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인성교육, 그 너머의 교육
인성교육은 실패한다고 세 가지 논거로 얘기했기 때문에 권재원쌤은 두 가지 대안을 제안했다. 첫째는 인성교육이 아닌 민주시민교육을 얘기할 때라는 것이고 둘째는 예술 교육을 하자는 것이다. 제안을 두 가지로 했지만, 결국 두 가지는 하나로 통합된다고 볼 수 있다.
권재원쌤에게서 발견한 우치다쌤의 향기
우선 이 이야기를 풀기 전에 다른 이야기를 잠시 하도록 하자. 우치다쌤은 ‘동아시아의 평화와 교육’이란 강의에서, 공동의 이익을 중시하고, 미래의 가치를 찾기보다 지금 당장의 먹고 사는 문제에만 매달리게 만드는 교육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평시의 논리를 강요하지 말고 위기 시의 논리로 가르쳐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오감이 활짝 열리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얼핏 들으면, ‘뭔 현실적이지 않은 공상과학 같은 말장난이야’라는 생각도 들 법도 하다.
이뿐만이 아니다. ‘공생의 필살기’라는 강의에서도 이와 비슷한 제안을 했기 때문이다. 우린 당연히 제안할 땐, ‘함께 살기 위해 이러이러한 것을 하고, 저러저러한 것들을 하지 말아야 한다’는 아주 직접적인 방법을 듣길 원한다. 특히 학교 현장은 늘 상황이 일어나고 그럴 때 즉각적인 해결책이 필요한 곳이다 보니,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건 아주 당연하다. 하지만 우치다쌤은 ‘공생의 감각은 인간인 이상 자연히 키워지는 능력인데도, 오히려 학교는 공멸의 방법만을 가르치고 있다’고 질타하며, ‘자본주의 사회의 해악이 학생에게 영향을 주지 않도록 학교는 온실과도 같은 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제안을 했다.
아마도 그 당시 우치다쌤의 강의를 들었던 사람들은 즉각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 교육에 대한 근본으로 돌아가는 물음을 제기하는 상황을 보고 무척 황당했을 것이다. 실컷 2시간동안 강의를 들으며 미처 생각해보지 못한 해결법을 알게 되어 막힌 속이 확 뚫릴 거라 기대했는데, 오히려 더 심한 체증을 느껴야 했으니 말이다. 이런 경우를 흔히 ‘똥을 싸고 닦지 못한 께름칙함’이라 표현하는데 정말 그런 느낌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질의응답 시간에 한 선생님은 “무슨 얘길 하는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라는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처럼 권재원쌤의 제안도 뭔가를 확 알게 되는 명쾌한 대답이 아니라, 혼란을 부추기는 대답이었다. 그러니 열심히 들었던 선생님들은 미궁에 빠져, 뭔가 알기 쉬운 대답을 해주길 바랐던 것이다. 그래서 “에술교육을 하라고 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는 것인가요?”라고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 우치다쌤의 강연과 선빵형 통역을 하고 있는 박동섭쌤의 통역은 하나의 하모니가 되어 강연장을 휘저었다.
지적 폐활량으로 알쏭달쏭함에 머물라
학교에선 아이들에게 정답이 정해져 있다며 가르치고, 그런 교육의 장에 있다 보면 교사도 손쉽게 누군가에게 정답을 구하곤 한다. 분명 자신이 발 딛고 선 현실은 수만 요소가 얽히고설켜 복잡다단하고 어지러운 형국이며 학생은 도무지 나의 인식으로 들어오지 않는 외계 생물체인데도, 누군가 그걸 한 큐에 꿰어 명료하게 해석해주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그와 같은 알쏭달쏭한 말을 들으면 황당하기도 하고, 시간낭비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바로 그와 같은 상황을 견뎌내며 나 자신에게 ‘예술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말이 무엇이지? 민주시민교육이란 무슨 의미지?’라고 물음을 던질 수 있어야 한다. 그걸 동섭쌤은 ‘지적 폐활량’이라 표현했는데, 탁월한 표현이라 생각한다. 혼란을 견뎌내고, 갈등을 감내해 나가는 과정,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그 혼란과 갈등 속에 머물고자 하는 결단력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공자도 말한 적이 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마음으로 분발하지 않으면 일러주지 않고, 말로 표현하지 않으면 일깨우지 않는다. (사각형의 물체가 있다고 할 때) 한 모퉁이를 들어 설명해줬는데 세 모퉁이를 알지 못하면, 다시는 가르치지 않는다”
子曰: “不憤不啓, 不悱不發. 擧一隅不以三隅反, 則不復也.” -『論語』 「述而」 8
공자의 교육법은 ‘교학상장敎學相長’의 교육법이다. 스타강사가 흔히 얘기하듯이 “나를 따라오면 너의 모든 게 만사형통한다”는 식의 모든 것을 다 알려주고 그 길을 갈 수 있도록 추동하는 교육이 아닌, 너와 내가 배움의 장에서 얽히고설키며 함께 성장해 나간다는 것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교사만 열정에 넘치거나, 교사만 모든 진리를 체득한 양 자부심에 차 있거나, 모든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양 전면에 나서는 것을 기피했던 것이다. 교사의 앎에 대한 열정과 학생의 앎에 대한 바람이 함께 어우러질 때에야 비로소 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으며, 그럴 때 깊이를 더해갈 수 있으니 말이다. 그래서 학생의 발분하려는 마음, 알고자 하는 마음, 한 모퉁이를 들어 설명하면 그 나머지 것에 대해 상상할 수 있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가르쳐주려 했던 것이다.
▲ 두 가지 메타포를 던져주며, 강의는 끝을 향해 갔다.
결론이 아닌 한 모퉁이를 끌어안도록 일러준 강의
권재원 쌤이 던져준 ‘민주시민교육’이나 ‘예술교육’이란 메타포는 그런 의미에서 한 모퉁이를 제시하며 교사들에게 세 모퉁이로 확장할 수 있는지를 묻기 위해 던져준 과제라 할 수 있다. 그래도 너무 제멋대로 해석되는 것을 차단하고 싶었는지 “이야기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이해하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과정을 익힐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예술교육이란 이미 정해진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니고, 누군가 규정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와 같이 무언가를 풀어가는 과정이며, 그에 따라 합의해 나가는 과정을 함께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라고 정리했다.
두 시간 여를 종횡무진 누비며 여러 생각과 생각이 엉켰다. 그래도 분명하게 알게 된 건, 무언가 확실한 감은 잡히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치열하게 묻고 의문을 가지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장이 있다는 안도감이었다. 교실밖교사커뮤니티가 18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힘엔 아마 그와 같은 소통의 장이었기에 가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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