밖에 없다.

 

 

현행 교육과정 자체가 아주 좋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다.

 

 

 

교육 효과에 대해 합의된 내용이 없다

 

그렇다면 백보 양보해서 인성교육을 할 수 있도록 훈련받은 사람들이 인성교육을 한다고 하자, 그렇다면 인성교육을 하고 난 후에 아이들의 인성이 나아져서 어른을 어른으로 대접하고, 자신을 존중할 줄 알며, 타인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될까? 이렇게 말하고 나니 인성교육이 얼마나 종교적인 색채와 많이 닮아 있는지 명확하게 보이긴 한다.

그런데 교육의 효과라는 게 지식영역의 경우 금방 확인할 수 있고 당장 효과가 나타나긴 하지만, 그 외의 것들은 무수히 많은 시간이 필요하며, 또한 어떤 영향을 통해 그런 변화가 있었다고 단정 지어 말할 수는 없다. 막상 인성교육을 하려 많은 돈을 집행했고 그로 인해 활발하게 인성교육은 이루어졌지만 그 누구도 그 결과에 책임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이런 경우를 흔히 돈 놓고 돈 먹기라고 하는데 교육의 영역에서 가장 빈번히 행해지는 악습이라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한 예는 22조라는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지만, 그 결과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또는 강바닥의 흙을 어느 정도 파냈는지도 더 이상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사대강 사업을 들 수 있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갔지만, 그 과정이 얼마나 투명했는지도 그 결과가 얼마나 사대강 살리기와 관련이 있었는지도 지금은 전혀 상관없는 것이 되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그런 일을 집행한 사람들은 이 사업 자체가 눈 먼 돈을 쉽게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여 진행한 걸 거다. 그처럼 인성교육도 어떤 결과가 나와야 한다고 합의된 적도 없을뿐더러, 혹 합의됐다 하더라도 그 결과가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는 누구도 신경 쓰지 않기 때문에, 무책임하게 진행될 수밖에 없다.

 

 

공인받은 교육기관만이 인성교육을 할 수 있다. 하지만 결과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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