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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10부 왕정복고 - 2장 한반도 르네상스, 새로운 학풍③: 진경산수화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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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횡무진 한국사, 10부 왕정복고 - 2장 한반도 르네상스, 새로운 학풍③: 진경산수화

건방진방랑자 2021. 6. 21.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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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학풍

 

 

중화가 아니라면 사람도 아니다? 이런 호론의 주장은 그게 과연 18세기의 사상인지조차 의심스러울 정도로 원시적이고 야만적인 사상이지만(그 시기에 서유럽에서는 인간 이성을 예찬한 계몽사상이 발달했다), 정작 그것을 주창한 성리학자들은 오히려 오랑캐를 원시적이고 야만적으로 봤으니 여러 가지로 웃기는 일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앞서의 예송논쟁과 마찬가지로 소중화(小中華) 이념이 있다. 비록 현실적인 힘에서는 오랑캐가 앞서지만,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중화세계의 적통인 조선이 우위에 있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이다. 이런 변형된 중화 이념은 곧이어 자민족 중심주의로 발전하면서 예술에도 영향을 미쳐 진경산수화라는 기묘한 미술 장르를 낳는다.

 

진경(眞景)이라면 진짜 경치’, 즉 조선의 경치를 뜻한다. 조선 화가가 조선 경치를 그리겠다는 게 왜 중화 이념일까? 그것은 조선의 사대부(士大夫)들처럼 화가들도 이제 조선이 유일한 중화세계, 즉 진정한 인간 세계라고 여긴 데서 나왔기 때문이다. 금강산의 모습을 그린 금강

전도(金剛全圖)와 인왕산의 경치를 화폭에 담은 인왕제색도(仁王霽色圖)의 화가 정선(鄭敾, 1676 ~ 1759)이 첫 테이프를 끊고 이후 김홍도(金弘道, 1745 ~ ?)와 신윤복(申潤福, 1758 ~ ?) 등으로 이어진 진경산수화 운동은 우리 역사상 가장 주체적인 예술 사조였으나 그 바탕에는 병적인 소중화(小中華) 이념이 자리잡고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그 전 시대의 조선 화가들은 모두 종처럼 높이 솟은 중국식 산과, 계곡 사이를 구비쳐 흐르는 중국식 강을 그렸다. 게다가 그림에 조그맣게 그려진 누각이나 인물에서도 중국의 양식과 복식, 심지어 중국식 상투의 모습까지 볼 수 있었다(이는 그림의 주제를 주로 중국의 고사에서 따왔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진경산수화는 예술의 중심을 조선으로 가져온 주체적이고 혁명적인 전환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침은 모자람만 못한 법이다. 우리의 산천만이 진경이라면 다른 나라의 자연은 모조리 가짜 경치가 되는 걸까? 그렇게 생각한다면 이미 주체성의 범위를 넘어선 소아병적 관점이다. 실제로 소중화(小中華) 이념은 이후 민족 주체성을 확립하는 데 기여한다기보다는 편협한 국수주의적 관점을 사회 전반에 퍼뜨리는 데 기여하게 된다이런 관점은 사실 오늘날에도 드물지 않다. 흔히 말하는 우리 것이 좋은 것이라는 생각도 지나치면 위험해진다. 예를 들어 사물놀이를 본 외국인들은 무조건 엄청난 감동을 받으리라고 생각한다든가, 금강산을 외국인들에게 보여주면 누구나 입을 다물지 못하리라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일뿐더러, 자칫하면 관광 정책에도 큰 차질을 빚게 된다. 미국의 로키산맥을 구경하고 나서 기껏 한다는 말이, “산은 역시 물이 있어야 진짜 산이지라면 세상의 넓음을 알지 못하는 무지의 소치다. 비록 우리의 자연에는 없지만, 이 세상에는 물이 없으면서도 경치가 좋은 산도 많고 심지어 불모의 사막조차 얼마든지 좋은 경치가 될 수 있으니까.

 

어쨌든 진경산수화는 예술의 영역이니까 그럴 수 있다치더라도 인물성이론의 입장은 철학이라는 외피까지 걸쳤기에 더더욱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것이었다. 누가 봐도 논쟁은 인물성동론의 승리로 끝났어야 마땅한데도 명확한 승패는 나지 않았다.

 

예송논쟁이 극명하게 보여주듯이 원래 사대부(士大夫)들의 논쟁이란 한쪽이 권력을 장악하면서 승리를 선언해야 할 텐데, 조선이 왕국으로 컴백한 이상 그게 불가능했기 때문에 무승부로 귀결된 것이다(굳이 승패를 따지자면 대세가 대세인 만큼 인물성동론의 우세승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기존의 성리학에서 상당히 벗어난 인물성동론의 입장은 곧이어 대단히 중요한 새로운 학풍을 낳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한다. 그것은 바로 후대에 실학이라 불리게 되는 학풍이다.

 

 

 진짜 경치? 소중화(小中華) 사상이 자리를 잡으면서 조선사회에서는 기묘한 철학 논쟁과 기묘한 화풍이 자리잡았다. 오랑캐도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가 쟁점으로 부각되고, 우리 산천의 경치만이 진짜 경치라고 여기게 된 풍조는 얼핏 보면 대단히 주체적인 세계관인 듯하지만 실은 성리학의 가장 근본적인 경지, 즉 병적인 자기중심주의의 소산이다. 물론 그렇다 해도 정선이 인왕산의 어느 여름날을 화폭에 담은 인왕제색도가치를 폄하할 수는 없겠다.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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